▲노숙농성장에서 박래군 씨 모습
송주민
- 날씨가 꽤 쌀쌀하다. 몸 상태는 괜찮은가?"춥긴 하지만 하루씩 돌아가며 자니까 참을 만 하다. 다행히도 오늘은 어제보다 덜 추운 듯 하다. 아직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다."
- 7년 전과 같은 곳에서 같은 사안으로 집회를 열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7년전 12월, 지금처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텔레비전에서 30년만의 강추위라고 보도하기도 했으니까. 신정 휴가를 보내고 출근한 시민들은 다음날인 4일에도 명동성당 앞의 우리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촛불모임, 일일 지지단식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들머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농성 때문에 물건너갈 뻔한 인권위 독립성을 가까스로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고생도 많았지만 보람도 컸던 집회였다.
그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여당이 된 지금 오히려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 아니겠는가."
- 워낙 조직 개편이 광범위해서 활동가들이 분산되어 투쟁하고 있다. 활동이 어려워질 것 같은데?"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서 이 곳에 많은 사람들이 와준 것이다. 다른 문제들도 공동으로 연대할까 논의도 했지만, 효과가 적을 것을 우려해서 자기 영역을 책임지고 싸우기로 했다."
- 이명박 정부 아래 5년 동안 더욱 바쁠 것 같다."여태까지도 바빴는데 더 심할 듯하 다(웃음). 인권단체의 수도 적고, 역량도 작다. 아마도 '연대 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할 것이다. 하지만 쫓아다니는 식으로 하는 운동이 아닌, 침해받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권리를 찾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 지난번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 없는 집회 문화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셨다. 이번 투쟁에 시민들이 얼마만큼 호응해 줄 것인지? "국민들이 '국가위원회' 문제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단지를 돌리며 알리고는 있으나 큰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이다. 이번 농성은 급하게 시작해서 우선은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자'고 하였다. 여러 단체를 참여하게 하여 인권위에 대한 의견의 편차를 좁히려고 한다. 이후의 토의를 거쳐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절차도 필요하고,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방법 또한 고민해 볼 것이다. 이번 농성은 MB와 싸우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 이번 농성,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나?"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후에도 인권위를 끊임없이 흔들려고 할 것이다. 이번 운동을 단지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키는데 국한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인권위를 탄생시킨 것도, 따끔한 충고를 마지 않았던 곳도 우리 시민단체이다. 인권위가 부족한 부분도 물론 많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인 인권위는 그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 2월 1일 이후 활동계획은?"설까지 재충전을 할 생각이다. 2월 19일 국회 본회의에 맞추어 농성 투쟁하려고 한다. 여론도 좋고 승리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30일 새벽 6시] "오늘은 좀 낫네요"일어나는 모습을 담고 싶었던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조금씩 하얀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명동성당 앞은 조용하다. 가끔씩 새벽기도 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측은해 보인다고 속삭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러고 있으니 왠지 무섭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하나둘 농성하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김진태씨는 옆의 동료에게 침낭을 덮어주고 있었다. 어젯밤 춥지 않았냐는 질문에 "괜찮네요. 오늘은 좀 나은 편이네요"라고 대답한다. 박래군씨도 어젠 한 겹 더 덮었더니 조금 낫다고 말했고, 처음 이 곳에서 잠을 잤다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마토씨도 어젯밤은 크게 무리가 없었다고 했다.
지나가던 한 여성이 노숙농성 중인 우리가 추워보였는지 베지밀 10병 정도를 주며 부끄러운지 뛰어갔다. 따뜻한 베지밀을 손에 움켜잡고, 잠시나마 몸을 녹였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따스함. 이렇게 관심 쏟아주는 시민들이 있어서 추운 날씨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