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남쪽의 어느 마을인가는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란다. 봄처녀의 가슴에도 훈풍이 스며 들었단다. 봄 바람난 남쪽 사람들이 봄 마중을 나간다는 시간, 강원도 정선은 여전히 한겨울 추위에 갇혀 있었다.
27일 정선의 아침은 영하의 기온이었다. 봄 마중 대신 겨울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운치리 마을을 찾아 이른 아침 길을 떠났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 갈 날만 손꼽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었다.
아이를 만나려면 아름다운 동강을 끼고 달려야 한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아름다운 동강을 끼고 달려야 한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동강의 물은 수만 마리의 은어 떼가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펼쳐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동강의 아침은 그렇게 온다.
동강에서 예미초등학교 운치분교라는 간판을 끼고 마을길로 들어서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동강은 등 뒤로 숨어든다. 등 뒤로 느껴지는 동강의 물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 보다 더 빙판인 길이 나타났다.
전날 아이의 아버지(김용성·48)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길이 미끄러울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시간을 보니 아이가 보건소로 예방 접종을 하러갈 시간이 지났다. 아이가 입학할 운치분교는 그냥 지나쳤다. 학교의 선생님께는 오후쯤에 들르겠다고 전화를 넣었다.
눈이 깔린 마을길을 5km 정도 올랐을까. 주변을 살피니 아이의 집이 이 근처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봉고차 한 대가 내려왔다. 눈길을 위태롭게 내려오는 차를 세우고 아이의 집을 물었다.
"경준이요? 이 차 타고 있는데요?"
"그럼, 경준이 아버님?"
"예, 기다려도 안 오시기에 보건소로 가던 참이었어요."
엉겁결에 인사를 나누며 길 때문에 도착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더니 "아래에서 조금만 기다리지 그러셨어요" 한다. 전날 보건소에 함께 갈 것이라고 얘길 해 놓았던 터라 나는 "뒤 따를 테니 앞장 서시죠"하고 봉고차를 따라 붙었다.
입학 앞두고 예방접종에 이발, 시장까지 본 경준이
▲긴장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는 경준이. 겁먹은 표정이 역력하다.강기희
▲ 긴장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는 경준이. 겁먹은 표정이 역력하다.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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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의 보건소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주인공인 경준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경준이는 아버지와 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이기자·48)와 형인 현준(운치분교 6학년·13)과 함께 읍내로 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준이를 위한 가족 나들이인 셈이었다.
아이는 예방 접종을 맞으러 왔다는 걸 알고 있는 탓에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맞아야 하는 예방 접종이라 피할 방법도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챙겨간 동화책을 입학 선물이라며 건넸다. 책 선물을 처음 받아 본다는 아이는 받아든 책을 이리저리 살폈다. 주사를 맞을 때는 아플 만도 하지만 제법 의젓하게 맞았다.
"아프지 않아?"
"애기 때부터 경준이는 주사 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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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 맞아도 울지 않는 씩씩한 경준이 ⓒ 강기희
▲ 주사 맞아도 울지 않는 씩씩한 경준이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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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경준이의 심경을 대변해준다. 그러자 긴장했던 아이의 얼굴이 펴지며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보건소에 간 김에 아이의 가족은 감기약 봉지를 하나씩 받아 들고 미장원으로 향했다. 가족을 미장원 앞에 내려준 김용성씨는 충북 제천에 볼 일이 있다며 길을 떠났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는 것은 입학식 준비 중의 하나. 아이는 며칠 후면 학교에 간다는 생각으로 어머니의 말을 잘도 따랐다. 말끔하게 머리를 깎은 아이는 문방구 앞에 있는 뽑기를 지나치지 못하고 어머니를 졸라 동전 두 개를 타냈다. 형 현준이와 아이는 찬바람도 아랑곳없이 마음에 드는 것을 뽑기에 바빴다.
