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랑이 밥 먹여 준다. 왜?"

[연극 속의 노년 16] 뮤지컬 <러브>

등록 2008.02.18 20:09수정 2008.02.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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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뮤지컬 러브

뮤지컬 러브 ⓒ 에이콤

뮤지컬 러브 ⓒ 에이콤

무대는 '행복요양원'. 이름은 '행복'이지만 원작자의 말대로 닭장처럼 사방이 막혀있고, 늘 밝은 전등이 켜있고,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 방 혹은 요양원을 나갈 수 없다. 그 안에서 노인들은 과연 행복할까?

 

'요양원'은 건강한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과 달리, 몸이 아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계신 곳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법에서도 양로원은 '노인주거복지시설'이고, 요양원은 '노인의료복지시설'이다. 요양원 앞에 '전문'이 붙으면 치매나 뇌졸중 같은 중증 질환을 가진 분들이 입소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무대 위의 요양원은 '전문요양원' 쯤 되는 것 같다. 어르신들은 몇 분 빼고는 대부분 치매 환자로 보인다.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바지를 벗고 소변을 보는 할아버지, 간호사의 엉덩이를 수시로 건드리는 할아버지, 남편의 보호와 도움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할머니 등등.

 

어느 날 이 요양원에 '니나'라는 이름의 고운 할머니가 입소한다. 정신은 맑은 데 팔이 부러져 깁스를 했다. 돌보기 힘든 아들이 '팔 나을 때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여 입소시킨 것. 그런데 한 할아버지가 이 할머니를 보고 그만 첫눈에 반한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요니'.

 

노년의 사랑은 늘 망설임과 편견의 벽에 부딪치는 법.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도 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고 두 분의 사랑은 무르익어 가지만 결국 니나 할머니의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래도 굳건한 두 분의 사랑. 급기야 두 분은 요양원을 도망쳐 할머니의 고향으로 떠날 것을 약속하는데, 그만 요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사랑에 빠져 죽네 사네 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그렇다면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노년의 어르신들은 왜 새삼스럽게 사랑에 빠지시는 걸까. 하긴 그걸 알면 노년의 사랑이 지금처럼 별난 일로 치부되고 주책없는 짓으로 무시당할 리 없겠다.

 

중요한 것은 노년의 사랑이 엄연히 존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 바로 우리 곁에서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어르신들이 가슴을 활활 태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곳이 경로당이든 노인복지관이든 요양원이든 사랑은 어디에서든 시작된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거나 혹은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다.

 

극중에 니나 할머니와 요니 할아버지가 이중창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니나 할머니가 혼자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의 일부는 이렇다.

 

"먼 훗날 다시 우리 만나는 날 행복한 노래를 해요. 사랑은 그 기다림조차 이겨내도록 도와줄 거예요."

 

맞다. 노년의 사랑은 그 헤어짐을 아프도록 확인하며 시작된다. 아무리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해도 노년은 그 어느 연령대보다 죽음과 가까이 있기에 홀로 남을 스스로와 홀로 남겨질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 기다림조차 이겨내도록' 하는 노년의 사랑은 얼마나 절절하며 안타까운가.  

 

그런데 뮤지컬을 보며 아쉬웠던 것은, 우선 간략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겠지만 노년의 사랑을 섬세하기 짚어나가기보다는 그저 '한 쪽에서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을 받아들였다, 서로 사랑한다, 위기가 왔다, 그래도 끝까지 함께한다'의 순서로 보여주기 바빴다는 점이다.

 

또 하나, 비싼 입장료 탓인지 평일 객석이 많이 비어 있었다. 가장 비싼 좌석은 7만원, 평일 낮 할인 혜택을 받아 가장 적게 내도 4만원인데, 우리나라 노인의 월 평균 용돈 13만 3천원을 대입해 보면 보통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 부담으로 관람이 가능한 분들이 선택한 좌석을 제외하고 남는 좌석은 다른 분들께 무료로 개방하면 어떨까. 꽉찬 객석의 열기와 환호가 있다면 애써 연기하는 무대 위 배우들도 신이 날 것이고, 평생 뮤지컬이라고는 듣도 보도 못한 어르신들께는 커다란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문화 나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러브> (원작 : 기슬리 외른 가다슨, 연출 : 윤호진 / 출연 : 김진태, 전양자, 이주실, 정현, 서권순, 박영옥, 황범식 등)
2008. 2. 1 - 2. 24  세종M시어터 / 2008. 3. 15 - 6. 8 KT&G 상상아트홀

2008.02.18 20:0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뮤지컬 <러브> (원작 : 기슬리 외른 가다슨, 연출 : 윤호진 / 출연 : 김진태, 전양자, 이주실, 정현, 서권순, 박영옥, 황범식 등)
2008. 2. 1 - 2. 24  세종M시어터 / 2008. 3. 15 - 6. 8 KT&G 상상아트홀
#뮤지컬 러브 #노년 #노인 #황혼 사랑 #노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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