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영' 새 정부, 출범부터 삐걱삐걱

상처투성이 속 출항한 '이명박호'의 운명은?

등록 2008.02.25 15:35수정 2008.02.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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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을 섬기며 선진일류국가를 만드는데 온몸을 바치겠읍니다. 대통령 이명박" ('바치겠습니다'가 바른 표기이나, 원문을 그대로 옮김. 편집자 주)

25일 오전 17대 대통령 취임식에 앞서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개막은 10년만의 정권교체와 함께 신보수주의 정권의 출범을 의미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비전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선진일류국가 건설'로 설정한 바 있다.  

[키워드①] 선진화 내세운 기업형 정부, 그리고 '어륀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신 발전체제를 천명했다.

신 발전체제 달성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감세·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에 의한 기업의 투자환경 개선과 자율적 시장기능의 활성화로 모아진다. 이 대통령은 이날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 등을 새 정부가 추진할 5대 국정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정책과 이념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조직 역시 신발전체제 달성을 위한 '기업형 체제'로 탈바꿈했다. 청와대는 기존의 '3실 8수석' 체제를 버리고, 대통령실로 일원화해 '1실 7수석' 체제로 짜여졌다. 총리실의 기능은 축소됐고 부총리 제도는 폐지됐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위해 18부4처의 중앙행정부 역시 '15부2처'로 줄었다. 'CEO형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정치권과 시민단체·공직사회 등의 거센 반발 속에서 순탄치 않은 출발을 보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선진화, 친기업, 실용·보수 등 핵심 키워드 이면에는 '어륀지'에서부터 '고·소·영', '강·부·자', '강·금·실'까지 숱한 신조어가 자리잡고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여론이 싸늘한 이유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최대 유행어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어륀지(오렌지)'였다. 이경숙 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이 불러온 논란만큼이나 인구에 회자됐고, 인수위 활동 두 달을 압축하는 상징어로 자리 잡았다.

멀쩡한 '오렌지'를 국적 불명의 '어륀지'로 둔갑시키는 촌극이 벌어졌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며 오히려 비판하는 국민들에게 으름장을 놨다. 경부운하 사업 등에서 보여준 토목공사식 밀어붙이기는 오만과 독선을 낳았고, 정부조직개편 협상을 파행으로 내몰았다. 여론수렴을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를 경시한 결과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25일 대통령으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인수해 법적 임기를 시작했지만, 내각 구성조차 못하는 등 비정상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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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새벽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국무위원 내정자들과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 ⓒ 인수위원회


[키워드 ②] 고·소·영, 강·부·자

이명박 정부의 '오만'은 조직 인선에서도 두드러졌다. 특히 새롭게 구성된 청와대 수석 인사를 두고는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서갑원 통합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열린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수석 중에 충청·호남 출신이 한 명도 없다"며 "'고·소·영'이라고 들어봤냐, '고·소·영 S라인'이라고는 들어봤냐"고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고·소·영'은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의 앞말만 딴 것으로, 새정부 실세라인의 출신성분 분류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S라인'은 서울시청 출신이고, 'T라인'까지 붙이면 테니스 인맥을 말한다. 이 대통령이 테니스를 즐기기 때문에 그 쪽 인맥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농담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

새정부 초대 각료 후보자들의 재산을 둘러싸고는 '강·부·자', '강·금·실'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강·부·자'는 탤런트 강부자가 아니라 '강'남, '부'동산, '자'산자를 줄인 말이다. '강·금·실' 역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강'남에 '금'싸라기 땅을 '실'제로 소유한 사람들이 장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962억원, 그래서 '1억달러 내각'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일부 후보자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새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적신호가 켜졌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 의혹을 조기에 발견해 차단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 대통령이 이미 '자격미달'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각을 밀어붙였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불도저 이명박 대통령 "뭐가 문제냐"

실제 이 대통령측은 "재산이 많은 것이 무엇이 문제냐, 일만 잘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영어 공교육 강화에 대한 우려가 팽배할 때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일축했던 '이명박식' 대응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그의 인선 기준에는 부동산 투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국민정서가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장관 후보자들의 '입'이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에게 쏠린 투기의혹과 관련 "친척이 사라고 권유해서 사준 것이고 절대 농지인 줄 몰랐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는 어이없는 해명을 내놔 불난 넷심에 기름을 부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박 후보자의 말을 빗댄 패러디들이 등장하며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술을 마시긴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세상의 여자를 모두 사랑할 뿐 외도나 바람은 아니다" "학문을 사랑해 남의 논문을 열심히 공부했을 뿐 논문 표절은 아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불을 전하고 싶었을 뿐 숭례문 방화는 아니다"

게다가 박 후보자는 '친척이 땅 매입을 권유해 구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마저도 거짓으로 확인됐다. 실제로는 땅거래 과정에서 알게된 사람이 권유했다는 것. 또한 문제가 된 경기 김포 절대농지 외에도 동계올림픽 유치가 예상되던 시기에 강원 평창의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자녀 이중국적' 문제로 자격 시비를 낳고 있는 남주홍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상가·토지 투기, 재산축소 신고, 세금 탈루 의혹 등이 새롭게 제기됐다. 남 후보자 역시 "부부가 교수를 25년 동안 했는데 둘이 합쳐 재산 30억원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이라고어설픈 해명을 내놔 논란을 부채질했다. 

전날 자격 시비 논란으로 사퇴한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에 이어 추가 사퇴가 이어질 경우 이명박 정부의 '반쪽 출범' 상황은 더욱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야당은 벌써부터 남주홍·박은경 후보자는 물론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 등에 대해서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보다 낮은 지지율의 '되찾은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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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신임 대통령과 노무현 전임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연단을 내려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 직후 청와대 집무실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임명 동의요청서와 류우익 대통령실장, 김인종 경호처장 내정자 및 수석비서관들에 대한 인사발령장에 서명하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기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김인종 경호처장은 기존 경호실장으로 각각 임명됐다. 새로 개편된 청와대 비서실 직제안이 아직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위원과 동거 생활이 불가피한 이명박 대통령이 조기에 국무회의를 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청와대의 새로운 직책 내정자들은 자신들의 공식 타이틀을 갖지 못하고 상당기간 기존 청와대 직제에 따라 임명 돼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전망은 대체로 70% 중반에서 80% 초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24일 KBS <뉴스 9>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 업무를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75.1%로 나타났다.

언뜻보면 긍정여론이 높아 보이지만, 한달 전 조사 때보다 10%포인트 가량 빠진 수치다. 특히 역대 정권의 출범 직전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지지율이다. 김대중 정부의 인수위는 90%대였고, 노무현 정부도 출범 직전인 2003년 2월 지지율이 92.3%에 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얘기했던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낮은 박수를 받으며 '되찾은 5년'이 출범한 셈이다.

상처투성이 속에서 '기형적 출범'을 하게 된 이명박 정부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근거는 이 외에도 숱하게 많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어륀지 #고소영 강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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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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