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전원일기> 촬영했던 아름다운 농촌
신입생 수정, '나홀로' 재학생 은지 만나다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⑤] 충북 청원 문의초 도원분교 김수정

등록 2008.03.02 12:17수정 2008.07.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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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2001년 9월 20일, 충북 청원군 문의면 두모리 1구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63번째 주민의 탄생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막내주민 수정이의 탄생을 축하했다. 마을의 경사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도 수정이가 이 마을의 마지막 주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6년여 후...

 두모리 1구의 마지막 주민 수정이. 수정이의 아버지 김태근씨는 두모리 1구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수정이와 수정이의 오빠 성수,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두모리 1구의 마지막 주민 수정이. 수정이의 아버지 김태근씨는 두모리 1구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수정이와 수정이의 오빠 성수,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변종만

두모리의 마지막 주민, 수정이

충북 청원 문의면 양성산 정상 팔각정에서 대청호 너머를 내려다보면 산 아래로 농촌마을이 한가롭게 펼쳐진다. 문의면 두모리 인근이다. 기관이래야 농협분소, 보건지소가 전부라 운동장이 있는 시골학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학교는 한때 번성했던 마을을 상징하듯 크고 당당하다.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 작두봉과 양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아이들의 재잘대는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을의 중심이 되어 왔다. 특히 수정이가 살고 있는 두모리 1구 마을 입구는 수령 630년 된 보호수가 당당히 선 채 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대변한다.

김준식 학교운영위원은 "한 때 이 마을에 만석꾼 부자가 두 명이나 살았을 만큼 큰 마을이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마을풍경 덕에 MBC 인기드라마 <전원일기>를 1년 동안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농현상에 따른 마을의 쇠락은 차츰차츰 속도를 더해갔다.

 두모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630년 된 느티나무.
두모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630년 된 느티나무.변종만

천년의 역사, 이농으로 무너지다


두모리의 인구감소는 전국적인 이농현상 탓이긴 했지만, 이 마을은 또 하나의 사정을 안고 있다. 개발하고 싶어도 개발이 어려워진 것. 두모리는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대전과 청주, 천안의 식수원을 제공하는 대청댐 인근이라는 이유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두모리의 이농은 급속도로 가속화됐다. 

수백가구에 이르던 집들도 하나둘 사라져 8~9년 전에는 80여 호로, 지금은 56호로 줄었다. 이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던 골목길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1941년 7월 1일 개교해 99년 제51회까지 졸업생 2528명을 배출했던 도원초등학교는 99년 9월, 분교장으로 격하돼 현재의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가 됐다. 한때 600명씩 다니던 학교는 이제 25명의 정원으로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터면 올해는 초등학교 입학생 없이 3월을 맞이할 뻔했다. 두모리 1구외에 도원리 등 총 6개 마을이 도원분교의 학구 하에 있지만 다른 마을도 '아이들'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원분교의 유일한 취학대상자였던 두모리의 마지막 주민 수정이까지도 '나 홀로 입학'이 싫어 조금 먼 인근 초등학교로 진학하려 했었다.

결국 모교를 살리기 위한 동문회의 끈질긴 노력과, 가까운 학교에 보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수정이 부모님의 생각 덕에 '마지막 주민' 수정이가 도원분교의 학생이 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마을 주민들은 한시름 놓게 됐다.

두모리 1구에서 태어나 도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머님을 모시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김태근씨는 오래 고민 끝에 딸 수정이를 자신의 모교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또래친구 없이 7년을 살아온 수정이에게 '나홀로 입학'은 어떻게 다가올까.

 운동장의 흰 눈 위에 첫발자국을 남긴 수정이.
운동장의 흰 눈 위에 첫발자국을 남긴 수정이. 변종만

'나홀로 신입생' 수정이와 '나홀로 재학생' 은지의 만남

나와 수정이의 인연은 나름 특별하다. 문의초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지난해 도원분교로 부임해 왔을 때, 수정이의 오빠인 2학년 성수의 담임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쑥 찾아간 나를 수정이가 반갑게 맞아줄 리가 없었다.

