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등록금 인상' 외치던 MB, 결국은...

[기자수첩] 서민의 아픔 아는 대통령 된다던 이명박

등록 2008.02.10 19:04수정 2008.02.1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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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는 정부의 지원없이도 건설이 가능하다며 그 필요성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는 정부의 지원없이도 건설이 가능하다며 그 필요성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했다 ⓒ 김기석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는 정부의 지원없이도 건설이 가능하다며 그 필요성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했다 ⓒ 김기석

내가 이명박 당선인을 처음 대면한 게 벌써 재작년이다.

 

늦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2006년 9월 7일, '전 서울시장' 또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불리던 이명박 당선인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에 있는 한남대학교를 방문해 성지관에서 1천여 명에 가까운 학생에게 강연했고, 당시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열변을 토하던 이명박 당선인을 처음 취재했었다.

 

그날 강연내용은 포항에서 고생했던 어린 시절과 현대 입사 뒤 고속승진 등 그의 저서 <신화는 없다>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이명박 당선인의 강연 내용보다도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과 가졌던 질의응답 내용이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의 이미지로 굳어진 채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이 강연을 끝낸 뒤 다섯 개의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어떤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등록금 동결 주장'에 힘을 보태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한남대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다.

 

의례적인 답변을 예상했던 나, 이명박 당선인의 말에 놀라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 정도의 의례적인 답변을 예상했던 나는 이명박 당선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명박 당선인은 학생의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건 안 된다. 현재의 등록금보다 더 많이 내서 학교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열기로 가득 찼던 장내는 한순간 서늘해졌으며 학생들도 나만큼이나 당황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한 정당의 대선후보 중 한 명이라면 자리를 메워 준 학생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라도 '학생의 요청을 고려해 보겠다'라는 말은 고사하고, 그토록 간단명료하고 강경하게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당당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그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게 '기여입학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5·31 지방선거의 완승으로 인기가 절정에 있었던 박근혜 대표에 비해 지지도가 열세이었음에도 한나라당의 유력 주자 중 한 명이었기에 내 머릿속에는 그가 혹시라도 당선된다면 '부자들만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자리 잡았고, 지금 그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강남이 부러우면 강남으로 이사 가라'는 우스갯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상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강남에 살 수는 없다. 대신 대한민국 곳곳에 강남을 만들고 누구나 빈부의 격차로 인해 심하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교육문제에 관해선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상황으로만 봐서는 앞으로 최소한 5년은 틀린 거 같다. 이명박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뉴스를 보면 '수도권에서 돈꽤나 굴리는 부유층'이 아니면 사람대접 제대로 받기도 쉽지 않을 거 같다.

 

오늘(10일) 오전에 들려온 소식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새 정부의 청와대 수석은 온통 서울대에 영남 출신이다.

 

'파이는 키워서 나눠먹어야 한다'는 국가 정책 때문에 대한민국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 맨 게 반세기가 지났다. 그 덕분에 재벌은 수백 배나 덩치가 커지고 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하지만 그토록 고생했던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만 있다. 그리고 조만간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기득권 세력들은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3위 안에는 들어야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태세다.

 

서민들은 20세기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

 

어느 한나라당 예비후보는 얼마 전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 같은 나의 지적에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지는 몰라도 예전보다 잘 사는 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서민들은 20세기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 되묻지 못했다.

 

오죽하면 지난 대선에서 '지난 10년도 속았지만 누가 돼도 서민들이 삶이 나아지기 힘들다면 허경영 후보를 밀어보자'는 유머(?)가 먹혔을까.

 

완벽한 여유자금으로 펀드에 가입한 부유층이야 곤두박질치는 주식시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 연휴에도 외국으로 골프여행을 다닌다지만, '펀드도 하나 가입 안 했어?'라는 주변의 말에 자존심도 상하고 아이들 간식비라도 마련해 보려고 이 돈 저 돈 긁어모아 펀드에 가입한 서민들은 속이 타들어 가는 게 요즘이다. 

 

물론 그게 이명박 당선인 책임이라고 하는 건 너무 억지지만 그만큼 서민들은 믿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규모의 경제만을 신봉하는 재벌사 회장 출신의 이명박 당선인은 좌고우면도 없이 친기업적인 정책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친재벌'을 외칠 태세다. 대한민국에서 친재벌 정책이 드러내놓고 진행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새삼 논의하고 싶지도 않다.

 

각설하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에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쯤에서 이명박 당선인에게 지나친 친기업정책을 지양하고 서민들도 허리를 펼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이명박 정부'가 돼 주길 진심으로 당부한다. 

 

그것이 젊은 이명박이 이태원 시장에서 새벽 통행금지가 풀리면 리어카에 쓰레기를 싣고 삼각지에 갖다 버리는 고된 일을 하면서 꿈꿔왔던 세상이라고 믿어보면서.

덧붙이는 글 | 김기석 기자는 대전시티저널 기자입니다. 

이기사는 대전시티저널 (www.gocj.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2.10 19:0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기석 기자는 대전시티저널 기자입니다. 

이기사는 대전시티저널 (www.gocj.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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