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없는(?) 여성로비스트

정치권 성추문 사건의 진원지

등록 2008.02.25 15:02수정 2008.02.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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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매케인과 여성로비스트 비키 아이스만의 염문설은 정치세계에서 여성 로비스트들이 겪는 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험심이 강한 남성 로비스트조차도 거부당하는 영역에서 여성 로비스트들은 통상 성관계에 대한 댓가를 바라는 경우가 많아요. 일단 이렇게 통로가 트이면 이후 끈질긴 로비활동을 통해 부탁하면 거부당하는 일이 없어요."

이는 22일 abc 뉴스가 인용한 익명의 여성로비스트의 지적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로비스트들이 백악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66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 때였다. 당시 이들 여성 로비스트 책사들은 남성 로비스트보다 더 영향력이 컸던 경우가 많았다.

이스터 싱글톤의 <백악관 이야기>에 인용된 신문기사를 보면 그것은 "정치적 책략을 부리는데 보다 고급스러운 성접대 방식을 동원하는 경향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로비는 워싱턴 정치세계에서 성차별이 크게 완화된 직종이 되었으며 수천 명의 중상류 여성들이 이 로비스트 분야에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a 비키 아이스만 알칼드 앤 페이 로비스트 회사에 이메일 주소와 함께 소개된 아이스만 사진

비키 아이스만 알칼드 앤 페이 로비스트 회사에 이메일 주소와 함께 소개된 아이스만 사진 ⓒ 알칼드 앤 페이


성차별 없는 로비스트 세계?

아이스만은 인디애나대학 출신으로 1990년 워싱턴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알칼드 앤 페이 로비스트 회사의 최연소 파트너(공동경영인)으로 초고속 승진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성장하게 되었는가?


아이즈만은 인디애나 대학 초등교육학과를 졸업한 지 불과 2주만에 알칼드 앤 페이 사의 창구직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불과 몇달 후 회사 사장에게 직접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장님은 정말 저를 몰라요. 하지만 전 대졸자인데도 불구하고 전화 받는 일을 하고 있어요. 창구직원 아닌 서기나 행정직 일로 돌려주세요."


사장은 세 달 동안 그렇게 견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년이 채 안 되어 아이스만은 사장의 특임비서로 승진하였다. 열심히 일을 배워 입사후 8년 만에 마침내 아이스만은 이 회사에서 최연소 파트너(공동경영 로비스트)가 되었다.

그의 고객으로는 팍스 TV, '방송계에 종교계 목소리 내기 연합회', 텔레먼도, 히스패닉 방송연합회, 컴퓨터과학기업 등이 있다. 아이스만은 멜라니 그리피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보 데렉,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을 만나며 일을 해오고 있다.

아이스만이 소속해 있는 알칼드 앤 페이사에 따르면, 아이스만은 연방의회, 연방정부기관, 지역 유력인사 등을 상대로 정부용역과 인허가, 규제완화 등의 로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이스만은 텔레콤 업계를 전문으로 하며, 1992년과 1996년 통신법안에서 케이블업계가 TV에 진출토록 개정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디지털 TV 전환, 위성방송 규제, 텔레컴 회사 소유권 규정 등에도 관여하였다.

아이스만은 연방 수준의 고속도로 기금을 기반으로 지역 유력인사들에게 원활한 고속도로 소통을 위한 캠페인 활동을 벌였으며, 정치자금 모금활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 교육학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아이스만은 인디애나 대학 소식지 인터뷰에서, "인디애나라고 조그만 동네의 대학을 졸업한 여성로비스트로서 정치권과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면서 "교육이 평준화에 매우 큰 기여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즈 매케인과 염문설 폭로

뉴욕타임즈가 밝힌 아이스만과 매케인의 염문설 경우처럼, 특히 주(州) 수준에서 남성정치인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경우 여성 로비스트들은 여전히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텔레콤 회사들 로비스트인 아이스만은 2000년 매케인과 로맨스에 빠졌다고 확신한 매케인 보좌진으로부터 결별하라고 요구를 받았다. 물론 매케인은 아이스만과는 직업적인 관계에 불과했다며 부인했다.

이런 의혹은 상당수 여성 로비스트들이 다반사로 겪는 일이기도 하다. 여성 로비스트는 매력적이라야 한다. 나이 많고 뚱뚱함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남성 로비스트들은 많아도 뚱뚱하면서 나이 많은 여성 로비스트를 전무하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특급비밀 : 미국의 여성로비스트와 정치>라는 책의 저자인 데니스 스콧에 따르면, 워싱턴 정가의 로비스트 중 1/3 이상이 여성이라고 밝혔다. 기업형 로비스트, 즉 로비스트 회사의 경우 인원 수가 1980년대 두 배 증가하긴 했지만, 남성 로비스트가 2/3보다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로비스트 회사를 차린 앤 웩슬러는 27년 동안 일체의 성차별을 겪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로비스트 세계에서 성차별이 있다거나 남성보다 직업적이지 않은 게 있다는 건 허구이며, 로비세계는 성차별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며,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 로비스트는 남성정치인이나 보좌진과 만날 때 외모에 신경 써야만 한다. 의원을 상대할 때는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정치인과 여성 로비스트 사이에 성관계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 성추문 사건의 진원지

1995년 봅 팩우드 상원의원이 사임한 것은 10명 이상의 여성 로비스트와 직원들을 성폭행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2000년 하원윤리위원장 빌 토머스는 의료 분야 로비스트와 정사가 곧 이해관계 충돌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는 해명서한을 써내야만 했다.

