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슈퍼볼 경기가 열렸던 피닉스대학 스타디움. 슈퍼볼에서 '볼'이라는 말은 풋볼 경기장이 '사발(bowl)'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 Wikimedia Commons
▲ 올해 슈퍼볼 경기가 열렸던 피닉스대학 스타디움. 슈퍼볼에서 '볼'이라는 말은 풋볼 경기장이 '사발(bowl)'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
ⓒ Wikimedia Commons |
|
로저 로슨블랫(Roger Rosenblat)은 <미국 사회와 가치>라는 책에서 "미국의 스포츠에는 미국 사회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스포츠가 곧 미국 사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 사회가 철저히 시장 중심의 상업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 미국은 대규모로 조직화된 스포츠를 가지고 있지만, 체육부와 같은 정부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스포츠를 관장하는 것은 돈줄을 따라 움직이는 시장 논리다. 이렇게 상업화한 미국 스포츠는 절묘하게 지역적 소속감과 결합한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운동팀 티셔츠와 모자를 열심히 사주며,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에 가거나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광고주들의 물건을 먹고 마신다.
보고 먹고 사고... 닭 날개 4억5천만 개, 30초 광고비 25억 원
앞의 슈퍼볼 보도에서 알 수 있듯, 미식축구는 언제나 미국 언론의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멋지게 공을 받거나 방어진을 뚫고 질주하는 선수의 모습은 이미 19세기부터 미국 언론에 등장했다. 과거에 미식축구는 소수의 대학생들이 교정에서 몸을 던져 참여하던 스포츠였으나, 미디어의 힘을 업고 대규모의 '보는 스포츠'로 탈바꿈했다.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슈퍼볼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텔레비전 방송 15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슈퍼볼 중계였다. 매년 초가 되면 미국 전역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2월 첫째 주에 열리는 슈퍼볼 경기를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대형 텔레비전을 사고, 다리를 뻗고 편하게 눕는 '레이지보이(La-Z-Boy)'라는 대형의자를 들여놓는다.
먹어 치우는 음식량도 어마어마하다. 이날에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음식이 미국인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가장 인기있는 음식은 피자지만, 최근 들어 닭 날개 '윙'의 소비도 급격히 늘었다. 올 슈퍼볼이 있던 한 주 동안 미국인이 해치운 닭날개는 무려 4억5000만개다. 감자 칩과 맥주· 청량음료 소비 역시 막대하다.
슈퍼볼 시청자들의 수도 매년 늘어, 올해 1억에 가까운 사람이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눈길이 많이 쏠리는 만큼,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주들의 노력도 치열하다. 시청자가 늘면서 광고 단가도 계속 오르고 있다. 올해의 경우 30초 광고 비용이 평균 25억 원을 넘어섰다.
광고비가 비싼 만큼, 기업들은 이 행사를 위한 텔레비전 광고를 별도로 제작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기발한 광고가 많아, 그런 광고를 보기 위해서라도 텔레비전을 켜놓을 가치가 있다. 대기업의 광고가 주종을 이루지만, 한 해 투자할 광고비를 30초에 쏟아 붓는 모험을 하는 소규모 업체들도 없지 않다.
나이아가라에서 39분간 떨어지는 물을 한 번에 '쏴~'... 역시 '슈퍼'볼
기업들이 슈퍼볼 광고에 투자하는 돈과 열정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광고는 흔히 경기의 절반이 끝난 하프타임(halftime)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보통 프로 미식축구 경기의 중간 휴식 시간은 15분이지만, 슈퍼볼은 그 두 배인 30분이다. 광고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화장실에 앉아있기 일쑤다. 투입되는 음식량이 많은 만큼 '산출량'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1억에 가까운 시청자가 동시에 변기에 물을 내리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때 하수구로 쏟아지는 물의 양은 가공할 만하다. 에이에프피(AFP) 보도에 따르면, 이 때 흘러나오는 물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39분간 떨어지는 양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낡은 하수시설을 갖춘 지역에서는 쉬는 시간을 피해서 화장실에 갈 것을 권하기도 한다.
'변기 괴담' 말고도 슈퍼볼의 별명은 많다.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 그중 하나다. 경기로 흥분한 사람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수도 재앙이나 '선혈주말론'이 실제적 근거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괴담이 사실이라도, 슈퍼볼의 '경제 효과'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변기 펌프와 반창고의 매출은 증가할 것이므로. 누가 피를 흘리든 간에, 미식축구에서 폭력은 필연적 요소다.
미식축구 통해 폭력의 신화 재연하는 미국인
미식축구 역사가인 마이클 블리아드(Michael Bliard)는 미식축구의 인기 비결을 '필연적 과격(necessary roughness)'에서 찾는다. 다른 스포츠에서 과격함이나 폭력은 경기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쉽지만, 미식축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과격한 경기일수록 '멋진 게임'이었다고 칭찬하며 환호한다.
미식축구의 종교적 함의를 추적해 온 조지프 프라이스(Joseph Price)는 미식축구의 폭력성을 '개척' 시대의 침략 행위와 연관 지어 분석한다.
"이 경기의 목적은 영토의 점령이다. 팀은 외지인의 땅을 침공한 후 그 곳을 끝까지 가로지르는 것으로 점령을 완수한다. …(중략)…미국인은 이 경기를 통해 창조의 신화를 극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미국 자신의 신화, 즉 영토의 폭력적 침공과 점유의 과정을 재연한다." (조지프 프라이스, <시즌에서 시즌으로> 139쪽)
"미식축구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야." 오래전 친구에게서 들었던 우스갯소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왜?"
"저런 '떡대'들이 경기장 대신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다닌다고 생각해 봐."
맞다. 경기의 기원이야 어쨌든, 이왕 폭력이 쓰일 바에야 거리나 전쟁터보다는 운동장이 낫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