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차별을 쓸자, 쓸어버리자"

[인터뷰] 여성의 날 빗자루 시위 고안한 사무금융연맹 김금숙 여성국장

등록 2008.03.11 10:25수정 2008.03.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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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차별을 쓸어버리자는 '빗자루의 외침'이 재밌다. ⓒ 사무금융연맹

모든 차별을 쓸어버리자는 '빗자루의 외침'이 재밌다. ⓒ 사무금융연맹
 

‘빗자루 더럽다고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의 아픔을 한 번이라도 쓸어주었느냐.’

 

빗자루의 재발견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을 쓸어버리자’며 집회현장에 빗자루가 등장했다. 지난 8일 시청 앞 ‘3·8세계여성의 날’ 행사에서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조합원 300여 명은 빗자루 높이 세워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장애인, 임신 출산여성 등 온갖 차별 철폐를 외쳤다.

 

평소에는 청소도구이지만 유사시에는 일상탈출의 수단으로 쓰이는 빗자루. 일상 곳곳에 쌓인 차별을 일소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비상을 도모하는 상징물로서 빗자루는 더없이 맞춤이었다.

 

하얀 깃발과 빨간 머리띠, 파란 투쟁조끼라는 ‘시위용 드레스 코드’를 탈피한 참신한 발상은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각 포털사이트는 ‘3·8세계여성의 날’ 보도용 이미지로 일자몸매와 초록머리의 ‘3·8빗자루’를 소개했다.

 

올해만이 아니다. 2007년에는 양성평등을 상징하는 보랏빛 앞치마가, 2006년에는 노란 양은냄비가 ‘3·8세계여성의 날’ 행사의 메인모델을 차지했다. 3년 연속 히트상품을 고안해낸 사무금융연맹 김금숙 여성국장을 9일 만났다.

 

승진, 장애인, 임신 출산여성 차별 쓸어버리자~ 

 

“실은 올해 부담이 컸지요. 2년 연속 냄비와 앞치마가 노동계와 언론에서 나름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예년 수준은 해야 하니까요. (웃음) 또 올해가 세계여성의 날 100주년입니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양성평등을 이룬 듯 보이나 실상 여성문제는 양극화가 심각하고 이중적인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되짚어보고 세계여성의 날을 즐겁게 기념하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고민 끝에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빗자루가 낙점이 됐지요.”

 

이날 시청 앞 광장에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및 시민 여성단체 등 2천여 명이 운집했다. 그 가운데 ‘빗자루 피켓’은 갓 돋아난 봄 새싹처럼 파릇파릇 진풍경을 연출했다. 빗자루는 총 300여 개.

 

‘성(性) 차별’ ‘비정규직 차별’ ‘승진 차별’ ‘분리직군제 차별’ ‘임신·출산여성 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장애인 차별’ ‘성소수자 차별’등 모두 8가지를 쓸어버리자고 선언했다. 일반조합원들이 안 쓰는 말들이나 과격한 구호는 탈피하면서 강력한 목소리를 담고자 최대한 고려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2006년에 경제활동인구 중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고용의 질은 현격히 낮습니다. 콜센터, 금융권의 창구업무, 계산원 등은 여성의 업무로 고착화 되어버렸죠.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입니다. 물론 지난 참여정부 때 여성 국무총리가 나오고 법무부 장관이 배출되는 등 엘리트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눈에 띄긴 했습니다만 이는 소수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여성문제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소수 엘리트 여성만 기회 평등 ‘양극화’ 심화

 

언뜻 여성들의 활약을 담은 통계와 현상은 화려하다. 각종 국가고시의 여성 수석합격자 소식이 들려오고 여성공무원 승진할당제가 도입되는 등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향상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기회의 평등’일 뿐 여전히 곳곳에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 사무직과 전문직 여성의 경우도 승진제도는 분명 있으나 길은 막혀 있는 ‘유리천정’의 현실에 처해있다.

 

“각종 제도들은 비교적 개선됐지만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는 여전히 공고하고 뿌리 깊습니다. 같은 인사고과를 받은 같은 조건의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누가 승진이 될까요.”

 

일부 경제적 능력을 갖춘 비혼여성을 일컫는 신조어 ‘골드미스’는 그들의 소비능력에만 초점을 맞춘 마케팅 전략에 따라 더욱 부각됐다. 부모에게 성차별을 받지 않고 자란 첫 세대 ‘알파걸’들이 학교에서 전교 1등부터 10등을 차지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뽐낸다지만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 ‘알파우먼’이 될 수 있는가는 의문부호가 남는다고 그는 진단했다.

