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독식으로 되살아나는 "우리가 남이가"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 이명박 대통령은 왜 무리수를 뒀을까

등록 2008.02.29 11:49수정 2008.02.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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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국정원장(경남 남해)과 김경한 법무장관(경북 안동)을 비롯하여, 이종찬 민정수석(경남 고성), 임채진 검찰총장(경남 남해), 어청수 경찰청장(경남 진양) 등, 이른바 '5대 사정요직'이 모두 영남 출신으로 내정됐다. 여기에 민정수석의 직속상관인 유우익 대통령실장(경북 상주) 그리고 경찰청장의 직속상관인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경북 영주)까지 가세된 형국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원장에 김성호 전 법무장관을 내정함으로써, 끝내 사정 관련 요직 7자리를 전부 영남 인사로 채우고 말았다. 이미 청와대 수석비서관 다섯 자리가, 충청과 호남은 한 명도 없는 가운데, 모두 영남 출신으로 정해졌다는 것을 아는 국민들로서 이것은 충격적인 일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새 정부는 국무위원 세 명이 여론에 밀려 줄줄이 낙마한 데다가 국민 대다수에게 이른바 '고소영' 내각이라고 냉소 받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먼저 고소영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이 말을 쓰는 점 양해를 구한다. 이런 말은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소지가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만은 마지막으로 한 번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하필이면 왜 새정부는 가뜩이나 '고소영' 내각이라고 비웃음을 사고 있는 마당에 '고려대'를 나오고 '기독교' 신자이며 '영남 출신'이기도 한 전형적 '고소영' 계보 김성호씨를 국정원장에 발탁했는지? 이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수거나 자충수처럼 비친다. 그런데 정말 그것은 실수로 인한 무리수거나 자충수일까?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말 바꾸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여름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탕평 인사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불과 보름 전인 2월 12일,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내각의 경우 장관을 임명하는 행위 그 자체로 정치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라고 전제한 후, "(내각 구성은) 국민 화합 차원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고려를 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런 약속들은 하루아침에 증발되었다. 수석 5인과 사정 관련 요직 7인을 영남 일색으로 도배하는 것은 국민 화합 차원과는 정반대되는 심하게 말해 '인사 쿠데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호 내정자는 참여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던 사람이다. 그는 법무장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친기업적인 발언을 자주 하곤 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2007년 1월 4일, 법무부 일과 그다지 상관도 없어 보이는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모임에 참석하여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다. 그는 뜬금없이 "기업사냥식 소송을 막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불법시위나 잘못된 노사문화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법무장관의 발언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친기업적이어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 대해서도 일견 동정적인 발언을 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어떤 기업의 모 회장이 구속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 아들이 눈이 찢어지고 온 것을 보니 흥분했고, 혼자 힘으로 안 되니 힘센 사람을 데려가서 되갚은 사건인데, 사실 부정(父情)은 기특하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사람 본위' '능력 위주'라는 말이 더 불쾌하다

이때 한나라당에서는 김성호씨의 장관 자격을 문제 삼고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황석근 부대변인은 "법을 지켜야 할 법무부 장관이 폭력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이라고 일침을 놓은 후,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정상참작의 여지' 운운하는 것은 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며 "(그는) 법무장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김성호씨의 국정원장 내정에 대하여 찬성을 하고 있으니, 한나라당의 인사 기준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혹시 '법무장관은 안 되지만 국정원장은 괜찮지 않은가?'라고 대답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말을 바꾼 것은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지역 편중의 여론을 알고 있다고 말한 후, "하지만 지역 안배보다는 사람 본위, 능력 위주로 (내각을) 짰다"고 밝혔다. 이는 며칠 전 당선인 대변인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그런데 약속 위반도 문제지만, '사람 본위, 능력 위주'라는 표현이 더 비영남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건지를 아는지? 왜냐하면 이동관 대변인의 말대로라면, 호남이나 충청에는 '사람'도 없고 '능력' 있는 이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영남 출신을 뽑았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모종의 확신'으로 밀어 붙인 국정원장 인사? 

김성호씨의 국정원장 발탁은 이번 내각 인사의 마지막 승부수처럼 단행된 성격이 짙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단행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거기에는 일말의 머뭇거림이 없어 보였다. 말하자면 '모종의 확신'을 가지고 행한 인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김 내정자는 참여정부에서 법무장관 재직 중에도 이명박 후보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발언을 기획적(?)으로 하고는 했다. 그는 BBK 의혹에 대해 "검찰은 의혹을 밝히는 조직이지 의혹을 해소하는 조직은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시절 교회 조찬 모임에서 "고대 후배인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나를 밀기로 했다"고 말한 바가 있다고 한다.(지난해 7월 6일, 서석구 변호사 <뉴스타운> 기고문) 거기다가 김 내정자는 새해 들어서만도 두 차례 이상 공식석상에서 친기업 정책의 당위성을 발언하여 이명박 당선인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 것으로 유추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명박 정부는 인사 문제로 심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러므로 무리한 인사를 단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아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마저 영남 독식 인사를 경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사 문제로 인기가 대폭 실추된 새 정부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안 좋은 정황에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형적인 '고소영'에 해당하는 김성호씨를 국정원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왜 이 대통령은 무리수를 감행한 것일까? 또 한 차례의 실수일까? 나는 이명박 정부가 그 정도로까지 각이 없거나 무모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의 논의로 돌아가 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되살아나는 "우리가 남이가"는 총선 돌파용?

벌써 16년 전 일이지만 '초원복집사건'은 지금 반추하기에도 약간 소름이 돋는다. 원래 "우리가 남이가"는 정겹고도 겸양스러운 경상도 지역 방언이었다. 그것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 어쩔 줄을 모를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해 줌으로써 그를 또 한 번 위로해 주는 훈훈한 표현이었다.

1992년 12월, 대선 국면에서 당시 김영삼 후보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3당합당이 선거 이슈로 부각되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다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을 비롯한 영남 기관장들이 해운대 '초원복집'에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제창한다. 그것은 경북인사와 경남인사의 결속을 다짐하는 구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대서특필되자 파장은 엄청났지만 놀랍게도 영남 후보 김영삼의 지지율이 일약 호전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부산·경남은 54.6%에서 56.3%, 그리고 대구·경북은35.7%에서 41.3%로 여론지지율이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김영삼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어 공교육론과 숭례문 국민성금 발언으로 인기가 내려간 새 정부는 인사 문제로 인해 결정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경북 출신 대통령은 경남 출신 국정원장을 내정해 버렸다.

누가 보아도 이번 인사는 초유의 영남 독식 '배째라'식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 인사가 "우리가 남이가" 식의 반작용을 기대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약간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심으로 그게 아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영남독식 #초원복집 #우리가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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