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능동적 변화를 준비한다

[한국의 진보연구소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불균형의 개선

등록 2008.02.06 14:53수정 2008.02.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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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노동정책연구소'는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새롭게 구상하고 그 안에서 노동의 문제, 진보의 시각을 풀어내고자 하는 곳이다. '산업'은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큰 기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산업정책을 다루는 곳은 산별노조 산하의 연구소를 제외하고는 '산업노동정책연구소'가 유일하다.

연구소는 주로 앞으로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노동과 자본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등의 전망을 제시한다. 진보진영이 스스로 전망을 낼 수 있어야 능동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고, 국민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2006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부설로 세워졌다. 이제까지 주로 자동차, 철도 산업 분야에서 연구 역량을 축적해 왔으며 올해는 금융, 공공서비스, 유통 산업으로 연구를 확장할 계획이다. 또 독립 법인화 추진과 단행본 연구서 발간도 올해의 중요한 계획 중 하나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종탁 부소장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외형적 규모 중심의 '성장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 우리 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또한 금산분리 완화 등에서 보여지듯이 모든 산업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융합되고, 결국 자본의 조종을 받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진보진영에서도 대안을 갖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산업노동정책연구소'의 이종탁 부소장
'산업노동정책연구소'의 이종탁 부소장 새사연
- 연구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이름 그대로 '산업'과 '노동'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노동의 시각에서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전망을 제시하고, 그 전망 속에서 노동문제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의 이해가 담긴 산업정책의 생산이 목표입니다.

또 연구자, 노동조합, 시민사회운동 등 진보진영에 계신 다양한 입장의 분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서로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당은 당의 입장에서 각자의 입장만 강조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증진시킨다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산업정책을 연구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산업이라고 하면 1차 산업인 농업, 2차 산업인 제조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산업정책은 한국의 국가발전 전망 속에서 이런 산업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미FTA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산업정책은 1차 산업인 농업을 희생해서 다른 산업을 살려보자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고 전체적인 산업정책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연구를 합니다.

또 개별 산업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죠. 각 산업별로 어떤 전망과 전략을 세우고,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투입할 것인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룹니다."


- 노동과 관련된 많은 문제 중에서 특히 산업정책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IMF 이후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확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대응은 정리해고 반대, 구조조정 반대 등 고용에 국한되어 머물렀죠. 한국 경제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보 진영의 대안이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재벌을 개혁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한다, 농업을 보호하면서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된 산업 구조에서 현재의 진보 진영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수준입니다. 문제 해결 역시 정부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고요.

새로운 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 그리고 노동계에서도 한국 경제와 산업발전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어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화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아야 국민적 지지도 얻을 수 있고요."

노동자의 경제 결정권 확보가 신자유주의와의 대척점

-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산업구조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까지 산업정책의 주된 내용은 대외개방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발전 전략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IMF 이후 경제구조의 왜곡이 심해지면서 내수와 투자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고통으로 돌아가고 있죠. 산업 자체의 심각한 불균형 상태, 순환구조의 파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보다는 자본 수익의 극대화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상황이 현재 한국 산업구조의 핵심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산업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전진시키는 산업입니다. 우리 경제는 충분히 성장했습니다. 다만 성장의 결과물이 골고루 돌아가고 있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경제 성장이 7% 된다고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죠.

기본적으로 국내 산업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 농업이나 제조업 등이 저부가가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튼튼한 산업적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적은 시간 일하고, 더 편하게 일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효율화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효율화와는 정반대의 개념이죠."

-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노동자, 민중 스스로가 자기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만든 서비스는 모두 나의 노동의 대가로 만들어진 것이며 나는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정말 그런 요구를 할 만한 노동을 했는가에 대해서도 당당히 대답할 수 있어야겠죠.

두번째로는 산업과 경제 분야,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장의 영역에서 노동자들의 참여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산업정책과 기업의 경영전략은 정부관료와 기업 경영진이 결정할 문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노동자들도 자기 임금과 처우개선 문제를 뛰어넘어 산업과 경제 문제에서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또 노동자, 민중이 경제 분야에서도 자기 결정권을 갖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와 가장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주주만이 결정권을 갖고 있고, 모든 결정이 주주를 위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반대로 우리는 노동자, 민중의 결정으로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작은 공장과 기업에서부터 국회나 정부 차원의 산업정책까지 노동자, 민중의 다양한 주체가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있는 연구소 내부 모습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있는 연구소 내부 모습새사연

- 올해 연구 계획은 무엇입니까?
"작년에는 주로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와 산업정책이라는 포괄적 주제에 관해 연구를 했습니다. 작년의 연구가 총론적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산업별 주제로 세분하여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자동차, 철도 산업 분야는 작년부터 꾸준히 주력해왔던 연구 분야로 월간 산업보고서를 만들어 연구 결과를 알려갈 생각입니다. 여기에 금융, 공공서비스, 유통 분야에 대한 연구를 올해 중점적으로 진행합니다.