이기자씨는 모처럼의 읍내 나들이라 시장 보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경준이가 좋아하는 반찬도 샀다. 어머니가 장을 보는 새 아이는 과자 몇 봉지를 골랐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곳에 사는 경준이라 읍내 나들이는 평소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즐기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이의 아버지가 제천으로 간 터라 남은 가족은 나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머리도 깎고입학식을 앞두고 경준인 꼬마 신랑이 되었다.강기희
▲ 머리도 깎고 입학식을 앞두고 경준인 꼬마 신랑이 되었다.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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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자가 맛있을까?모처럼 읍내 나들이를 한 경준이. 그냥 지나 칠 수는 없지. 강기희
▲ 어떤 과자가 맛있을까? 모처럼 읍내 나들이를 한 경준이. 그냥 지나 칠 수는 없지.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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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읍에서 아이의 집까지는 50리 길. 해발 천미터가 넘는 말구리재를 넘어 집까지 가는 도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준이는 커서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했고, 경준이의 장래 희망은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정선의 오지 마을인 운치리까지 시집온 이기자씨는 자준, 태현, 현준과 막내인 경준까지 아들 넷을 두고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둘째와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첫째는 집을 떠났다고 한다.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간다는 경준이네. 4만평 정도 농사를 짓는 경준이네는 작년에 5천만원 정도 적자를 보았다. 농협에 진 빚을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지만 땅을 버릴 수도 없으니 그게 더 걱정이란다.
▲경준이 오빠, 입학을 축하해~경준이네 식구로 살아가는 소. 살림 밑천이다.강기희
▲ 경준이 오빠, 입학을 축하해~ 경준이네 식구로 살아가는 소. 살림 밑천이다.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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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집에 도착하자 송아지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외양간을 뛰쳐 나온 송아지 한 마리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기자씨와 아이 둘이 이리저리 쫓자 송아지는 자신의 몫을 다했다는 듯 어미가 있는 외양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들은 이기자씨와 현준이가 먹이를 주자 그때에야 큰 눈을 껌벅거리며 되새김질을 시작했다.
입학 준비 끝낸 경준이, 이젠 학교 갈 날만 기다려
▲입학 준비 끝경준이는 이 가방을 메고 학교 갈 날만 기다린다.강기희
▲ 입학 준비 끝 경준이는 이 가방을 메고 학교 갈 날만 기다린다.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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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서니 아이는 가방부터 보여주었다. 이기자씨는 경준이가 학교를 얼마나 가고 싶어하는지 집에서도 가방을 메고 산다고 했다. 가방을 열어보니 실내화 한 켤레와 깎은 연필 몇 자루가 든 필통 하나, 그리고 기록장 한 권이 들어있었다.
"학교에 혼자 입학 하는데도 좋아?"
"학교 가면 형과 누나들이 있으니 심심하지 않잖아요."
경준이는 형인 현준이가 학교에 가면 혼자 놀았다. 이제 학교에 가면 그런 심심함은 덜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아이들은 문방구에서 뽑아온 장난감을 조립하느라 머리를 맛댔다. 그러는 사이 이기자씨는 점심을 차렸다. 근처에 식당이 없으니 체면 차릴 것 없이 아이의 가족과 둘러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경준인 눈길에서 자전거를 탔고, 현준이는 눈썰매를 타며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감기 기운으로 코를 훌쩍이는 까닭을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집 안에서 놀기보다 집 밖에서 놀기를 즐기는 아이들. 자연을 친구 삼아 노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자연을 많이 닮아 있었다. 컴퓨터가 없는 경준이의 집. 그래서인지 형제는 말하는 중에도 욕설을 섞거나 요즘 아이들이 즐겨 쓰는 유행어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
학생 수 8명의 초 미니 학교, 그나마 입학생이 있는 것이 다행
아이들과 헤어지고 운치분교를 찾았다. 운치분교 교사는 세 분. 두 분이 전근을 가고 작년에 부임한 박대규 선생님만 남았다. 그는 새로 부임한 선생님들을 대신해 입학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준이가 입학 준비를 끝냈듯 학교측도 경준이를 위해 선물을 한 꾸러미나 준비해 놓고 있었다.
올해로 운치리 생활 2년째인 박대규 교사는 경준이의 담임이자 이 학교의 분교장이었다. 교사 생활 12년 차를 맞은 박 교사는 원주에 가족을 두고 관사에서 혼자 살고 있다. 지난 해엔 현준이의 담임을 맡았던 인연이 있어 두 형제의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에게 운치분교의 학생 수가 몇이나 되는지 물었다.
▲담임 선생님경준이를 맡아 1년간 교육 시킬 박대규 선생님.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시네요.강기희
▲ 담임 선생님 경준이를 맡아 1년간 교육 시킬 박대규 선생님.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시네요.
