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어디가 좋았어요?" 묻지 마시라

[세계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24 마지막] 베를린의 마약전담반 형사 알렉스와 낸시

등록 2008.02.08 11:03수정 2011.07.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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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와 한 장의 사진 동-서독 사이에 철조망이 막 생겨날 무렵, 경계근무를 서던 군인이 오히려 철조망을 넘고 있다. ⓒ 양학용


베를린 공항에 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낸시(Nancy Wegner)가 반갑게 포옹한다. 그녀는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뜬금없이 묻는다.

"너희 부부더러 경찰이 뭐라 안하데?"
"경찰이 왜?"
"마약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더냐 말이야?"
"………."


무슨 소린가 했더니 알렉스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다. 아내와 내가 이스탄불-베를린간의 시차를 잘못 알려준 덕분에 그들은 2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나왔다고 한다. 거기에다 비행기가 또 1시간 연착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된 알렉스가 우릴 골탕 먹이려고 장난을 쳐두고 간 거였다.

알렉스, 그의 직업은 베를린 형사다. 그것도 강력계 마약전담반. 그가 공항경찰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또 은밀하게 당부한 것이다.

"한국인 부부 두 명을 보면 즉시 연락 주시오!"

풋, 멋진 환영식이 될 뻔했다.

'마약밀매 한국인부부 베를린에서 잡히다!'


'마약밀매 한국인부부', 베를린 형사와 접선하다

알렉스와 낸시를 만난 건 볼리비아 우유니에서였다. 피케팅까지 벌이는 해프닝 끝에 칠레로 가는 지프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들 커플 역시 비슷한 문제로 여행사 사장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알렉스는 1m90㎝가 넘는 키에 날렵한 몸매, 깊고 강렬한 눈빛, 멋진 꽁지머리를 하고 있어 첫 인상은 형사라기보다 영화배우에 가까웠다. 낸시도 마찬가지였다. 큰 키에 이지적이면서도 귀여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왠지 끌리기도 하고, 서양 여행자의 경우 흔치 않는 광경이라 피케팅 노하우를 살짝 일러줬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보상을 받게 되었고, 배짱이 맞은 우리들은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이 베를린 차를 대접하자 우린 한국음식을 선보였다. 그렇게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다시 칠레에서 아르헨티나까지 함께 여행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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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갤러리 (베를린 장벽) ⓒ 양학용


아르헨티나 살타에서의 일이다. 버스는 밤 12시가 넘어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미국인 커플까지 여섯 명이었는데 호스텔에는 딱 6개의 침대만 남아 있었다. 2개 방에 3개씩, 그러니까 한 커플은 잠을 따로 자야 한다는 뜻이었다. 먼저 미국 커플이 약삭빠르게 한 방으로 쏙 들어가고 아내와 난 주저했다. 그 때 알렉스와 낸시가 자기들이 따로 자겠다는 것이 아닌가. 역시 보통 서양친구들과는 다르다.

이튿날 아침, 두 친구는 방을 뺐다. 다음날 새벽버스를 탈 텐데 숙박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그 시간까지 바에서 맥주를 마실 거란다. 점점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짠돌이 성격까지 우리 부부와는 국화빵이다.

그날 밤, '바'는 우리 부부 방으로 결정되었다. 우리들은 음악을 들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왠지 새벽이 빨리 오는 밤이었다. 마침내 헤어져야 하는 아쉬운 순간, 알렉스가 제안 하나를 내놓았다.

"우리 집에 방이 세 개거든. 내년 월드컵에 한국부부 한 쌍을 베를린으로 초대하고 싶은데, 혹시 추천할 만한 한국 부부 있니?"

그리하여 독일 커플은 새벽버스를 타고 떠났고, 한국 커플은 6개월 동안 남미와 아프리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러시아를 가는 길목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맺은 인연, 달콤한 베를린 동거로

그들의 집은 쇤하우제 알레(Shŏnhauser Allee)에 있는 'ㅁ'자 모양의 아파트 5층이었다. 우리 부부가 묵게 될 방에는 하얀 매트리스와 시트가 깔렸고, 냉장고에는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보낸 엽서가 예쁘게 붙어 있었다.

그날부터 네 사람의 달콤한 베를린 동거가 시작되었다. 저녁마다 한국 요리·독일 요리·아프리카 요리로 만찬을 열었고, 주말이면 베를린 안팎을 돌아다녔다. 비오는 날 밤이면 독일어 자막이 나오는 한국 영화를 빌려보고, 또 어떤 날에는 그들 친구들과 파티를 열었다.

