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을 아시나요?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식엔 아직 눈물이 있습니다

등록 2008.02.18 08:42수정 2008.02.1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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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해마다 한 번씩 졸업식을 치르게 됩니다. 올해도 지난 주에 졸업식을 치렀는데 오늘 한 번의 졸업식이 또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학교에 같이 있는 방송통신고등학교(이하 방송고)의 졸업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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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 졸업생 대표가 졸업장을 받고 있습니다. ⓒ 박영호

▲ 빛나는 졸업장 졸업생 대표가 졸업장을 받고 있습니다. ⓒ 박영호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시대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배움의 때를 놓친 이들이 삼년을 꼬박 기다려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몇몇 나이 어린 학생들은 지루해하는 빛이 뚜렷하지만, 나이가 든 학생들은 너무나 진지한 모습입니다. 학벌을 그 무엇보다 내세우는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헤쳐나온 어르신들이니 다른 것이 당연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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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은 졸업생 봄소풍 때는 배가 엄청 불렀었는 데 이젠 귀여운 아이를 안고 있네요. ⓒ 박영호

▲ 아이 안은 졸업생 봄소풍 때는 배가 엄청 불렀었는 데 이젠 귀여운 아이를 안고 있네요. ⓒ 박영호
 
비록 학교에 나오는 날이 한 달에 두 번 뿐이지만 체육대회도 있고 소풍도 있습니다. 봄소풍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벌써 꽤 자랐네요. 여기가 엄마의 졸업식장인 것을 모르는 아이는 자꾸만 보챕니다. 아이를 안고서도 교장 선생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횡성에서 소를 키우신다던 학생 분은 아내와 딸이 건네는 꽃다발을 받으셨네요. 학생들이 데려온 서너살배기 아가들이 아장 아장 단상으로 걸어나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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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받다. 우리 학교 부장님과 중학교 동창이신 학생이십니다. ⓒ 박영호

▲ 상을 받다. 우리 학교 부장님과 중학교 동창이신 학생이십니다. ⓒ 박영호

 

졸업생을 보내는 송사는 우리 반 학생분이 하셨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 담겨진 글은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송사가 그런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학력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줄 세우는 사회에서 받았던 상처를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학벌을 내세웠던 이들처럼 되지 말자고 하는 말에 이르러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뒤에 서 계시는 교장선생님께서도 눈물이 흐르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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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마음 재학생 대표인 우리 반 학생입니다. 희끗한 머리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 박영호

▲ 보내는 마음 재학생 대표인 우리 반 학생입니다. 희끗한 머리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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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답사 답사를 하고 있습니다. ⓒ 박영호

▲ 졸업생 답사 답사를 하고 있습니다. ⓒ 박영호
 
졸업장을 많이 가진 이들은 기껏이나 고작, 따위란 말을 고등학교 졸업장에 붙여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졸업생들에겐 말 그대로 빛나는 졸업장입니다. 학생들 가운데는 가족에게도 숨기고 나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 처음 행정실 문을 열어야 했던 순간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꼭꼭 숨겨두었던 중졸이라는 학력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왜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위해 학교를 다닐까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졸업식을 보면서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오늘 졸업하신 팔십 세 분들 모두 졸업을 축하합니다. 더불어 제가 맡았던 이학년 이반 학생분들도 모두 다음 해엔 빛나는 졸업장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졸업식 #방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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