아를란 스트랭글랜드 하원의원은 1986년과 1987년 사이에 어느 한 여성 로비스트 집과 수백 통의 장거리 전화를 주고받은 것이 드러나자, 그렇다고 해서 둘이 연애관계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정가를 벗어난 영역에서 여성 로비스트는 위험이 훨씬 더 커진다. 오랜 경력의 한 여성 로비스트는 다음과 지적하였다.

"내가 아는 주단위 로비스트들은 한결같이 수백만 가지 이야기 꾸러미들을 안고 있죠. 중고차 판매상이 어느 날 갑자기 주의원으로 당선되어 주변 사람들이 황제처럼 받들며 정말 똑똑한 이 여성 로비스트들 역시 정말 깎듯이 모시게 되죠."

과장되긴 하지만, 동료 여성로비스트들이 주의원들이 회의 중 문을 걸어 잠그고 다가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당황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금년 2월초 콜로라도주 주의회 다수당 원내대표의 마이클 가르시아 보좌관은 여성 로비스트에게 옷을 벗고 음란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사표를 냈다. 해당 여성 로비스트는 덴버 바에서 가르시아와 당구를 치는 데 옷을 벗고 "여기 정말 멋진 곳 아니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가르시아는 사표를 내고 "당초 언론보도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둘은 합의하에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주의회에서 본인의 지위와 상대방이 여성로비스트라는 점을 감안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정치적 악용 사례

이런 관행은 너무 흔하여 정치적 술수로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1994년 캔자스주의회 멜빈 뉴펠드 의원은 동료의원 리처드 알드리트에게 특정 법안에 찬성 투표하도록 공갈 협박한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을 보도한 법조신문에 따르면, 뉴펠드 의원은 알드리트 의원에게 "우린 당신이 오늘 초저녁 5층 라운지에서 두 명의 여성 로비스트와 의심스러운 자세로 있는 모습을 봤소, 찬성투표를 하지 않으면 당신 부인에게 일러바칠 거요"에게 말하였다.

알드리트는 부인하였으며 뉴펠드는 전화를 건 건 맞지만 공갈협박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답변하였다. 뉴펠드는 캔자스 법원에서 주의회 토론에 면책특권이 있다고 판결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그 후 출석하지 않았다.

한편 버지니아 하원의장 밴스 윌킨스 주니어는 여성로비스트 제니퍼 톰슨이 2001년 여름 자신의 로비스트 사무실에서 하원의장이 몸을 더듬었다는 진정을 내자 해결비 조로 10만 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 진정내용을 부인한 윌킨스는 주지사 등의 압력을 받고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여성 로비스트 여러 명은 민주 공화 의원들이 성적 문제를 야기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비록 소수 의원들에게 국한된 일이긴 하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중대한 문제로서, 다만 드러나는 건 거의 없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매케인측, 사실과 다른 해명으로 곤혹

한편, 매케인이 여성 로비스트 아이스만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지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선거본부측은 지난 주 목요일, 매케인이 1999년 연방통신위원회에 팍슨사를 위해 보낸 서한과 관련하여 아이스만 및 아이스만의 고객인 로웰 팍슨 등과 회의를 가진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매케인은 실제로 그들과 회의를 가진 바 있으며, 2002년 매케인이 만난 적이 있다고 청문회에서 선서 증언한 바 있음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매케인의 변호사는 선거본부측이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그러나 아이스만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핵심사항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한에서 매케인은 팍슨사가 피츠버그의 한 방송국을 장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도록 촉구는 했으나, 매케인 변호사는 그것이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매케인은 여성 로비스트와의 염문설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로 살아남았으며, 보수파가 뉴욕타임즈 지에 대항하여 결집함으로써 매케인은 지지기반을 오히려 더욱 더 강화한 측면도 있다.

뉴욕타임즈 사외편집장은 23일, 독자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가설 혹은 매케인의 익명의 보좌진의 우려사항 등을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며 뉴욕타임즈 기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케인도 많은 상처를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정치윤리 개혁의 십자군이라는 이미지야말로 매케인의 대선 출마의 버팀목이었는데 로비스트와 각종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수록 파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문성호 /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


덧붙이는 글 문성호 /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
#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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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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