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우리 언론은 떳떳한가?

한 대학생 인턴기자의 주제넘은 미디어 비평

등록 2008.02.15 17:44수정 2008.02.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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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2월12일자 1면
<중앙일보> 2월12일자 1면중앙PDF

"숭례문 우리가 태웠다."

지난 12일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맞다. 국보1호 숭례문, 우리가 태웠다. 한줌 재가 되어버린 선조들의 얼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까. 흉물이 되어버린 숭례문을 복원시킨다 해도 모든 것을 완전히 처음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복원, 가림막, 국민성금 등을 둘러싸고 화재 이후에도 끝없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잘못을 명확히 가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화재 후 언론 보도, 질타·훈계·꾸짖음만

우리 언론도 연일 이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다. 워낙 대형 사건이니까 당연히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인턴기자인 내 눈에는 뭐랄까… 좀 무서워 보인다. '질타'와 '훈계'만 넘쳐난다. 꾸짖기만 하는 것 같다. 여기도 잘못 저기도 잘못, 온통 딱지 붙이기에만 혈안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문화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문제점을 들춰내는 기사가 쏟아진다. 뒤늦은 것 아닌가?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외유성 출장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듯 몰아가는 보도도 있고 거의 모든 유관 기관은 자신들의 잘못을 끝까지 발뺌하고 있는 기관으로 낙인찍고 있는 것 같다. 큰 사안이어서 그런지 언론이 다소 흥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화재가 발생한지 2~3일 지나자 언론의 초점은 숭례문 '개방'에 맞춰졌다. 개방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숭례문 개방을 지적하고 있는 <중앙일보> 2월14일자 '방재엔 무심했던 숭례문 개방'.
숭례문 개방을 지적하고 있는 <중앙일보> 2월14일자 '방재엔 무심했던 숭례문 개방'.중앙PDF
<국민일보>는 12일 '[잿더미 된 국보1호] 문화재 개방 문제없나… 출입금지 흥인지문에 칼자국,창경궁·화성은 화재 피해'라는 기사에서 "참여정부 들어 그동안 직접 접할 수 없었던 문화재가 개방됐다"며 "일반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2006년 창경궁 문정전과 수원 화성의 서장대는 방화로 피해를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참여정부를 겨냥하면서 문화재 '개방'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경향>은 12일 '안전대책 없는 개방, 참사 낳은 전시행정'에서 "서울시장 재직시절이었던 2006년 숭례문 개방을 주도했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숭례문 화재의 화살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며 "숭례문은 이렇게 당시 서울시장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조명받으며 개방됐지만 정작 중요한 안전대책은 세우지 않았던 셈"이라고 이명박 당선인의 책임론을 부각시킨 뒤 '개방'이 주는 부작용을 꼬집었다.


<한국일보> 14일자 '흥인문도 숭례문 꼴 만들텐가... 안전 방재 대책 없는 문화재 개방 여론 도마에'와 <중앙일보>의 13일 기사 '방재에 무심했던 숭례문 개방'기사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방 당시에 신중하지 못했다, 개방할 때 이런 사태를 예상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옳은 지적이다. 반드시 언론이 지적할 부분이다.

하지만 갑자기 든 생각. '지금 이렇게 꾸짖고 있는 언론이 숭례문 개방 당시에는 어떻게 보도 했을까? 같은 주장을 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이 이런 점을 흘려 들었던 것일까?'

'숭례문이 시민의 품에 안겼다'고 반기던 언론이...

궁금했다. 숭례문이 일반인에게 최초 개방된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봤다. 3일간 자료를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대부분 신문의 당시 보도는 짧은 '보도자료성' 기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숭례문이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지난 2005년 5월 27일.

<동아일보>는 당시 아예 [단신]이라는 말머리를 달아 '숭례문광장 27일부터 개방'이라는 기사를 단순 전달했고 <조선일보> 역시 26일 '숭례문 광장 내일 열린다-걸어서 접근할 수 있게 5곳에 횡단보도 신설'이란 제목의 짤막한 기사만을 실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발언을 옮긴 수준이다.

