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분교의 유일한 새내기 입학생 양현석. 현석이의 엄마는 저 멀리 필리핀에서 왔다.
최상진
보은에서 삼가를 오가는 시내버스 안, 사람으로 가득찬 버스 안에 20대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기사님은 오랜만에 젊은 사람이 탔다며 반가워했습니다. 그는 "십년 전만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많은 마을들이 있었는데, 여기도 시골은 시골인지 하나둘 빠져나가다 보니 어느새 남은 사람들은 노인이나 환자밖에 없다"며 "이 마을에 젊은 사람은 없어"라고 했습니다. 삼가로 오는 내내 저는 어르신들이 산 소금이며 농기구 등 무거운 짐들을 내려주기 바빴습니다.
버스에 같이 탄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홀로 남겨진 지 십여 분.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에 다다라서야 기사님은 "옆에 보이는 빨간 지붕이 삼가분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삼가 저수지와 구병산 자락이 어우러진 모습은 왜 이곳을 굳이 '알프스'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철망을 세워놓는 도시학교와는 달리 삼가분교 주위에는 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습니다. 1946년에 개교해 벌써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삼가분교는 한때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고 운동장과 건물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습니다.
낡은 책상과 반질반질한 마루로 된 복도를 예상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삼가분교는 '산골학교'에 대한 제 선입견을 무너뜨렸습니다. 교실과 복도는 깔끔하게 리모델링되어 있었고, 컴퓨터와 교육 기자재 또한 도시 학교 못지 않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무시무시' 교무실이 바로 나의 놀이터제가 오늘 만날 주인공은 바로 이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먹고 자고 생활합니다. 삼가분교 1학년 새내기 현석이의 아버지 양재붕(51)씨가 바로 학교 기사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석이를 처음 본 곳도 학교 교무실이었습니다. 들어가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던 교무실, 용감하게도 현석이는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었습니다.
짙은 쌍꺼풀, 동그란 얼굴, 반 곱슬머리의 현석이는 누가 봐도 잘 생긴 아이였습니다. 이 잘생긴 얼굴의 반은 필리핀인인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현석이가 좀 내성적이라고 했는데, 역시나 제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제가 현석이를 꼬신 건 바로 '축구공'이었습니다. 교무실에서 같이 놀던 아이들이 모두 여자들이어서 축구를 하자며 운동장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축구 좋아해?" "넷!"
저는 어린 현석이 앞에서 '주름 잡으며' 공을 세게 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공을 뺏어보라고 이리저리 도망다녔습니다. 현석이는 몇 번이고 공을 다시 차고 땀까지 뻘뻘 흘리며 쫓아다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현석이는 원래 내성적인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 형아와 새내기 초등학생 둘이서 텅 빈 운동에서 축구며 그네타기·정글짐·시소·철봉, 그리고 달리기를 하며 한 시간 넘게 놀았습니다.
여덟 살 현석이는 혼자 노는 게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