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푸른 동해의 기운을 끌어와 서라벌에 토해 내는 산, 토함산에는 불국사와 석굴암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새벽녘 불국사에서 행자승의 차분한 빗질 소리를 들으며 석굴암에 오르는 산책길이 토함산에 난 유일한 길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대형 버스도 석굴암 코앞까지 오를 수 있도록 굽이굽이 포장길을 닦아놓아 걸어 오르는 사람 거의 없지만, 차도는 인도든 불국사와 석굴암을 잇는 이 길이 토함산에 속세의 소식을 전하는 유일한 끈이라 여겼습니다. 산 너머 장항리 절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경주 시내에서 바라본 토함산은 토함산에서 경주 시내를 내려다본 것만큼이나 번잡스럽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성을 얻기 전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인정받으면서 세속의 때가 덕지덕지 낄 수밖에 없었던 탓입니다.
불국사 주변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방불케 할 만큼 성냥갑 같은 호텔과 콘도들이 늘어서 있고, 토함산 산마루 근처라 할 석굴암 입구도 웬만한 축구장보다 더 넓은 주차장을 닦아놓아 관광객들과 그들을 실은 대형버스로 늘 가득합니다. 하긴 중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도 바로 이곳이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동해 쪽에서 토함산에 오르자면 요란한 자동차 소리는커녕 인적조차 뜸해 차분하다 못해 고요한 길과 함께 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가 통행할 수 없는 등산로였다지만, 지금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잇는 굽잇길과 산 중턱에서 만나도록 포장이 되었습니다.
으레 유명 관광지면 도로보다 더 빨리 세워진다는 ‘가든’도 거의 없고, 여전히 풋풋한 시골 마을의 정취가 남아 있습니다. 원불교에서 세운 대안학교인 화랑고등학교를 지나 경주 허브농장을 지나면 제법 가파른 길을 따라 토함산의 품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길과 나란하게 산비탈을 깎아 만든 손바닥만한 밭뙈기들이 이어지고 돌돌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어 조금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말랑말랑한 찰흙도, 석고도 이토록 정교하게 다듬고 깎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그 길 끝,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장항리 석물’들이 좌판처럼 널려 있습니다. 부서지고, 망가지고, 마구 헝클어져 있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범상치 않은 석공의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들입니다. 말랑말랑한 찰흙도, 석고도 이토록 정교하게 다듬고 깎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불상을 받친 대좌와 석탑 두 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절터라는 점은 분명한데, 그 이름과 유래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전혀 없습니다. 사료가 남아 있기는커녕 그 흔한 명문 기왓장 하나 출토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그냥 마을 이름을 따 ‘장항리 절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절터지, 석물들이 널려 있는 공간이라야 웬만한 교실보다 좁습니다. 그냥 주변에서 긁어모아 놓은 듯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이곳에서 절집의 배치를 따져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하긴 이곳에서 출토된 석불상도 도굴 등으로 여기저기가 깨지고 부서지는 수난을 당한 채,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앞뜰에 옮겨진 가여운 신세입니다.
석물들의 규모로 짐작하건대 원래부터 이토록 비좁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수차례의 크고 작은 산사태가 있었고, 발아래 흐르는 개울도 곧게 콘크리트로 덧씌워놓은 것을 보면 절터가 무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무튼 절터가 공중에 떠 있는 듯 주위가 가파른 벼랑이어서 석물들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토함산 너머 불국사와 석굴암은 사시사철 북적이는 데 반해, 반대편인 이곳엔 주말이든 휴가철이든 관광객 한 명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도로변에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을 갖춰 놓았지만, 그것들은 먼발치로 절터를 사진에 담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일 뿐, 석물들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기에는 역부족인 듯합니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 가파른 흙길을 ‘네 발’로 기어올라야만 합니다. 전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만든 ‘흙 계단’을 밟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미끄러워 매우 불편합니다. 더욱이 비나 눈이라도 올라치면 석물 앞에 다가가기란 아예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돌계단을 깔만한 공간도 없습니다. 그러잖아도 비좁은 절터를 훼손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차장 쪽에서 쉬이 건너올 수 있도록 근사한 나무다리는 세워놓았지만, 별 소용없는 사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절터에 올라 맨 먼저 만나게 되는 '잘 생긴' 5층 석탑
절터에 올라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잘 생긴 5층 석탑 한 기입니다. 바로 옆에 몸돌을 잃은 채 지붕돌만 층층이 쌓인 가엾은 석물 때문에 유난히 멋져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디 절 한복판에 나란히 선 쌍탑 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흔치 않은 5층인데다가, 1층 몸돌 사방에 새겨놓은 불상 조각은 마치 손으로 그려놓은 듯 정교합니다.
비록 탑 곳곳이 부서진 채 상처투성이지만 단정하고 균형 잡힌 몸매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습니다.
마치 ‘그 정도 생채기쯤이야’ 하며 우뚝 선 당당함이라고나 할까요. 완전한 상태가 아닌데도 국보 제236호로 지정된 것을 보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인 셈입니다.
명품 석탑을 깎아 세운 석공의 예술적 솜씨는 대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주인을 잃은 채 부서져 나뒹구는 신세이지만, 아래로 늘어뜨린 연꽃잎 조각과 옆면에 도톰한 사자상 조각은 세월을 잊은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특히 천진난만하고 익살스러운 사자의 얼굴은 놓치면 아까운 이곳의 보물입니다.
가까스로 토함산 관통 도로가 뚫렸지만, 여전히 장항리 절터는 물소리, 바람소리만 들리는 쓸쓸한 곳입니다. 이곳만 넘으면 천 년 고도 서라벌이 내려다 보이는 토함산 능선이니, 길손이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휴게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언제, 무슨 뜻으로 절이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깊은 골짜기에 숨어 세속을 멀리하고 세월을 잊은 채 토함산의 지킴이가 되어 남았습니다. 장항리 절터를 두고 누군가는 그랬답니다. ‘잘 알려진’ 경주의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라고.
덧붙이는 글 | 장항리 절터는 지금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해 보입니다. 손바닥만 한 절터에는 잔디가 두텁게 덮여있긴 해도 주변의 흙이 바스러져 깎여나가는 통에 몹시 불안해보이기 때문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2008.02.26 17:2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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