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전직 노동자들의 끊이지 않는 호소

"유기용제 중독으로 10년 째 투병 중..."

등록 2008.02.19 14:18수정 2008.02.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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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유씨는 지난 1998년 '유기용제 중독증' 등 판정을 받았다.

유씨는 지난 1998년 '유기용제 중독증' 등 판정을 받았다. ⓒ 심규상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돌연사와 관련 역학조사단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가 20일로 예정된 가운데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하다 유기용제 중독과 직무스트레스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전직 노동자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18년간 일해온 유종원(61)씨가 공장에서 쓰러진 것은 지난 1998년 12월이다. 이전부터 그는 회사측에 손발이 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다고 호소했다.

당시 유씨가 얻은 병명은 유기용제 중독증과 이로 인한 말초신경염, 뇌경색 의증, 발기부전, 신체화 장애, 우울증 등이다.

a  한국타이어에서 18년 근무 후 유기용제 중독으로 10년 째 투병중인 유종원씨(61)

한국타이어에서 18년 근무 후 유기용제 중독으로 10년 째 투병중인 유종원씨(61) ⓒ 심규상


그후 10년이 지난 지난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내린 진단서에는 "유기용제에 관련된 인격변화, 신체형 장애, 우울장애로 향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솔벤트 중독 근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생식기 계통의 장애 증상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유씨는 자신이 최초 발병일을 1996년 4월로 알고 있다. 그는 "당시 산업안전보건협회 소속의사로 부터 '유기용제 중독 위험소견자'로 구두통보 받은 바 있다"며 "그런데도 사측이 같은 부서에서 2년 이상 계속 근무하게 했다"고 말했다.  

23년 근무한 김봉경씨 "남은 것은 병든 몸 뿐"


유씨는 1980년 2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제조부 가류과에 입사해 생산관리과, 물류과, 정련과 등을 두루 거쳤다. 그는 "특히 가류과와 정련과에서는 타이어의 원료가 되는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의 화학약품을 주로 다뤘다"며 "이후 어지럽고 손가락 마디 마디가 쑤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찾아가는 병원마다 하나같이 유기용제 중독으로 진단했다"고 덧붙였다.

김봉경(58)씨는 지난 1979년 1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23년간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어느 날 근무 중 구음장애와 안면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치료를 시작했으나 아침 출근을 위해 세수를 하다 쓰러졌다. 진료결과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뇌경색은 혈액공급이 막혀 뇌세포 또는 뇌조직 일부가 죽은 상태를 말한다.


그는 이후 투병생활 외에도 산재를 불인정한 근로복지공단과 소송을 하며 싸워야 했다.

a  지난 해 10월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자체 조사결과 보고서. 유기용제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사례가 12건이나 지적됐다.

지난 해 10월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자체 조사결과 보고서. 유기용제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사례가 12건이나 지적됐다. ⓒ 심규상



법원은 "발병당시 50세가 넘었음에도 5-10kg의 타이어 하루 평균 약 700개를 옮겨 분류하고 적재하는 업무에다 발병직전 2개월 동안 연장근무 97시간, 휴일근무 12일 등으로 근무가 집중돼 상당한 육체적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발병한 뇌경색이 과로에 의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재해를 인정했다.

김씨는 "회사로부터 위로금 한 푼 못받고 무일푼으로 쫓겨나듯 했다"며 "수 십년 일한 대가
로 얻은 것은 병든 몸뚱아리뿐"이라고 말했다.      

"왜 우리는 역학조사 안하나"

사정이 이런데도 김씨와 유씨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따라 각각 2005년 11월과 2006년 4월 부터 요양급여마저 끊긴 상태다.   

유씨와 김씨는 "알고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한국타이어 사망자가 여러 명 있다"며 "당시 한국타이어 근무환경은 각종 유기용제에 노출돼 있는 등 매우 열악했다"며 "장기 근속자들은 유해물질이 누적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근로복지공단측이 명백히 산재가 인정되고 아직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도 요양급여를 종결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23년간 근무한 김봉경씨. 그는 뇌경색으로 투병중이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23년간 근무한 김봉경씨. 그는 뇌경색으로 투병중이다. ⓒ 심규상


이와 관련 한국타이어 사측은 "2001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HV-250은 발암성·자극성 물질인 톨루엔, 크실렌이 검출되지 않은 개량 솔벤트"라며 "안전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대전공장과 금산공장 등에서 사망한 8명의 평균근속연수는  13.9년으로 나타났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약 65%(2004년 기준)에 이르고 있다. 

한편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 역학조사단은 지난 1월 8일 한국타이어 노동자 사망원인에 대한 중간발표를 통해 '화학물질(유기용제)에 의한 영향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역학조사단은 작업시간과  교대작업 등 작업환경을 비롯 추가 발암인자 노출여부 분석 등에 주력해 왔다.

오는 20일 노동자 사망원인에 대한 최종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타이어에서는 2006년 5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노동자 15명이 심장질환, 폐암, 식도암, 간세포암, 뇌수막종양 등으로 사망했다. 심장질환으로 돌연사한 사람은 7명이다. 반면 사측은 이전 사망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통계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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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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