 

외화내빈의 형국인 셈. 지난 15년 간 노동운동 일선에 몸담은 그가 현장에서 밀접하게 보고 느끼는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는 별반 개선되지 않았다. 외려 현란한 여풍 신드롬에 가려져 구조적 모순이 묻히는 실정이다. 해마다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우리 여성들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그가 고심하는 까닭이다.

 

가사노동과 육아 사회화 ‘양은냄비’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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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세계여성의날 양은냄비룰 들고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여성들 ⓒ 사무금융연맹

2006년 세계여성의날 양은냄비룰 들고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여성들 ⓒ 사무금융연맹
 

“재작년에는 조합원들이 일제히 양은냄비를 들었습니다. 냄비는 여성의 전유물인 가사노동을 상징합니다. 그것을 두드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찌그러뜨렸지요.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화를 발언한 것입니다.”

 

작년에는 보라색 앞치마였다. 양성평등을 뜻하는 보라색은 ‘피멍’의 색이기도 하다. 억압받는 여성을 상징한다. 김금숙 여성국장은 동대문시장을 발로 뛰며 예쁜 색상의 천을 골랐다. 그리고는 3과 8, 숫자 두 개만 나란히 새겼다. 함축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평상시 가정에서도 착용하도록 배려했다.

 

그는 “모든 것에 구호나 주장을 꼭 길게 써야한다는 것은 강박”이라며 많은 말을 하려다가 결국 아무 얘기도 전달하지 못하는 기존의 운동방식에 아쉬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3·8은 세계여성의 날뿐만 아니라 삼팔선 등 그 자체로 풍부한 울림을 갖는 숫자다. 단독배치로도 충분한 효과를 누린다고 판단한 것.  

 

“행사에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보라색 앞치마를 착용했습니다. 때깔 나고 분위기가 확 살았지요. 산적같이 시커먼 남성조합원들도 앞치마를 둘렀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과연 가사분담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을 테고요.”  

 

노동계와 여성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냄비와 앞치마는 그 후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벤치마킹 했다는 후문이다.

 

파업노동자와 남성도 ‘여성의 날’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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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의날, 남성노동자와 고연령층 여성노동자의 참여가 해마다 늘고 있다. ⓒ 사무금융연맹

세계여성의날, 남성노동자와 고연령층 여성노동자의 참여가 해마다 늘고 있다. ⓒ 사무금융연맹

 

올해 세계여성의 날 행사에는 다양한 변화들이 드러났다. ‘여성의 날’ 행사지만 남성들의 참여 비율이 높았다. 예년에 비해 고연령층 여성노동자의 비중도 눈에 띄게 늘었다. 최저생계비 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청소용역업체 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다.

 

또한 이랜드, 알리안츠생명 등 장기 투쟁 중인 조합원들도 한 무리를 형성했다. 알리안츠생명은 사용자 측의 일방적 성과급제 시행으로 인해 파업 중이다. 조합원 천여 명이 두 달 가까이 파업하는 것은 사무금융연맹 40여 년 역사에 남을 이례적인 일이다.

 

“처음에 알리안츠생명 노조에서는 남자조합원들만 있다며 참여를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말했지요. 여성의 날이라고 여성만 오는 건 아니라고요. 이 세상의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요. 막상 행사에 참가한 조합원들의 호응은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파업투쟁도 알리고, 빗자루 들고 발언하는 형식이 신선했다고 하더라고요. 3·8빗자루는 지금 알리안츠 본사 투쟁의 현장에 놓여있습니다.”

 

그는 이어 여성의 날 행사지만 장애인과 성적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차별까지 언급한 이유를 밝혔다. 지금까지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남성과 비남성이 있었다. 비남성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남성의 척도에 벗어나는 이들을 모두 포함한다. 

 

깃발과 붉은 머리띠...시위용 드레스코드 바꿀 때   

 

3·8세계여성의 날 100년. 이 땅의 여성들은 100이라는 무거운 숫자를 등에 업고 여기까지 왔다. 좋은 날을 기념하고자 많은 이들이 모였다. 그런데 시청 앞 광장이라는 접근의 용이함과 어린이용 놀이기구 설치 등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산별노조 및 시민단체의 깃발의 휘황함과 웅장한 투쟁가는 가히 압도적이다. 어딘가 겉돌았다. 조금 더 열린 축제와 공감의 장이 되도록 배치와 설정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여성대회에 남성참가자가 느는 등 여러 측면에서 느리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반면에 전반적으로 틀에 박힌 딱딱한 집회문화에 대해서는 과연 불변의 진리인가 의문을 던져볼 만하죠. 여성의 양극화 등 참담한 현실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중요하니까요.”

2008.03.11 10:25 ⓒ 2008 OhmyNews
#세계여성의날 #김금숙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여성차별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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