 숭례문 개방을 보도한 <조선일보> 2005년 5월 26일자.
숭례문 개방을 보도한 <조선일보> 2005년 5월 26일자.조선PDF


<한겨레>와 <경향신문> <한국일보>도 '남대문 시민 품으로', '숭례문 빗장 98년만에 풀린다', '숭례문이 열렸다'는 제목 아래 짤막한 소식만을 전했을 뿐이다.

2005년 당시는 숭례문 광장만이 개방됐고 중앙 통로는 닫혀있었기 때문에 짧게 다룬 것일까? 그렇다면 숭례문 중앙통로가 개방된 2006년 3월 당시 보도를 살펴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100년만에 숭례문이 열렸네'(<조선일보>), '숭례문 아래로 걸어가볼까...98년 만에 통행 허용'(<중앙일보>), '숭례문 속살 드러내다'(<동아일보>), '남남남대문을 열어라'(<한겨레>), '숭례문 99년만에 시민품에'(<경향신문>)….

한 스포츠 신문이 실은 "숭례문 열리자 남대문 상권 '활짝'" 기사 정도가 기획, 분석기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모든 언론이 숭례문 개방을 반겼고,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단순한 사실 전달에 머물렀다. 한 단락, 두 단락짜리 기사도 보였고, 가장 길게 보도한 기사 역시 7~8단락을 넘지 않았다.

지난 3일간 '한국언론재단' 기사검색 데이터베이스와 포털사이트, 각 언론사 홈페이지를 검색해 본 결과, 최근 언론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숭례문 개방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단 한 건', '단 한줄'도 없었다.

<경향>, 2006년엔 개방시간 연장하라더니...

자료를 찾다보니 <경향신문>의 보도가 눈에 띈다. 2006년 3월 3일 당시 숭례문 중앙통로 개방시간은 평일 오후 5시까지였다. "서울역 부근에 노숙자들이 많아 문화재 훼손 우려가 있다"며 "처음 시행하는 개방이니 공무원들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숭례문을 닫기로 했다"는 게 당시 중구청의 입장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3월 7일자 [기자메모] '조선시대보다 못한 숭례문 개방시간'에서 "심야에 숭례문 개방 업무를 담당할 인력이 없는 데다 노숙자들이 문화재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중구청의 설명을 '말 그대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쏘아붙였다.

기사는 이어 "100년 만에 돌아온 국보 1호를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주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라면서도 "대다수 문화 소비자들이 관람하지 못하는 시간대에만 숭례문을 개방하는 처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때도 숭례문은 새벽 4시쯤 열고 밤 10시에 닫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숭례문 개방시간은 여섯 달 후인 2006년 9월 오후 5시에서 저녁 8시로 연장된다.

그러나 최근 <경향신문>은 과거와 다르다. 12일자 신문의 '공무원이 퇴근하면 문화재 관리도 'OFF'…야간 집중된 방화사례'라는 기사에선 "채씨가 숭례문을 범행 장소로 택한 이유도 경비가 허술하고 접근이 쉬워서였다", "숭례문 관리자는 평일에는 3명, 휴일에는 1명만 근무한다. 그나마 오후 8시 이후에는 모두 퇴근해 무인경비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에 '숭례문 개방 시간 늘려야 한다, 인력이 없다는 식의 얘기는 행정편의주의'라고 비판만 하지만 말고, 보다 깊이있는 대안을 함께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앙상한 숭례문... 언론도 책임있다

 지난 11일 화재로 처참하게 불타버린 숭례문
지난 11일 화재로 처참하게 불타버린 숭례문 남소연

숭례문 개방 당시 언론이, 지금 쏟아내는 비판과 질책의 반만이라도 공을 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건이 발생한 후에 '호들갑' 떨지 말고 미리 침착하게 쟁점을 짚었다면 또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사건 후 당시 보도를 내세우며 "우리 신문이 이렇게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막더니 것 봐라. 대형 참사를 부르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신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 인턴기자지만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언론에게는 올바른 정보제공과 여론의 환기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지만,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려면 무엇보다 책임있는 가치판단과 분석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언론은 늘 '혹시'라는 물음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고 배웠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치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준비를 잘했다고 해서 예고 없이 닥치는 대형 사고에 당황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사고가 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사명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구자민 기자는 <오마이 뉴스> 7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구자민 기자는 <오마이 뉴스> 7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숭례문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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