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의 살신성인... 문화재 중요성 깨달아야

고등학교 국사 교사가 바라본 숭례문 화재 참사

등록 2008.02.17 14:35수정 2008.02.17 14:35
0
원고료로 응원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 다하여라

 

숭례문이 불타던 그 시각, 기자는 TV에서 방영해 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편안하게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에 라디오 뉴스를 듣고서야 숭례문이 전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전날 아홉시 뉴스 마지막에 화재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불길이 거의 잡혔다고 해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숭례문이 소실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처음 든 생각은, 왜 진작 가 볼 생각을 못했을까였다. 물론 지나가면서 본 적도 있고, 밤에 조명을 받는 숭례문의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수업에 쓰기 위해 참고 도서와 사진기를 들고 가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바라보며, 부분부분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이 멋진 모습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애들도 감동할까 고민하며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수원 화성은 5번이나 가서 보았다. 나 혼자 답사차 한 번, 학생들을 인솔해서 3번, 외국에서 온 손님을 모시고 또 한 번… 갈 때마다 행복했었고, 이 멋진 수원화성을 가까이서 항상 두고 볼 수 있는 수원 시민들은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안동의 병산 서원도 가보고, 순천의 송광사도 가보고, 영주의 부석사와 풍기의 소수 서원도 가보고, 경주의 문화재도 세 번이나 가보고, 공주와 부여의 백제 문화재도 가 보았다. 김해에 가서 가야의 문화 유산도 샅샅이 살펴보았고, 충청도의 웬만한 문화재들도 볼 만큼은 보았다.

 

하지만, 숭례문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에, 언젠가는 가 볼 거라고 생각만 했을 뿐 가보지 못했다. 마치 부모님께서는 항상 집에 계시고, 언제든 찾아가면 넉넉히 웃으며 맞아주시기에, 친구들을 더 찾고 그들을 더 좋아하듯이 말이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정철 -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시조다.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이들이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숭례문 참사를 보며 이 시조가 생각이 났다. 일본이 정한 국보 1호이기에 국보 1호로서 가치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논란도 많았고, 바꿔야 한다는 말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국보 1호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국보급 유물을 보러 다니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숭례문은 별로 보고싶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숭례문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TV 뉴스로 보니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너무나 미안해졌다. 아! 네가 국보 1호였었구나! 좀더 사랑해주고, 좀더 소중하게 바라보아 줄것을… 숭례문이 사라지니 언젠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이렇게 갑작스럽고, 죄스럽고, 한스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가슴이 먹먹해 질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달라질까?

 

어제 본 '단박 인터뷰'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어령 교수는 남대문이 살신성인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너무 소설적인 얘기라고는 하셨지만, 일견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항상 뒷전으로 밀리는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의 현실을 보면, 600년간 수도를 지켜오신 숭례문께서 대한민국의 이 어리석은 후손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 소신공양하신 것이라는 말이 아프면서도 와닿는다.

 

하지만, 과연 큰 어르신의 소신공양에 우리는 달라질까? 기자의 생각은 '아니다'이다. 그동안 보아온 우리의 행태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한 두 달 정도, 아주 길어야 1년(?) 정도는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말이 힘을 얻고 좀 신경을 쓸 것이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이 터지는 우리나라에서 올해 말쯤이면 숭례문 참사는 거의 잊혀진 옛날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숭례문이 소실된 다음날, 기자처럼 역사를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친구 하나와 함께 우리는 이렇게 다짐을 했다.

 

"우리나라 믿지 말고, 불타 없어지기 전에 빨리빨리 보러가자."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정말 믿을 만하지 못하다.

 

에필로그

 
a 오사카성 방재 훈련 광경 일본 문화재 방재의 날 훈련 장면. 기자의 뒤로 소방차와 방재 훈련을 하고 있는 소방대원들이 보인다.

오사카성 방재 훈련 광경 일본 문화재 방재의 날 훈련 장면. 기자의 뒤로 소방차와 방재 훈련을 하고 있는 소방대원들이 보인다. ⓒ 김태희

▲ 오사카성 방재 훈련 광경 일본 문화재 방재의 날 훈련 장면. 기자의 뒤로 소방차와 방재 훈련을 하고 있는 소방대원들이 보인다. ⓒ 김태희

이 사진은 2007년 1월 26일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 성 앞에서 찍은 것이다. 빨간 소방차가 와 있고, 소방대원들이 많이 보였다. 불도 안 났는데 무슨 일인가 했는데, 얼핏 문화재 화재 예방을 위한 훈련이라고 들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겪으며 다시 이 사진을 꺼내보니 더더욱 속상하다.

 

더불어 국사 마지막 부분 '근세의 문화'에서 '이제는 소실된 남대문'을 가르칠 때가 되면 반드시 일본의 이 훈련 이야기도 해보려고 한다. 우리 기성세대는 어리석게도 이렇게밖에 하지 못했지만, 창의적이고 현명하게 자라난 너희들은 결코 이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2008.02.17 14:35ⓒ 2008 OhmyNews
#숭례문 #오사카성 #문화재 방재의 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