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세대'는 메이저,'니트족'은 마이너"

[일본NPO 한국88만원 세대를 만나다] 사회적 기업이 해결의 열쇠

등록 2008.03.09 11:06수정 2008.03.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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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PO 단체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고민해 보기 위해 일본 내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NPO 관계자들이 방한해 양국 청년실업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 성하훈



"일을 계속하기는 하지만 수입은 적고 정규직이 아니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일본의 니트(Neet)족과도 같은 점입니다."

한국의 88만원 세대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 고가 와카코씨는 일본 내 니트족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나이 또래와 처한 현실, 대내외적 환경이 양쪽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다.

니트(Neet)족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15~34세의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일본에서만 100여 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88만원 세대, 일본 니트족과 유사

한국의 88만원 세대를 보는 일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행사가 지난 3~8일까지 서울에서 마련됐다. 일본 내 청년들의 자립을 돕고 있는 NPO(비영리조직) 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해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우리 시민단체들과 함께 양국 청년들의 실업 문제 및 연대방법 등을 고민한 것.

일본에서 청년 실업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과 사업을 펴고 있는 이들은 5박 6일 동안 빡빡한 한 일정을 소화해 내며, 한국과 일본의 청년 실업 문제 비교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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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한 고시원 앞에서 한국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일본 NPO 관계자들 ⓒ 희망청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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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PO 관계자들이 6일 하자센터를 방문해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정미경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이들은 노량진 일대의 고시원과 게임방 등을 찾았고 희망청·실업극복국민재단·JOB CAFE 등을 둘러봤으며, 청소년자활지원기관인 하자센터·대안교육센터 등을 방문했다. 또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와 그에 따른 활동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어느 곳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장소들이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청년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벌이는 것도 이들의 주요 일정 중 하나였다. 

이번 행사는 한일 NPO 교류사업이란 이름으로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한일 문화교류를 추진하는 가운데 시민교류의 강화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준비했다.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과제(청년 실업 문제 등)를 중심으로 현장을 경험하고 의견 교환을 통해 협력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청년 계층의 실업에 대한 문제는 경제 사회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엇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부분. 그래서인지 이들은 한국의 청년 실업과 그 지원 대책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에 88만원 세대가 있듯 일본에 있는 니트족 또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관계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 자료를 통해 88만원 세대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와서 살펴보니 일본이 처한 현실과 기본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88만원 세대와 일본 니트족은 '비정규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니트족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청년 실업 문제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치카와 서포트스테이션> 센터장 고가 와카고씨는 "사회적 여건상 비정규직으로 취업이 안 되는 부분에 더해 일본 니트족은 정신장애와 발달장애자들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고,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88만원 세대 등장은 비정규직, 중소기업 약화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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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한 연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성하훈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시각이었다.

지난 4일 실업극복재단을 방문한 일본 NPO 관계자들과의 토론에서 희망청 활동가 송병기씨는 "(한국의 88만원 세대는) 단순히 일하기 싫어하는 부류가 아닌 일을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는 점에서 일본 니트족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고, 일본 관계자들 또한 5일 동안 여러 곳을 방문하며 한국의 현실을 살펴본 뒤에는 이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일본에서 청년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고토바노아토리에> 대표 야마모토 시게루씨는 "일본은 사회 속에서의 소수부류 마이너들의 문제지만 한국은 20대 전반의 메이저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보다 심각해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원인에 대해 한국의 경제 사회적 구조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점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와서 보니 비정규직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매우 약한 것 같다. 한국 청년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집중하는 것 같던데, 결국 이런 문제들이 88만원 세대가 나타나는 원인의 하나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전체가 아닌 개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는 "일본 청년들이 받는 압박이 더 심각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전체 세대가 아닌 일부 청년들의 문제이기에 나만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있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소외감,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환경 등은 한국의 88만원 세대에 비해 그 강도가 더 크다는 것이다.

다만, 현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는 한국 청년들이 일본 청년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는 것이 그가 한국을 둘러보면서 받은 인상이었다.