두 사람이 출근하고 나면 아내와 난 러시아 여행을 준비했다. 낸시의 동독 시절 초등학교 교과서로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과 여행사를 쫒아다니는가 하면, 시베리아열차에서 읽을 <닥터 지바고>나 고리키의 <어머니>를 구하려 중고서점을 온통 뒤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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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맥주사랑. 주말 오전, 축구경기장에서 ⓒ 양학용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아침 일찍 축구경기장에 갔다. 얼마 전 경찰관이 살해된 총기사건이 있었는데, 그 추모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분데스리가 베를린팀과 경찰·유가족 연합팀. 전반전만 '7:0', 후반전 결과는 아무도 기억 못할 만큼 경기 자체는 시시했다. 하지만 쌀쌀한 날씨에도 경찰 가족과 시민들이 구장을 꽉 채웠고 아이들은 축구스타에게 열광했다.

그 아침시간에 알렉스가 생맥주를 두 잔 사들고 왔다. 전광판 시계는 '10시 37분', 암튼 독일인들의 맥주사랑은 못 말린다. 경기가 끝나자 낸시가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달려 동베를린 지역 주택가의 쪼그만 가게에 도착했다.

"무슨 아이스크림 하나 먹겠다고 이 먼 곳까지 온담!?"

투덜거리는 내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그녀는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며 아이스크림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12살 때부터 다니던 단골집이야. 어머, 저 아저씨 좀 봐. 저 바지, 저 앞치마. 15년 전과 똑같다니까. 맛도. 이 자리도. 변한 거라곤 주문창구에 목만 겨우 내밀던 내 키가 이렇게 컸다는 것뿐이야."

아내는 '같은 사람, 같은 앞치마, 같은 맛, 늘 한 자리에 있어 더 사랑받는 사회'의 매력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이든 빠르게 갈아엎고 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허둥지둥 쫒아 다녀야하는 우리들 사회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인간적인 사회도 좋지만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민생고는 언제 해결할지가 더 궁금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체면불구,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에 젖어 있는 낸시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밥은 언제 먹어?"
"무슨 밥? 먹었잖아. 맥주. 아이스크림."

"한국에선 초등학생이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 다닌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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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가 만든 김치 그의 첫 번째 작품... 맛은 그럭저럭. ⓒ 양학용


아내와 난 눈이 똥그래지고 알렉스와 낸시는 신기하다는 듯 입이 벌어졌다. 네 사람의 눈빛이 '빠지직' 한 점에서 충돌했다. 소위 문명충돌!? 베테랑 나그네들이 먼저 꼬랑지를 내렸다.

아내가 장 봐서 일찍 저녁 해먹자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한국 음식 킬러인 그들은 대찬성이었다. 알렉스는 반드시 김치를 담가야 한다며 한 술 더 뜨더니 대형마켓으로 차를 몰았다.

그날 저녁, 드디어 알렉스는 넓적하고 두툼한 손으로 아내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사사받았고, 낸시와 난 비디오대여점에서 <살인의 추억>을 빌려왔다. 그날 밤 영화를 보고나서 한국경찰 송강호가 뱉어내는 "야!", "18!" 이런 말들을 흉내내던 베를린경찰 알렉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을 다닌다던데, 정말이야?"

몇 달 전 텔레비전에서 '믿거나 말거나' 류의 세계토픽을 본 적이 있다는 거다. 오! 그날의 난감함이라니! 내가 얼버무리며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얘기를 들려달라고 딴청을 피웠다. 낸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글쎄…, 그 때 난 어렸으니까. 서베를린에 사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는 기억뿐이야. 할머니는 매 주말에 오셨지만 우린 갈 수 없었거든. 사진 속 할머니 집은 근사해 보였는데. 그러니까 장벽이 무너지던 그 주말 처음 할머니 집에 갈 수 있었지. 그게 좋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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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안에 베를린 장벽이! 별 걸 다 상품화하는 독일인 ⓒ 양학용


나이가 한 살 많은 알렉스가 끼어들었다.

"당시엔 비밀이었지만 우리 집은 국경 근처라 서독 방송을 오랫동안 보고 지냈어. 몰래 비틀즈 테이프를 돌려듣기도 했지. 그땐 상품광고, 그래 그게 최고로 멋있었어. 방송에서는 동독에서 벌어지는 시위장면도 생생하게 나왔지.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말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또… 그래, 서독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생각 나. 깨끗했어. 교통신호도 멋졌고. 무엇보다 서독 냄새가 났던 것 같아. 프라이드치킨.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뭐 그런 거."

그 때 별안간 낸시가 알렉스의 말을 자르고 나왔다.

"통일이 그렇게 환상적이진 않았어! 동독 산업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잖아!"
"살아남은 거 하나 있어! '누도시(Nudossi)' 초콜릿 크림! 헤헤."

알렉스는 여전히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낸시의 목소리는 왠지 날카로워져 있었다.

