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경로: 치클라요(Chiclayo)→ 타라포토(Tarapoto)→ 유리마구아(Yurimaguas)→ 라구나스(Lagunas)→ 치클라요(Chiclayo)
가자! 아마존을 향하여!
아마존의 원주민처럼 원시생활을 하겠다고 우겨대는 에릭, 그 동안 내 고집만 계속 세워서 에릭의 욕심도 채워주어야 할 것 같아 '울며 겨자먹기'로 악어를 보러 아마존 밀림에 가기로 결정했다. 볼리비아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서도 꼭 악어를 보고 원주민이 되어 보고 싶다니 말릴 수도 없고. 남자들의 욕심은 좀 이상한 듯하다. 물론 이런 작은 차이는 함께 여행할 때 타협하고 양보해야 할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아마존으로 가는 것은 무리이고, 간 길을 다시 돌아오는 것도 무리여서 자전거는 치클라요(Chiclayo)에 두고 열두 시간 버스를 타고 아마존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여행은 정말로 고생스럽다. 도로는 구불구불 산길에다가 운전사는 인정사정없이 커브길 을 돈다. 게다가 밤새 쏟아지는 비는 우리가 앉은 좌석까지 뚝뚝 떨어져 '정말로 끝장이다'라는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밤새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나 오바이트를 했는지 간신히 새벽 6시에 타라포토(Tarapoto)에 도착하니 기진맥진하여 원숭이고 악어고 아무 생각이 없다. 이렇게 한 번씩 버스 여행을 하고 나면 우린 정말로 자전거 여행의 묘미, 기쁨을 느끼게 된다.
후텁지근한 열대 날씨, '윙윙'거리는 삼륜 모터택시의 소음에 귀가 따갑다. 택시의 소음은 시끄럽지만 더운 날씨에는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이다. 그리고 막상 타면 시끄러운지 잘 모르고 신난다. 한번은 타 볼만하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동과 장기간의 버스여행에 내 몸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 피곤하고 거울을 보니 눈이 '퀭'하니 흡사 인디오의 모습이다.
아마존에 도착했는가 싶었건만 타라포토에서 밤이나 새벽에 4시간동안 택시를 타고 유리마구아(Yurimaguas)로 가서 다시 나흘을 배를 타고 이키토(Iquitos)에 가야 아마존의 열대 밀림으로 갈수 있다고 한다. 일 년 전만해도 자유롭게 타라포토에서 유리마구아까지 차가 다닐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 공사 중이라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고 새벽 12시, 새벽 4시에 미니버스와 택시가 출발한다.
새벽의 택시 여행은 '광란의 질주'다. 모든 차량이 경주를 하듯이 달린다. 커브 길을 돌 때마다 자동차 바퀴에서 나는 '끽'하는 마찰소리가 들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운전사에게 아무리 천천히 달리라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한 3분 정도 천천히 달리다가 다시 질주다. 뒤에서 오는 차량과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심리적으로 지지 않고 달리려는 페루 남자들의 심리인 듯싶다. 남미 사람들이 심성은 온순한데 운전할 때만 돌변하는 것 같다.
대략 3시간을 질주를 하고 나니 항구가 보인다. 항구에 도착하니 '어디까지 가느냐', '배낭을 들어주겠다', '행거가 필요하지 않느냐'면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배를 이용하는 손님을 끌어오면 팁을 받기 때문이다.
아침잠도 덜 깨고 광란의 질주에 놀라서 아직 정신이 멍멍한데 몰려든 남자들 때문에 더 정신이 사납다. 난 이럴 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에릭을 따라 걷는다. 당연히 짐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이럴 경우 짐을 들고 도망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절대로 버스터미널이나 항구에서는 배낭과 가방을 맡기지 않는다. 아니 대부분 배낭여행 때는 내 짐은 내가 짊어진다. 배는 하나밖에 없는데 한 10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몰려드니 그들이 손님 하나를 챙겨오면 받는 수고비는 1Sol(300원)이라는 데 그걸 벌기 위해 그 전쟁인 것이 좀 불쌍하고 가련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드디어 아마존의 원주민이 되다
이키토까지는 나흘의 배 투어를 해야 하고 잘 정비된 관광객 숙소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아마존과 동물을 접한다고 한다. 하지만 라구나스(Lagunas)라는 곳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 라고 한다. 어느 곳으로 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건만 마침 라구나스 지역의 관광가이드가 배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도착하는 다음날 카누로 4박5일 동안 아마 존 밀림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사실 나흘 배를 타고 어떻게 가야하나 싶어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찌근찌근 아팠는데 라구나스까지는 12시간이라고 하니 일단 숨통이 트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4일 동안 배 안에서 그 환경을 이겨내면서 여행을 하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행거에서 자야하고 욕실과 화장실의 위생 시설은 엉망이다. 그리고 그릇과 숟가락도 가지고 있어야지 밥을 먹을 수 있다. 만약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배에서 살 수 있다. 에릭은 나흘 동안 음식을 얼마나 많이 샀는지 모른다. 2ℓ의 물 5병과 과일에 빵, 배낭 한 개 가득히 음식을 샀으니 굶어 죽지는 않으려나 보다. 다른 여행객이 밥이 영 아니라고 해서 음식도 많이 사고했는데 예상외로 밥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꼭 영화에서 보는 수용소 에서 밥을 타 먹는 그런 모습이다.
