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좋다

등록 2008.02.01 08:12수정 2008.02.0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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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연합뉴스>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에 대한 일각의 반발을 염두에 둔 듯 농담조로 "영어 안 하겠다는 사람들 (영어) 배우기만 해봐라"며 '일침'을 놓았다고 보도했다.

 

이경숙 위원장이 이명박 당선자에게 '굿모닝'으로 인사를 하자 이 당선자는 "굿모닝은 초등학교 1학년이 하는 영어 아니냐"고 농담했다고 한다. 영어를 두고 일어나는 반발을 농담조로 받아들이는 이명박 당선자와 이경숙 위원장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묻고 싶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자신들이 제시한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는지를 말이다.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영어 교육을 반대하지 않는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영어는 배워야 할 언어다. 영어를 잘하면 더 많은 세계를 알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잘하면 잘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분명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이를 누가 부인하는가?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는 오로지 영어만이 우리가 살 길이며, 영어를 하지 못하면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교육정책으로 비춰진다. 영어만 잘하면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교육의 'ㄱ'자도 모르는 발상이다.

 

선생님은 기능과 기술 전달자가 아니다. 영어 전달자가 아니다. 인성과 품성, 도덕성, 전문성을 두루 갖춘 사람이 되어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영어만 잘하면 영어교사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가 얼마나 비교육적인지 깨닫게 한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 얼마나 부재한지 알 수 있다.

 

영어뿐만 아니라  학과 과목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목적과 수단을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가 목적이 되어 인간 자체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영어를 잘하면 훌륭한, 괜찮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영어가 그렇게 좋으면 모든 공중파 방송을 영어로 하자. 국무회의도 영어로 주재하고, 공용어로 만들어 버리자.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가? 아니다. 인수위가 내놓고 있는 정책과 각 인수위원들의 발언을 보면 결국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말까지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극이다. 모국어를 무시하고 외국어를 그토록 숭상하면서 영어에 목 맨 나라 중에 선진국가 된 나라가 있는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교육비가 아니다. 영어만을 숭상하다가 우리말도 잃어버리고 영어도 잘못하는 아이들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하는 것은 이제 거의 정설이다.

 

우리나라 교육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이토록 중대한 정책을 자기들 입맛에 맞는 몇몇을 초청하여 공청회라는 이름 하에 연 뒤 무조건 밀어붙이는 인수위 행태를 보면서 앞으로 5년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영어 공교육 완성프로젝트'에 관한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정당한 비판을 발목잡기식, 억지 비난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재고하는 것이 손실을 적게한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다가 나중에 가서 거두어 들인다면 그 많은 낭비와 손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찾을 길이 없다. 늦기 전에 포기하는 일이 가장 앞서 가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2008.02.01 08:12 ⓒ 2008 OhmyNews
#영어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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