"전체를 다 볼 수 없어서 모르겠지만 이번에 만난 한국인 청년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해 절망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의욕이 사라지면서 은둔하려는 일본 청년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유일하게 여성으로 참가한 고가 와가코씨는 "한국 사회가 학력을 중시하는 곳이다보니 청년 실업자들 중 고시나 시험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떨어지는 이들을 위한 대책이 실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들은 경제적 사회적인 방법을 통해 풀어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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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청을 방문해 88만원 세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일본 NPO 관계자들 ⓒ 성하훈


한편, 한일 양쪽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런 청년 실업 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이란 OECD가 내리고 있는 정의에 따르면 ▲기업적 전략에 따라 운영하지만 공익을 추구하며 ▲이윤 극대화가 아닌 특정 경제 사회적 목표를 이루고자 하고 ▲사회적 배제와 실업 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모든 민간 활동을 말한다.

이같은 '사회적 기업'이 청년 실업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역할과 성격에 앙쪽 관게자들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던 것. 일본 관계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시민단체가 사회적 기업의 성격도 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청년들, 은둔하려는 일본 청년들 비해 긍정적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는 희망청 관계자는 활동을 소개하는 가운데 “20대의 사회적 혁신과 기업가를 길러내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만날 수 있게 할 수 있을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본 측 인사들은 사회적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대기업이나 공무원보다 사회적 기업이 더 멋있게 보일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
"이름만이 아닌 사회적 비젼과 마인드가 확실해야 한다."
"기업적 마인드를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부여가 중요하다."
"사회적 기업의 고정된 틀을 만들기 보다는 넓게 창을 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희망청 박광철 대표는 "이들이 일본에서 펼치고 있는 전반적인 사업 자체가 환경,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돌보는 일, 지역사회 만들기, 사회적 기업 등 시민운동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기업적 형태로 메우고 있는 것"이라며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기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이미 이 부분에 대해 앞서가고 있는 모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 창업가들을 위한 아카데미 과정을 준비할 생각인데, 이 부분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말하고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추진할 생각"이라며 "이들의 앞선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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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케이 소다테아게 네트 이사장 ⓒ 성하훈

'일본 내 사회적 엘리트들이 온 것’이라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대로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 NPO 관계자들은 모두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시민단체들을 이끌고 있었다.

올해 30세인 구도 케이씨 또한 공식 직함이 ‘소다테아게 네트' 이사장. 소다테아게는 길러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20대 청년 실업자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다. 2003년 발족해 2004년 법인으로 인가 받았다는 것이 단체에 대한 구도씨의 설명이다. 

23세 때부터 시민운동을 시작한 구도씨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세계학을 전공한 유학파 출신.

막연히 좋은 회사 들어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 안되면서 그럼 우리가 해보자하는 생각에 단체를 만들었고, 사회적 기업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젋은 나이에 이사장 직함을 갖고 있어 온라인 닉네임이나 별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사무실에 찾아와 '이사장님 어디 계시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때로 기업체 담당자들을 만날 때 이사장이란 직함을 보고 나이 지긋한 분들이 나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실무자들보다는 책임자들과 협의하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이 그가 밝히는 이사장직의 장점과 단점이다.

다음은 구도 케이씨와의 일문 일답

-일본에 있으면서 88만원 세대에 대해 들어봤나?
전혀 못 들어봤다. 다만 오기 전에 자료를 보고서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과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일본도 100만 엔 이하의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의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기업의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구조 조정 과정에서 20대가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결국 20대들이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는 셈인데, 이같은 환경이 앞으로 더 많은 나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88만원 세대를 직접 보니 어떤가?
일본보다는 더 심각해 보인다. 20대 계층의 일반적인 문제라서 더 어려운 것 같다. 연봉도 낮고 고용도 불안하고.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학교 졸업하면 다들 좋은 데 들어가겠지 생각하는데 잘 안 되는 분위기다. 나도 잘 안 돼서 그럼 우리가 직접 해 보자라는 생각에 단체를 만든 것이다.(웃음).

-일본 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고 했는데, 해결이 어려울 것 같은가?
한국 상황을 보니 해결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이를 위한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은 우리 부모님 세대인 그러니까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서 시작된 시민 학생운동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사회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국도 중년세대(386 세대)들이 사회운동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 자식 세대들 쯤에 가서야 지금 활동하고 있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 실업 지원운동에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정부나 기업에서 (실업극복운동에) 많은 지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기업과 연계를 꾀해 가는 일은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할 점 같다. 

-한국 시민단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번 방문을 평가한다면?
상당히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의미있는 일인지 알게 됐다. 청년 실업 문제는 단순히 두 나라만의 현안은 아닌 만큼 아시아 내에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도우며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지속적 연결고리를 맺고 싶다. 서로 간에 네트워크 형성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88만원 세대 #희망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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