"으악! 저 카누를 타고 밀림으로 들어간다고? 난 못가. 구명조끼도 없고 만약 카누가 뒤집혀 강에 빠지기라도 하면 수영도 못하는 난 끝장이야. 또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이렇게 완강하게 반대하니 가이드가 온 마을을 뒤져 구명조끼 한 개를 구했지만 끈은 거의 다 찢어지고, 그냥 빨간 천에 스티로폼만 넣은 것이다. 더 따지고 잴 겨를도 없이 환경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카누에 올라탔다. 말이 카누이지 그냥 나무배다. 앞에 한 사람과 뒤에 한 사람이 카누의 노를 젓고 에릭과 내가 중간에 앉는다.
처음부터 난 '쇼'를 했다. 배에 들어갈 때 미끄러져서 발이 강에 빠졌을 때부터 낌새는 이상했다. 처음 몇 시간은 배에 앉아서 "강물에 휩쓸려 카누가 뒤집히면 어떻게 하지, 아니 내가 왜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고 이 배에 앉았을까?"하는 후회가 들었고 겁이 났다. 그리곤 조금 지나니까 "운명에 맡기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갖고 아마존의 밀림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 따가워!"
모기도 아니고 이상한 곤충이 온 사방 옷에 달라붙어 옷을 뚫고 문다. 당연히 팔과 발목에 살이 보이는 곳은 막 물어댄다. 배에서 움직이거나 설 수가 없어서 수건으로 곤충을 죽이려고 애를 써도 얼마나 많은지 이길 수가 없다. 아프기 그지없고 무척 따갑다. 아마존의 무서운 모기 일종이다. 모기약을 발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점심때 부터 환경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점심을 요리하는데 나무를 잘라서 불을 지펴 요리를 한다. 이것은 신기하고 맛도 좋은데 강물을 길러 밥을 하는 것이었다.
"난 못 먹어. 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굶을 수는 없어 기름에 튀겨주는 계란과 바나나만 먹었다.
오후가 되니 모기에게 물린 곳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덥고 가렵고 난리다. 그리고 날씨는 비가 왔다 해가 '쨍쨍' 났다 배에 앉은 내 마음처럼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또 비가 내리고 큰 배가 지나갈 때면 카누가 출렁거리고 물이 들어온다.
가이드는 오늘만 넓은 강이고 다음날 부 터는 조그마한 밀림으로 가기 때문에 배에 물 들어 오는 일이 없다고 겁내는 나를 위로한다. 강에 웬 고래. 고래가 이곳저곳에서 잠깐잠깐 모습을 보인다. 신기하다. 그리고 주위의 환경이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아마존의 모습이다. 으스스하고 꼭 나무에서 뱀이 스르르 내 어깨로 내려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오후 6시가 되니 우리가 머물 곳이라면서 카누를 세운다. 물론 아무런 시설도 없다. 텐트에서 잔다고 해서 방갈로나 무슨 시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강 옆의 밀림이다. 내 얼굴은 완전히 죽을상에 겁에 질린 모습이다. 두 가이드가 자란 나무와 풀들을 자르고 땅을 고른다. 땅을 고르더니 커다란 나무를 세 군데에 잘라 텐트를 치려고 한다. 텐트가 아니라 천막을 친다. 천막을 치고 땅에다가 플라스틱을 깔고 우리가 깔고 앉았던 방석이 침대가 된다. 그 위에다가 모기장을 해준다. 그 속에서 자라고 한다. 다시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울 수는 없고 참느라고 혼자 강을 보면서 이일을 "어쩜 좋지? 어쩜 좋지?"그 말만 되풀이 했다.
온종일 해가 '쨍쨍' 나는 배에 앉아서 화장실도 갈 수 없었는데 밀림에 들어가서 실례를 해야 한다니… 그러다가 뱀이라고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환경이 열악할 때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난 환경이 열악하면 정신적으로 더 나약해지고 온갖 상상력이 동원되어 히스테리적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점심때 먹은 계란 프라이가 잘못 되었는지 배는 아프고 모기는 몰려들고 정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그래, 나흘만 견뎌보자, 한번 원시인이 되어 보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야, 이건 모험이 아니라 무덤을 파는 거야. 난 못해!' 그런 생각이 더 앞선다. 부끄럽지만 나는 뱀이 제일 무섭다. 그런데 난 항상 남이 보지 않는 뱀을 본다. 어두워지니까 그 무서운 상상력이 더 동원된다. 이곳저곳에서 동물 소리가 들린다. 모기장을 뚫고 야생 동물들이 와서 습격을 할까 봐 걱정 투성이다. 가이드가 두 명이나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난 밤새 한잠도 못 잤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모기장을 어떻게 뚫고 들어온 모기 땜에 긁적거리고….
다음날 아침이 됐다.
"난 오늘 돌아가야겠어. 당신 혼자 원주민이 되든지 말든지…. 미안하지만 난 될 수 없을 것 같아."
에릭이 나의 의견에 완강하게 반대할 줄 알았것만 다행(?)스럽게 에릭 또한 배에서 움직일 수가 없고 너무 후텁지근한 날씨, 곤충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타잔이 되고 싶었던 에릭마저도 꿈을 버렸다. 나흘 일정의 아마존 원시인 체험을 우린 이틀 만에 그만두었지만 후회는 없다.
누군가 "아마존 원주민은 옷을 입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옷이 필요한 사람이라 아마존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존'을 떠올리며 모험과 스릴을 많이 연상하지만 곤충과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적당한 투어이다. 편안한 아마존 투어를 하려면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를 이용하여 이키토 투어가 적합하고 정말로 훼손되지 않고 옷을 입지 않은 아마존의 원시인의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은 배 투어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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