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미묘한 상황의 재현. 개인과 '커플'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다.
CleverMedia
만일 첫 번째 사람이 엉뚱하게 두 번째나 네 번째 변기를 고른다고 생각해 보자. 이 때 다른 두 사람이 잇따라 화장실로 들어온다면, 상황은 혼란스러워진다. 첫 사람이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은 당연하다. 그의 잘못된 선택이 3명이 사용할 수 있는 5인용 소변기를 2인용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라면 세 번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소변기는 없다. 그는 투덜거리며 좌변기로 가든지, 아니면 나중에 되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사태가 좀 더 긴박하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공연장이나 공연장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나, 촌음이 급한 상황에서는 이런 여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완충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디에 가서 급한 불을 꺼야 할까? 정답은 양쪽 가장자리다. 이 선택은 한 명의 완충지대만 침해하는 차악의 결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복잡한 상황도 많다. 한 개인 사용자가 있고, 옆에 두 명의 친밀한 동료가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 개인과 '커플' 중 누구의 완충지대를 침범해야 할까?
물론 최선의 선택은 이 위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면? 이 경우에는 '커플' 쪽에 서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을 나와 '커플'로 만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남자 화장실에서 선택의 문제는 '남성성'과도 결부된다. 이 상황은 두 개의 소변기와 한 개의 좌변기가 있는 소규모 화장실에서 잘 드러난다. 만일 소변기 가운데 하나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 어떤 선택이 바람직할까?
사실 이 경우에는 어떤 선택을 하든 상대방에게 큰 결례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절'보다는 '정체성'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관찰해 본 결과, 좌변기로 가는 사람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옆에 서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미국인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좌변기로 들어간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자기가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소변기로 가는 것 같다. 난 별로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우월'과 '열등'이 아닌 '다름'의 문제 서구 문화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서구적 삶과 사고를 '표준'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서구 예절'은 단일한 하나의 기준이 아니며, 심지어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서조차 예절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덥석 안지만, 어떤 이들은 안기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밥을 먹다가 식당이 떠나가게 코를 푸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를 벌레 보듯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극장 안의 잡담을 인내하는 사람도 있지만, 팝콘을 씹는 소리까지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나 지역에서도 도시와 교외에 따라서도 예의범절은 조금씩 달라진다. 보통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일수록 대인거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여기에 문화적 차이까지 결합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한국과 서구의 예절을 단순비교하면서 한국인들을 '예의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결코 무례하지 않다. 단지 예절이 다를 뿐이다. 물론 어느 기준으로도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무례한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