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생명평화를 말하다

생명은 홀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등록 2008.02.15 08:30수정 2008.02.1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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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가로운 평일 저녁, 세간에 “야생초 편지”의 작가로 익히 알려진 생태주의 운동가 ‘황대권’ 선생이 이야기 나눔 마당을 펼친다기에 서둘러 저녁밥을 먹고서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실이 있는 삼선교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황대권, 그는 이미 조작극으로 밝혀진 이른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985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13년간이나 억울하게 감옥에서 징역살이를 살고 출소한, 그야말로 야생초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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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황대권 선생이 감옥에서 쓴 초록빛 들풀 향기 가득한 편지글 ⓒ 이성한



그는 오랜 징역살이 속에서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잡초’를 통해 밟아도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야생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체험했으며, 그로인해 모든 생명의 동질성과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출소한 이후 사람들에게 생태주의 세계관을 널리 알리고 전파하는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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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시작되기 전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실에서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주최로 황대권 선생의 강연이 이루어 졌다. ⓒ 이성한



저녁 7시40분, 그는 왜정시대 일본인 형사들이 쓰고 다니던 것 같은 모자를 쓰고,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께서 눈에 착용하시던 것과 매우 흡사한 안경을 끼고서 강의실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덥수룩한 턱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며 강의실 앞에 마련된 작은 책상에 앉아 며칠 전 화재로 불에 탄 숭례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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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선생 마하트마 간디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안경에다 왜놈 형사(?)같은 모자를 쓰고, 덥수룩한 수염을 한 황대권 선생 ⓒ 이성한




“그날 저는 할아버지 제사로 시골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늦게 가족들과 TV를 보다가 숭례문이 불에 타고 있다는 방송을 접했습니다. 숭례문이 무참히 불에 타고 있는 광경을 보는 순간 나도 몰래 눈물이 쏟아져 그날 곧바로 자동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고는 처참하게 불에 타고 있는 숭례문을 바라보며 밤새 그 자리에 서서 참담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 ‘일탈자’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보다 ‘돈’이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토지보상금에 억울한 마음을 품고서 저지른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범죄, 사회적 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이번 숭례문의 화재참사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가 갑자기 급격하게 무너질 것 같은 징조(영어로 오멘)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지구 생태계)가 어느 순간 무너질 것 같은 끔직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우리가 먹는 밥의 90% 이상은 석유입니다. 왜냐하면 석유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통해 논밭을 갈고, 모내기를 하고, 약을 뿌리고, 수확을 하고, 벼를 정미해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난 시기 1, 2차 세계대전도 따지고 보면, 결국 석유 때문에 발생한 전쟁이었음을 또렷한 근거를 제시하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나사(우주항공국) 과학자들이 앞으로 약 40년 정도 유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석유문명 종말’의 시간을 걱정스럽게 생각하며, 그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염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그는 석유가 바닥나기 전에 지구생태계를 위협하는 더 무서운 것이 ‘기후이상’일 것이라 말하며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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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진지한 강연 '산처럼 생각하기'란 말의 의미에 대해 말하다. ⓒ 이성한



그는 지구생태계를 위협하는 네 가지 요소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첫번째는 ‘기후이상’입니다. 기후이상의 주범은 바로 CO2 이산화탄소이며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는 세계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량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멸종, 즉 ‘생물의 종 다양성’의 감소입니다. 생물종의 감소는 생태계 먹이사슬 구조가 끊어짐을 의미하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생태계의 교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는 끊임없이 소비를 확대해야 유지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체제의 ‘소비증가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구증가율’입니다. 이미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구가 적정인구의 약 4배 정도라고 하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구생태계를 파멸로 이끄는 이러한 요소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인류가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지금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즉, 지구의 파멸을 ‘허무주의나 패배주의적으로 그저 바라보며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각으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대안적인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언젠가 인도에 다녀올 때 겪은 일화를 하나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인도에 갈 때 우연히 우리나라 주유소에서 공짜로 주는 휴지 하나를 가지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에 가 있는 동안 거의 쓸 일이 없어 한 달 후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아마 한 장인가, 두 장 정도만 사용하고 휴지가 그대로 있더군요. 인도 사람들은 우리처럼 밥 먹고서 입 닦을 때, 똥 싸고서 밑 닦을 때, 어디에 뭐가 조금 묻었다고 해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아무도 휴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휴지를 쓸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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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강연이 살아있다. 앉아서 얘기하던 그가 일어서서 주먹을 불끈 쥐며 강연을 살아있게 한다. ⓒ 이성한



그는 보드에 그래프를 하나 그렸습니다. 그래프를 통해 생산량이 어느 정도 증가할 때까지는 행복지수도 증가하나, 인간의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채워진 이후에는 행복지수가 하락함을 설명했습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세계 최빈국으로 알고 있는 방글라데시나, 필리핀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행복지수가 최고 높은 수준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살율과 이혼율이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러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수련, 명상사업, 정신수양사업 등이 서서히 번창하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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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강연 진지한 몸짓으로 열띠게 강연하는황대권 선생 ⓒ 이성한



그는 10시 30분까지 오래도록 알차게 이어진 강의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평화의 세계관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필요로 합니다. 대량생산 ∙ 대량소비 체제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성공적인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슈퍼마켓이 없이 자기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고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먼저 깨달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의 연대와 조직화는 너무나 소중하고,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기농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기존에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는 ‘생협’이나 ‘한살림’ 등을  통해 계속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테면 어느 지역의 아파트 부녀회와 농촌 간의 교류협력을 통한 계약재배 등을 이루어 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역시 도농 간의 연대와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명은 홀로 유지할 수 없고 공동체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얼마 전 다녀온 쿠바의 유기농업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보고 느낀 바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둘러보며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과 미래사회의 대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고 자세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강연을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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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황대권 선생 강연을 끝마치고서 자신이 쓴 책을 들고서 찾아온 독자에게 자상하게 친필로 싸인을 해주는 모습 ⓒ 이성한



나는 뿌듯한 희망의 마음을 가슴에 소박하게 담아 강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나오는데 오늘 황대권 선생의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새겨진 말 한 마디가 문득 다시 떠올랐습니다.

‘산처럼 생각하기’ (Thinking like a mountain) - 안도 레오폴드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13일 저녁 7시 30분에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있었던 강연회에 직접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2월 13일 저녁 7시 30분에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있었던 강연회에 직접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황대권 #야생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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