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여러분에게 어떤 동물입니까?

장애인에게 희망 주는 재활승마...마산대학 승마교육원에 다녀와서

등록 2008.02.01 08:17수정 2008.02.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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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애 학생이 말을 타고 출발하면서 일행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장애 학생이 말을 타고 출발하면서 일행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김연옥


사람들마다 말(馬)을 어떤 모습으로 머릿속에 그릴까. 아마 개개인의 추억과 삶의 방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말들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로맨틱하게, 또 다른 사람들은 매우 용맹스럽게. 내 경우에는 말이란 동물은 늘 안쓰러운 모습으로 떠오르곤 했다.

지난해 여름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받았을 때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따가이따이(Tagaytay)에 놀러갔던 적이 있다. 이름난 휴양지인 그곳에서 따알 호수(Taal Lake)를 건너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배를 타고 화산섬에 도착하면 신비한 호수 속의 호수를 볼 수 있는 활화산 정상까지 마부와 같이 말을 타고 올라가게 된다.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호수 속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해 호수가 생긴 이중 구조의 화산 풍경은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a 말은 우리들에게 어떤 동물일까?   개개인의 추억과 삶의 방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말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말은 우리들에게 어떤 동물일까? 개개인의 추억과 삶의 방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말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 김연옥


그러나 나를 태운 말을 이따금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힘들어 갑자기 배가 고팠는지 어느새 풀을 뜯어 입에 물고 있던 말의 모습이 가난이 힘겨워 말이 지치는 건 안중에 없던 어린 마부의 얼굴과 겹쳐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박만규(마산대학 승마교육원)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애인과 자폐아들의 재활 치료에 승마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25일 나는 돔 모양의 실내 승마장 시설을 갖추고 있는 마산대학 스포츠아카데미 승마교육원(경남 마산시 내서읍 용담리)을 찾았다.

말 타는 자체가 삶이다

겨울방학 동안 정신지체 공립학교인 경남혜림학교(경남 마산시 합성1동)에서 실시하는 '열린 학교'의 장애 학생들이 그날 말 타러 오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평소 박 원장의 봉사 활동 가운데 하나로 내가 도착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들도 왔다.


a 중증 장애 학생을 태운 '하니'와 함께 걸어가는 마산대학 박만규 승마교육원 원장.  

중증 장애 학생을 태운 '하니'와 함께 걸어가는 마산대학 박만규 승마교육원 원장.   ⓒ 김연옥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제자인 이현희(인제대학교 특수교육과 2년) 학생을 만나 반가웠다. 평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내 단점인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용케 그 제자 이름이 기억나 다행스러웠다. 특수교육이 전공이다 보니 겨울 방학 동안 '열린 학교'의 선생님으로 장애 학생들을 돕고 있었다.

지난 3일부터 초, 중, 고등부 여덟 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열린 학교'에는 마산, 창원, 진해,함안 등지에서 살고 있는 장애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김은주(20) 학생처럼 재활 치료로 계속해서 말을 타 온 학생도 있었는데 균형 감각, 자세 교정 등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영국 사람인 아그네스 헌트와 올리브 썬즈, 노르웨이의 에르스베스 봇스커 등 장애인을 위한 승마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재활승마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박 원장은 리즈 하텔이란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재활승마의 대표적인 사례로 내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다리 마비라는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1952년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개최된 제15회 하계 올림픽에서 마술(馬術) 경기에 출전하여 마장마술(dressage)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거다.

길이 60m, 너비 20m의 마장(馬場)에서 말을 다루는 마장마술 경기는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경기이다. 선수들의 복장부터 우아하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말이 호흡을 같이하여 예술적 극치를 보여 주는 마술(馬術)이다.

말의 걸음걸이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이 말을 타게 되면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의 대뇌신경에서 정상인이 걸을 때 나타나는 운동신경 반응을 유도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근육의 유연성, 균형 감각, 자세 교정, 집중력, 자신감 등 신체적 및 정신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영국, 독일,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재활승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a 재활승마와 마장마술이 특기인 '하니'.  눈이 맑고 선량하게 생겼다.  

재활승마와 마장마술이 특기인 '하니'. 눈이 맑고 선량하게 생겼다.   ⓒ 김연옥


그날 '열린 학교'의 장애 학생들을 위해 등을 빌려 준 말의 이름은 하니. 나이는 15살이고 스페인에서 왔다. 수컷이고 맑고 선량한 눈을 지니고 있다. 말들도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른데 하니의 특기는 마장마술과 재활승마이다.

박만규 원장은 '말 타는 자체가 삶'이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장애인과 자폐아들에게 희망을 주는, 친구 같은 말(馬)의 모습을 간간이 떠올릴 수 있어 기쁘다.
#재활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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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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