"나도 알아, 알렉스! 나 역시 슈퍼마켓에서 그 녀석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하지만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폐품처리 된 옛날, 이방인 된 동독인

눈치 없는 내가 끼어들었다.

"그럼, 낸시 넌 동독 시절이 그리운 거야?"

"용, 그런 식의 얘긴 아냐. 추억할 거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까. 이해할 수 있겠니? 열한 살까지의 내 추억이 몽땅 폐품 처리된 것 같은 느낌. 그런 기분. 난 가끔 이 사회에서 이방인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리고…."

그녀는 뭔가 더 얘기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스터 데이(Easter Day)를 맞아 알렉스의 시골 부모님 댁에 찾아갔다. 아프리카학 박사 과정에 있는 낸시는 노인 병원 아르바이트 때문에 남아야 했다. 그곳에서 아내와 난 비로소 그날 저녁 낸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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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토끼 알렉스와 낸시의 집 주방에서 ⓒ 양학용


알렉스의 고향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가 태어난 병원, 다녔던 초등학교, 좋아했던 여자아이의 집, 동네 하나뿐인 빵집. 그리고 알렉스의 아버님은 동독시절에 이어 인근 공장의 매니저고 어머님은 병원 간호사여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알렉스가 그날 낸시가 하고 싶었을 말을 대신 해주었다.

"낸시 부모님은 통일되고 얼마 안 있어 일자리를 잃었어. 그 후 지금까지 정원사와 파출부 일을 하시는데 두 분 월급을 합해도 내 월급만큼도 안돼."

이틀만에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낸시가 밝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터 토끼(초콜릿) 세 마리와 함께. 그녀는 아내와 나, 그리고 알렉스에게 한 마리씩 안겨줬다. 물론 알렉스에게는 덤으로 키스도. 그녀의 얼굴에서 그날의 쓸쓸함은 날아가고 없었다.

마침내 떠나는 날 아침. 꼭 20일만이었다. 친구들이 새벽부터 꼼지락거리며 이별 아침상을 준비해 두었다. 한국음식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나무젓가락 두 짝과 아직 학생인 낸시에게는 고액(?)의 도서상품권을 덧붙여 선물했다.

두 사람도 마지막 선물을 내민다. 모스크바행 비행기에서 뜯고 보니 독일요리책과 고춧가루다. 무슨 의미일까. 독일요리도 매운 구석이 있다는 걸까. 한국을 방문할 테니 그때까지 독일요리를 열심히 익혀 손님대접에 만전을 기하라는 분부일까. 후후, 후자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베를린에서 보낸 아름다운 날들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안녕,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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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 양학용


헤어졌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됐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여행할 때 낸시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오늘 알렉스가 너희가 떠난 후에 두 번째로 김치를 만들었어. 점점 맛이 좋아지고 있어.'

몽골로 넘어갔을 때 다시 메일이 왔다. '어제 값싸고 맛있는 한국 레스토랑을 찾아냈어. 특히 김치 맛이 제대로야. 아마 단골집이 될 것 같아.'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알렉스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 생일에 낸시가 한국요리책을 선물했어. 최고의 날이었어.'

그리고 두 번 엽서가 날아왔다. 브라질에서 한 번. 스페인에서 한 번. 괘씸했다. 한국을 제쳐두고 브라질과 스페인을 먼저 여행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알렉스로부터 다시 메일이 왔다. '2008년 2월이면 낸시의 학업이 모두 끝날 예정임. 그래서 3월에 한국으로 여행가기로 했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요즘 아내와 내게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겨났다.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다가도 "야아, 맛있다. 걔네들 오면 여길 데려오자." 산에 갔다가도 "3월이면 꽃이 절정이겠지, 한국의 산을 자랑해야지!"라며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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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만남. 알렉스와 낸시로부터 온 엽서들 ⓒ 양학용


우리 부부가 3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꼭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우리 부부의 대답은 그때 그때마다 다르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을 한 줄로 세워 순번을 매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아내와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그건 사람들이다. 내 자리를 떠나서 만난 친구들. 그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리움이다.

덧붙이는 글 | 이번 기사로 <안녕 친구야! 세계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합니다. 지난 여행기를 계속 써낼 수 있었던 건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 덕분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못 다한 이야기들을 더하여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지면을 통해 다시 만나 뵙길…. 따뜻하고 유쾌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덧붙이는 글 이번 기사로 <안녕 친구야! 세계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합니다. 지난 여행기를 계속 써낼 수 있었던 건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 덕분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못 다한 이야기들을 더하여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지면을 통해 다시 만나 뵙길…. 따뜻하고 유쾌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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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세계여행 #친구 #만남 #독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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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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