"수정아, 학교에 입학하면 좋겠지?"
"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말문을 열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질문을 하면 대답대신 웃음만 밝게 짓는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와 회사에 나가는 어머니마저 안 계시니 더 쑥스러운가보다.

어쩌지? 문득 '나 홀로 재학생'인 은지가 생각났다. 3월에 5학년이 되는 은지는 지금은 혼자지만 입학 당시에는 친구가 두 명 더 있었다. 그런데 모두 전학을 가 2학년 2학기부터 나홀로 생활을 하고 있다. '은지가 동병상련의 심정을 잘 알겠지?'

그렇게 해서 '나홀로 재학생' 은지와 '나홀로 신입생' 수정이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방학 중이라 텅 빈 교실에서 수정이와 은지가 만났다. 처음 주고받는 눈빛이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쑥스러워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은지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학년에 학생이 너 혼자라 좋은 점이 있니?"
"... 아하~"

은지는 한참 후에야 이것저것 이야기를 시작한다.

"놀이기구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것도 좋고, 상을 많이 타는 것도 좋아요. 아참, 혼자라 선생님들에게 귀여움 받는 것도 좋아요."

 '나홀로 재학생' 은지와 '나홀로 입학생' 수정이의 만남
'나홀로 재학생' 은지와 '나홀로 입학생' 수정이의 만남변종만

교무실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귀여움 받고, 또래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학년에 배당된 상을 탈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럼 나쁜 점은?"
"어울릴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싫어요. 늘 언니, 오빠들과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다보니 어울릴 친구가 없어서 혼자 심심해요. 상장을 타도 아버지가 늘 당연히 받는 것이라면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속상하고. 하지만 언니, 오빠들이 잘 대해줘서 괜찮아요."

홀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은지는 제법 의젓했다. 은지가 말한 대로 놀이기구를 '마음대로'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전날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는 운동장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갈 수정이를 맞이한다.

아이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보다. 만나자마자 "하하, 호호" 웃으며 친자매같이 어울린다. 놀이기구에도 올라가보고 볼이 빨개질 때까지 그네를 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실려 나의 걱정도 조금씩 줄어든다. 따뜻한 봄날이면 수정이가 언니, 오빠들과 그네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리라.

"수정아, 오순도순 지내다보면 너도 즐거울 거야"

수정이는 3월3일 본교인 문의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을 하게 된다. 입학식을 앞두고 수정이보다 더 분주한 건 동문과 마을 사람들이다.

도원분교장 총동문회는 방과 후 활동 강사비를 연 4백만 원씩 지원하는 것은 물론, 2년 전부터는 '모교 뿌리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빈 집이 생길 때마다 젊은이들의 귀향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허귀행 총무는 "한 사람당 몇 천 만원이 들더라도 학생 수를 늘리고 싶다"며 지금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입학식날 수정이는 이봉기 도원분교장 총동문회장으로부터 입학축하금도 30만원이나 받는다. 또 학교 측의 배려로 1주일에 1번씩 본교에서 22명의 1학년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공부하게 된다.

도원분교 5명의 교사는 25명의 전교생들을 담임, 학년 가리지 않고 가족처럼 지도할 계획이다. 이곳 분교장에서는 아이나 어른, 내 반 네 반에 큰 의미가 없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은 교사들의 승용차에 삼삼오오 나눠 타고 콧노래를 부르며 현장학습지로 떠날 것이다. 그 맛은 분교장 아이들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도원분교의 교육은 자연친화적이다. 전교생이 실습지에 여러 가지 농작물을 심고, 고추나 옥수수도 따보고, 직접 캔 감자를 쪄서 나눠먹으며 즐거워하다 보면 1년이 금세 지나갈 것이다.

수정이가 마을사람들과 학교의 언니 오빠들과 어우러져서 교육의 참맛을 보길 기대한다. 나 또한 수정이를 지켜보면서 농촌이 활기를 되찾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할 것이다.

#나홀로입학생 #도원분교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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