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숙도쿄 무지개모임 조영숙 회장
김영조
- 어떻게 무지개 모임을 만들었는가.“1996년 처음 해본 행사에 우리는 한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좀 더 많은 사람을 모이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우리 교포들은 서로 가까이에 살고 있어도 일본인과 겉모습이 비슷하니 같은 동포임을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구보에 광고를 내는 것이었는데 이를 보고 15명 정도가 모였다.
이 15명이 모여 아리랑회는 출발했고, 회원들은 해마다 힘을 모아 구청 행사에 참여 한국의 음식을 팔면서 나름대로 민간외교원의 역할을 한다고 자부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이면 한국과 일본의 무겁고 거추장스런 옷들일랑 다 벗어 던지고 수다 속에서 꿈틀거렸다. 특히 한국을 한번 갔다 오면 한·일간 비교가 난무하고, 일본이 독도문제나, 역사왜곡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면서도 차츰 일본문화의 이해자가 되어가는 한편, 한류의 성행에 가슴 뿌듯해 하기도 했다.”
- 처음에 ‘아리랑회’로 시작했는데 왜 ‘무지개모임’으로 바뀌었나?“모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겨레의 정서, 역사를 가장 잘 나타내는 낱말 '아리랑'을 이름으로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우리는 역사 속의 이름 ‘아리랑’보다는 새 희망과 한국·일본 두 나라를 잇는 다리라는 뜻의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무지개모임은 우리 문화를 공부하고 알릴 것- 무지개모임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난해 우리는 평소에 가진 것을 소개하는 자리를 일본인들과 함께 마련했다. 김치찌개, 부침개, 잡채 따위의 요리교실, 한국문화유산 사진전시회, 대장금 주제가를 중심으로 한 음악회 '국제교류 2007'이라는 행사인데, 그 배경은 한류붐이다.
한·일간 역사왜곡 따위로 진실의 중심은 얼어붙어 있었지만, 대중사회는 <겨울연가> <대장금>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뒤 서서히 얼음이 풀리면서 한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이런 것 저런 것 물어왔는데 곤란했다. 사실 우린 한국사람이긴 하지만 한국문화에 정통한 게 아니고, 오히려 열심히 공부한 일본인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류 속의 일본인들 속에서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국제교류 2008'에는 전통오차교실을 예정하고 있고, 겨울철엔 김장교실, 2009년 설날을 앞두고는 한복교실을 열기로 했다. 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일 문화 비교·교류, 어린이 도서'를 낼 예정이다.
내년엔 청소년들을 위한 한국어교실을 운영해볼까 한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차츰 우리말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일주일에 한번 멀리 민단학교까지 보내는데 엄마들의 불편함이 대단한 것은 물론 형편상 민단학교까지 못 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엄마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을까?
또 종요로운 것은 올바른 한·일간의 문화를 알고 서로 문화를 존중하는 정신을 기를 생각이다. 특히 우리 문화 속에는 일제 쓰레기가 많이 남아 있어 일본 것을 우리 것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 속에서는 그런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