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가르쳤더니 성적이 올라갔다고?

<조선일보>가 띄운 '영어몰입' 모범학교의 진실

등록 2008.01.30 22:39수정 2008.01.3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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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선일보>가 영어몰입교육(이중언어수업) 모범학교처럼 지난 29일 보도한 한 사립 고교가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영어·수학·사회·과학 과목을 영어로 가르쳤다고 이 신문이 밝힌 서울 Y고다.

대상 학생은 이 학교 1학년 2개 학급(전체 14개 반). Y고는 이 같은 영어몰입교육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18일, 서울시교육청 공정택 교육감이 준 ‘학력신장 우수학교 표창장’까지 받았다.

'영어몰입교육' <조선>의 빗나간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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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홍보 <조선일보> 1월 29일치 A12면. ⓒ 조선PDF


<조선일보>는 이날 A12면 머리기사에서 다음처럼 '성적 향상도'를 증거로 들며 영어몰입교육의 우수함을 홍보했다.

"성적우수자가 아닌 지원자들로 반을 구성했는데도 이들의 내신 성적은 놀랄 만큼 뛰어올랐다. 전 과목 평균은 다른 반보다 20점이 높았고, 특히 영어 성적은 평균치보다 25점 이상 뛰었다."

이어 이 신문은 "이중언어수업의 효과가 입증되자 내신 성적에 불리할까봐 지원을 피했던 상위권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이중언어수업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과연 그럴까. 1학년 교과지도를 맡은 교사들을 위주로 이 학교 교원 6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학교 교장과 교감을 뺀 나머지 교원들은 모두 "과장보도", "왜곡된 사실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 어떤 교사는 "신문이 다 뻥을 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신문이 다 뻥을 치는 것 아니냐"


이 과정에서 학교 핵심관계자로부터 영어몰입반과 일반반의 교과성적 수치도 파악할 수 있었다. 몰입반 편성 뒤에 치른 5월 중간고사와 몰입교육 7개월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10월 중간고사 결과 등이었다.

아무래도 영어몰입교육의 최고 목적은 영어능력 향상. 학생들의 영어성적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조선일보>도 보도에서 "특히 영어 성적은 평균치보다 25점 이상 뛰었다"고 보도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10월 영어몰입반의 영어 성적은 1학년 전체 평균이 아니라 최하위반 점수보다 정확히 25점 높았다. 따라서 "평균치 25점 이상"이라는 보도는 잘못된 것이었다.

더구나 기사를 "25점 이상 뛰어올랐다"고 쓴 것은 사실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은 것이었다.

영어몰입반과 최하위반의 영어성적 차이는 5월에는 27점으로 높았지만, 10월에는 25점으로 격차가 줄어들었다. 향상도가 -2로 뒷걸음질 친 것이다. 오히려 영어몰입반의 영어성적은 몰입교육 기간이 길어질수록 하락한 것이다.

몰입교육 길수록 영어 점수는 오히려 하락

기사 가운데 '내신 성적은 놀랄 만큼 뛰어올랐다, 전 과목 평균은 다른 반보다 20점이 높았다'는 내용도 "학교 실정을 모르는 엉뚱한 표현"이라는 게 이 학교 교사들의 지적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적이 오른 것은 "하위권 학생이 없는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우열반을 편성하면 우등반과 열등반 성적 격차가 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면 몰라도 영어몰입교육의 성과는 아니다"는 얘기다.

실제로 몰입교육 초기인 5월 시험에서도 영어몰입반의 12개 과목 전체 평균은 최하위반의 그것에 견줘 17.9점이나 높았다.

'영어몰입교육'의 성과를 내세운 <조선일보> 보도가 맞으려면 영어로 수업한 4개 교과의 향상도가 그렇지 않은 국어·도덕·국사·기술/가정·체육·음악·미술·컴퓨터 등 나머지 8개 과목의 향상도보다 높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연 딴판이었다. 취하위반 성적을 높고 5월과 10월 두 시험을 견줘봤을 때 영어몰입반 성적 향상도가 제일 높은 과목은 우리말로 수업한 체육(16점)·음악(12점)·기술/가정(10점) 순이었다.

반면 영어로 수업한 4개 교과목의 평균향상도는 4.5점에 그쳤다. 이 점수 또한 나머지 교과목의 평균향상도 7점보다 상당히 낮았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이 학교 1학년 교과 담당 교사는 "우열반식으로 반편성이 됐는데 영어몰입반 학생들의 점수가 높아지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어몰입과목 향상도는 4.5점, 나머지 과목은 7점

지난해 2월 영어몰입반에 지원한 신입생은 모두 80여명이었다. 학교 쪽은 영어듣기시험을 통해 하위권 학생 8명을 탈락시킨 바 있다. 이런 사실 또한 '성적우수자가 아닌 지원자로만 반을 구성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와는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학교 박아무개 교장은 "영어몰입반에 최하위권 학생들이 적었을 뿐이지, 일반반의 절반 수준인 3·4명은 있었다, 극상위권 학생들은 내신성적 때문에 영어몰입반에 지원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우리말로 수업한 교과 성적까지 오른 이유는 학습 분위기가 좋은 데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노력을 더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선일보>가 영어몰입교육을 했다는 4개 과목 가운데 최소한 1개 과목 이상은 학기 초부터 한글 수업을 했다는 것. 특히 수학 과목은 지난해 4월부터 전면 우리말로 수업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아무개 교장도 "수학 과목은 한 달 정도 영어로 한 뒤 우리말로 수업을 진행했다"고 시인하면서도 "인터넷에 수학 교사가 영어강의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수학 말고 다른 과목도 밖으로는 '영어몰입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말을 섞어가면서 진행한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따로 있었다. 일부 학생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 김아무개 교감은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모국어로 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수학 등은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학생들 항의에 우리말로 '영어몰입교육'

이런 사실에 대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김아무개 기자는 알고 있었을까.

일부 과목의 경우 '무늬만 영어몰입교육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김아무개 기자는 "교사들과 통화하지는 않고 교장 설명만 들었다"면서 "그런 말은 하시지 않더라"고 말했다.

'성적 향상도' 왜곡 지적에 대해서도 김 기자는 "몰입교육을 하지 않은 과목도 높았지만 몰입교육을 한 과목이 더 높았다는 건 몰입교육이 효과를 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럼 관련 점수를 직접 확인해 보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교장선생님이 높았다고 했다, 종단적 성적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뒷말을 흐렸다.

이에 대해 현인철 전교조 대변인은 "이 학교가 바람직한 미국시민 양성을 위해 만든 미국교과서로 일반과목 수업을 한 것도 교육 규정 위반인데 이런 것을 칭찬한 왜곡보도는 도를 넘긴 것"이라면서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몰입' 보도의 필요가 있더라도 잘못된 사실을 보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어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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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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