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부도부도는 80여기. 이 가운데 온전하게 남은 것은 60여기이고, 나머지 10여기는 부도비는 없고, 받침돌만 남아 있다. 이 부도밭에는 특이하게 ‘생사리탑’이 있다. 이 부도는 살아있는 몸에서 얻은 사리를 안치한 것이다. 만해 한용운이 집필한 ‘건봉사 및 건봉사 말사 사적’에 따르면 1854년부터 10여명의 스님이 3년간 수도하면서 살아있는 몸에서 빼낸 26과의 사리를 안치한 것이다.
최원석
아도화상과 도선국사, 나옹화상, 사명대사, 만해 한용운 등이 이 절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고승들이니 한국불교사가 여기 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승군을 일으켰고, 일본에서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를 찾아 건봉사에 봉안하기도 했다. 사명대사가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는 만일염불원에 모셔져 있어 일반인들의 친견이 가능하다.
이 치아 사리는 본래 통도사에 있었다. 이것을 임진왜란 때 일본이 훔쳐가자 사명대사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담판을 벌여 되찾아 왔다. 그 후 건봉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1900년대 초까지 영화로운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 근대사의 아픔도 배어 있는 곳이다.
건봉사는 한국전쟁 때 잿더미가 되었다. 사람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945년 북한의 통치권에 묶이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10일. ‘부처님 오신 날’을 불과 3일 앞두고 재앙을 맞이했다고 한다. 유엔군은 후퇴하던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던 건봉사에 무차별 공습을 벌인다. 3~4대의 폭격기는 대웅전 지역의 모든 전각을 불태웠다. 국보 412호 ‘금니화엄경’ 46권과 도금원불, 오동향로, 철장 등 사명대사 유물이 모조리 사라졌다
16년 전 이곳을 참배했을 당시 함께 했던 심상란씨는 국군을 따라 강릉에서 이곳에 와 주먹밥을 만들어 향로봉까지 지게로 져 날랐다고 했다. 이 지역은 2년간 처절한 고지전의 현장이었다. 향로봉·건봉산 전투는 물론 북한 쪽의 351고지전투, 월비산 전투 등 전사에 남을 지루한 싸움이 벌어졌다. 1951년 4월부터 휴전 직전까지 16차례의 공방전에서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발에, 미 7함대 함포사격과 공군기 폭격으로 초토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