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 대학교의 한인학생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방문교수 골프대회 안내
홈페이지 갈무리
해외에서 연구년을 보내는 교수들은 대부분 대학교의 전임교수다. 그것도 중진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6년 이상 정규직 교수로 근무한 사람에게만 1년간의 연구년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구년을 나오는 교수들은 보통 대학교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교수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교수들이 연구년으로 외국에서 하는 일은 연구가 아니다. 한 1년 잘 놀다 들어가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주업이 골프인 경우가 많다. 월급 받고 노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서 방문교수 골프대회를 월례적으로, 그것도 평일에 가진다는 공지가 미국 대학교 한인학생회 홈페이지에 버젓이 실리는 지경이다.
'방문교수로 온 사람들은 골프를 하면 안 되는가'나 '골프대회를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왜 안 되겠는가. '골프가 좋다, 안 좋다' 혹은 '사치스러운 운동이다, 아니다'와 같은 논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교수들의 사적인 여가선용에 대해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방문교수 골프대회가 열리는 배경과 그러한 분위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연구년 제도의 실태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연구년이 골프와 쇼핑의 기회?한국의 대학교에서 교수가 연구년을 간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한 1년 잘 쉬고 오세요"라는 말이 지배적이다. 연구년 가는 교수들의 주요관심사도 역시 그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아이를 미국 학교에 입학시키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느냐", "돌아올 때는 자식들을 거기에 남겨놓고 영어를 더 시키는 것이 좋지 않냐", "골프장은 어떠냐?", "미국에서 차를 사 오면 세금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여행은 어디로 다니는 것이 좋냐", "달러가 약세이니 쇼핑할 좋은 기회다" 등이 교수 사이에서 연구년과 관련된 대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년 가서 이런저런 연구를 하겠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이번 기간 동안에 이런 책을 좀 써 보려고 한다"거나 "그동안 행정에 치여 지냈으니 공부나 좀 맘 편하게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예 기대도 하지 못한다.
규정에 명시되어있는 연구년의 목적과 취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구년을 보내는 대학교의 관계자나, 연구년을 가는 당사자에게 그런 조항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었다.
"연구년이라 함은 본교에 일정기간 근속한 교원이 강의를 담당하지 아니하고 학술연구활동에 전념하는 기간을 말한다."(○○대학교 교수연구년제 관한 규정)
교수들 사이에 연구년이 노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일반인들의 생각도 역시 그렇다. '안식년'이라는 용어가 더욱 많이 알려져 있고 그 말 그대로 1년 잘 안식하는 것이 연구년이 된다.
이 바닥을 좀 아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1년에 두 번이나 있는 긴 방학 동안에도 그렇게 놀 수 있는 게 교수인데, 아주 한해 동안 가서 뭘 한다고"하는 정도다. "그래도 대학 교수라고 하는데 연구년 동안 뭔가 대단한 연구를 하겠지"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개가 웃을 만한 일이 된 지 오래다.
'묻지마 연구년' 만드는 우리 대학의 현실이런 글을 쓰면 돌아오는 반론이 대부분 비슷하다.
"연구년 가서 공부 좀 하다가 골프 할 수도 있는 일이지, 너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냐", "그동안 연구하느라고 그 고생을 했는데 한 1년 잘 쉬어야 재충전이 된다. 교수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정신노동인 줄 아냐", "학문의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동료 교수들과는 사적인 생활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름대로 다 가서 열심히 한다" 등. 이 정도면 그래도 점잖고 애교스럽다. 보통은 "너나 잘 하세요"다.
그런데 결국 이런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구차한 변명이라는 것을 교수 본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애당초 학문에는 관심없는 사람이 상당수이고 그들은 연구년 가서 아예 공부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참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것이 현주소다. 그러니 우리나라 대학교수 사회가 수많은 비리의 온상이나 꼴불견의 총화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의 전임교수 제도가 워낙 철밥통이다 보니 그나마 공부에 대한 관심이 있는 교수들도 애당초에 가지고 있던 연구에 대한 열정보다는 다른 것에 재미 붙이는 것이 훨씬 편안해지고 그렇게 적당히 살아가는 나쁜 버릇에 젖어든다. 몇 년 그런 사회 속에서 묻어가다 보면 '근묵자흑'이 된다. 그나마 학문이나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도 만연한 풍토를 역행할 만한 의지와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학자적인 소양과 양심을 지켜가려는, 적지만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어 그들에 의해 그나마 우리 대학교들이 이 정도라도 유지를 하는 것이다. 즉 모든 교수들이 그런 것이 아니며, 정말이지 골프가 됐든 무엇이 됐든 운동이라도 좀 해보라고 도리어 권해 주고 싶은 선생님들이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몰지각(?)한 일부의 교수들이 아니다. 최소한 대학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다수의 교수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교수들이 만들어가는 연구년의 풍토를 말하는 것이다.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오는 골프대회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