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방문했다. "왜 이렇게 감기가 독한지 모르겠다"며 설 명절이 다가오니까 또 감기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하신다. 내일이면 손자들도 오고 괜히 나 때문에 감기 옮아가면 안 되는데 하시며 설날 이야기를 꺼내신다.
두부 만들기 하루, 술 담그기 하루, 놋그릇 닦기 하루
그러면서 할머니는 예전에 설 명절을 보냈던 일들을 기억을 더듬으며 들려주신다. 예전에는 하루 장보는 것 빼고도 한 삼사일 전부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단다. 하루는 두부를 만드느라고 보내고, 또 하루는 술 담느라고 보내고, 또 하루는 놋그릇을 닦느라고 보내야 했다고 한다.
두부는 맷돌에 콩을 직접 갈아서 끓이다가 지름찌꺼기를 부어서 저으면 거품이 삭는다. 그것을 끓여서 간수를 넣고 또 저으면 두부가 몽글몽글 생긴다고 한다. 그것을 또 한 번 살짝 끓여서 자루에 넣고 꾹 눌러놓으면 두부가 완성이 된다. 적당한 시간 동안 눌러서 모양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두부가 완성된다고 한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뜨끈한 비지에 김치를 넣고 비벼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며 군침을 삼키시는 할머니, "요즘 두부는 그 맛이 안 난다"며 "쉽게 하니까 맛이 덜한 모양"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래도 설 명절 보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는데도 이제 늙어서 몸이 불편하니까 설 명절이 오히려 안 왔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아마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명절이 다가오면 대부분 여자 분들이 느끼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아닐까.
그렇게 일에 대한 큰 부담감으로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도 은근히 자녀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 그 옛날 놋그릇을 닦던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놋그릇은 어떻게 닦았는지 지금 젊은이들은 모를 거란다.
"기와장이 있는데, 시커먼 것은 수놈 기와고 뽀요스름한 것은 암놈기완디, 그 암놈 기와를 가루로 곱게 빻아서 지푸라기로 수세미를 만들어서 하루 종일 빡빡 문질러 닦는데,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도록 놋그릇을 닦았어유. 그 기와 가루를 곱게 빻지 않으면 그릇을 닦을 때 긁혀서 그릇이 못쓰게 되거든유. 아주 곱게 만든 가루로 한 소쿠리도 넘는 놋그릇을 닦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설 명절은 아무것도 아녀유.
술상을 보는데 한번 볼 때마다 서너 상을 봐야 하고, 그것을 하루에 몇 번씩 차렸다 치웠다 했으니 일이 보통 많았간디, 옛날에는 명절에 모이면 40~50명은 됐으니께 밥 한끼 준비하는 것도 꽤 힘들었다니깐. 그런데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명절만 되면 일이 힘들다고 투덜대는데 친정엄니, 시어머니가 왠만한 일은 다 해놓으면 그 때서야 내려와서 하루 거들다 가는디, 집에 가서 몸살 나서 며칠씩 알아 눕는다는 걸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 일을 너무 못 혀유, 안 그래유?”
"네, 할머니, 저부터도 평소에 안 하던 일이라서 명절 지내고 나면 한 일도 없이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가래떡 뽑아놓고 설 기다리는 할머니
할머니는 그래도 명절이나 돼야 자식들과 손주 녀석들 얼굴 실컷 보지, 안 그러면 얼굴 보기 힘들다며 설 명절을 은근히 기다리시는 눈치다. 어느새 가래떡도 뽑아놓고 장도 봐다 놓았다며 설날을 기다리시는 할머니, 말씀은 설날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도 마음은 하루빨리 설 명절이 되어서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고 싶은가 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오매불망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고 집안 곳곳을 살펴 한 보따리씩 싸 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과연 자식들은 얼마나 헤아려 줄까?
당장 오늘 오후부터 귀경 길에 오르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룰 것이다. 해외나 국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고향으로 조상들과 부모님을 만나려고 떠나는 사람들로, 역 대합실과 버스터미널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리라 짐작한다.
이번 설 명절에는 여자들만 일을 해서 힘든 시간이 되지 않도록 남자들이 도와주면 어떨까? 그리하여 할머니, 어머니, 아내들이 느끼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내기를…. 서로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면서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나누며 웃음꽃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고향을 찾는 모든 분들, 안전운행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8.02.05 21:0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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