이와 함께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진단과 반성에 기초해서 노동운동을 둘러싼 이론적 모색과 실천적 모색을 정리하여 올해 안에 책자로 발간할 생각입니다. 공개 심포지엄도 함께 개최할 예정이고요."

진보진영에서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상처주지 말았으면

- 현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연구소인데, 비정규직 문제와 산업정책의 문제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비정규직 문제는 특정 직종이나 고용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뜻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역시 비정규직의 문제만을 다루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사회 노동문제의 핵심모순을 다루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도 구체적이고, 정책적 대안을 담은 대책을 모색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각 산업별로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고, 또 산업전망을 세우는 속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 현재 연구원은 몇 명 정도이며, 재정은 어떻게 감당하고 계신가요?
"소장님과 저를 제외하고 3명의 연구원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건강상의 이유로 휴가 중이셔서 현재는 총 4명의 연구원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정은 주로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받아서 충당합니다. 그리고 회원들의 후원금도 있고요. 현재 '비정규직노동센터'의 회원이 400여 명 정도이고, 우리 연구소의 회원이 100여 명 정도 있습니다."

- 진보 진영의 연구소에서 일하시는 동안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재정 문제가 가장 크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계신 분들은 재정 문제 때문에 계속 연구에 매진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의지가 있어도 못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러다보니 능력 있는 석박사들도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 관계죠. 특히 괜한 소문 같은 것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의견이 달라서 같이 갈 수 없다면 굳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았으면 합니다.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이명박 정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악화시킬 것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부설로 '산업노동정책연구소'와 '민주노무법인'을 두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부설로 '산업노동정책연구소'와 '민주노무법인'을 두고 있다 새사연
- 새로 등장하는 이명박 정권을 바라보시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첫 번째는 성장 이데올로기의 부활입니다. 외형적 규모 중심의 성장을 추구하다보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묻어두거나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이명박 당선인께서 내부의 문제를 '법과 질서'로 다스리겠다고 하니, 결국 고통은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돌아가고 성과는 외국자본과 국내독점세력에게 돌아가지 않을까요?

두 번째는 금융, 서비스, 제조업 등의 각 산업들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융합되는 것입니다.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죠. 금융산업과 제조업이 합쳐지고, 서비스업과 자본이 합쳐지면 결국 모든 산업의 뒤편에서 자본의 조종이 있을 것입니다. 직접투자 위주였던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들이 간접투자를 확대하기에도 더 수월해지고, 경제 순환의 불균형과 양극화는 더 심해지겠죠."

- '산업노동정책연구소'만이 갖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선은 자동차, 철도 산업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다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현재 자동차, 철도 산업 분야의 산업동향 브리핑을 매주 발표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진보의 입장에서 산업정책을 연구하는 일이 쉽지 않기도 합니다."

- 어떤 점에서 '진보의 입장에서 산업정책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가요?
"산업정책을 연구하는 것은 새로운 전망과 변화를 제안하는 일입니다. 산업에 들어가는 생산요소인 노동의 재배치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각 산업이 바뀌어야 할 부분도 이야기합니다. 현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죠. 자본의 변화를 요구함과 동시에 노동의 변화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노동계는 구조조정 10년의 기억이 강하기 때문에 무언가 변화를 제시하는 일에 소극적입니다. 뭔가 조금만 바뀌면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줄고, 노동 강도가 심해지고, 비정규직이 발생하는 것으로 연상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진보진영에서까지 노동계에 그런 변화를 요구해야 하냐면서 불편해 합니다. 노동 내부의 변화와 반성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힘든 면이 있죠.

하지만 우리가 먼저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결국 일어나는 변화에 수세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신자유주의의 피해를 최소화할까 정도에서 그치게 되는 것이죠.

때문에 우리 연구소의 이런 역할이 때로는 어려움이 되기도 하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태에 머물지 않고 노동의 자기 변화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요."

덧붙이는 글 | 산업노동정책연구소(소장 김성희)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7가 94-37 세명빌딩 301호
홈페이지 www.workingvoice.net
전화 02-312-7488 / 팩스 02-312-1638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산업노동정책연구소(소장 김성희)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7가 94-37 세명빌딩 301호
홈페이지 www.workingvoice.net
전화 02-312-7488 / 팩스 02-312-1638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진보연구소 #이종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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