ⓒ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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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이가 입학하면 총 8명입니다. 1학년 1명, 2학년 2명, 3학년 2명, 5학년 1명, 6학년이 2명이죠."
"4학년은 없네요?"
"한 학생이 있었는데, 개학과 동시에 원주로 전학을 간답니다."
"내년엔 입학생이 있나요?"
"외부에서 이사를 오면 모를까, 현재로선 내후년까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학생이 다 남아 있다고 해도 2년 후면 학생이 5명밖에 남지 않는데 학교가 존재할 수 있나요?"
"글쎄요, 폐교에 관한 결정을 지역에 맡기는 기한이 2009년까지로 정해져 있으니 그 이후엔 어떻게 될 지 저도 알 수 없네요."
입학생이 없는 학교가 존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설치한 교육 시설은 도시 학교보다 뛰어나지만 교육 기자재를 활용할 아이들이 없다면 그 또한 무용지물로 남는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 지역의 공동체 문화 또한 사라지게 될 터이고, 어른들은 추억을 잃는다. 1944년에 개교한 운치분교. 천여명 가까운 아이들을 키워낸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음을 느꼈다면 과문한 생각일까.
경준이가 운치리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의 학력 수준은 어떻습니까?"
"도시에 비하면 많이 떨어집니다. 한글과 영어 같은 것들은 입학해서야 배우기 시작하거든요. 재학생들도 마찬가지고요. 방학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배운 것들을 다 잊어 버립니다. 우린 그 현상을 '자연으로의 포맷'이라 합니다."
"포맷이요?"
"학기 중에 배웠던 것을 다 잊어 버린 다음 학교에 온다는 얘깁니다."
농촌의 현실이 그러하다. 학교를 제외하고는 교육을 받을 곳이 없는 탓이다. 방학 중에도 학원을 다니는 도시 아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운치리 아이들. 공부를 하기 보다 바쁜 일손을 돕기 위해 밭으로 가야 하는 아이들은 곱셈 나눗셈을 하는 것보다 농사 일이 더 익숙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진 농촌 마을인 운치리. 자지러질 듯 넘어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운치리 마을은 젊은이 대신 노인들이 마을을 지킨다. 붕괴되는 농촌 마을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아릿했다.
보건소를 오고 가는 길이 100리 길. 큰 병원에라도 가려면 두어 시간. 만화가게는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인 운치리에서 올해 입학하는 경준이가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 희망을 이어갈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학생 없으면 학교 문 닫고, 사람 떠나면 마을 문 닫는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이 나라 정부에게 묻고 싶다.
박 교사와 헤어지고 운동장을 둘러 보았다. 운동장 한 구석엔 누가 버려 두었는지 축구공 하나가 놓여 있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잣송이와 은행 알들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말라가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겨우내 한번도 구르지 못했을 축구공과 잣송이 그리고 은행 알들. 도시 같으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없는 것들이 운치리에선 조금은 쓸쓸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취재후기] 전봇대 들이받고 범퍼 나가고... 아이에게 가는 길은 길었다 |
아이를 만나러 간 날 운치리 마을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입학 준비를 하기 위해 읍내로 나가는 경준이네 가족을 따라가다 눈길에 미끄러져서 사고를 냈다. 타고 간 차량은 한참을 미끄러지더니 전봇대를 들이 받고서야 멈추었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차량은 밀고 들어온 전봇대로 인해 왼쪽 눈을 잃었고, 앞 범퍼가 떨어져내리는 상처를 입었다. 시동이 걸릴까 싶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굴러가는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급히 나사못을 찾아 범퍼를 고정시키고 경준이네 차를 따라갔다. 종군기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취재를 하면서도 고장난 차량은 잘 견뎌 주었다. 맥가이버가 아니면 시골에 살기 힘들다는 명제를 실감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범퍼가 또 떨어졌다. 덜덜거리며 공업사에 가니 견적이 80만원이나 나온단다. 엄청난 액수에 기가 턱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울어야 하나. 땅에 엎드려 울어야 하나.
진단 결과 암이 아니라서 그 기념으로 땅 선물 받았다는 어느 장관 후보자의 말처럼, 이런 날 땅 한 뙈기는커녕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위로해 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삶이 덧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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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화 한 켤레와 필통, 기록장 한 권 벌써 집에서도 가방메고 사는 경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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