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현 봉암사 주지 스님이 7일 오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대운하 반대 법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우성
천지간에 봄기운이 완연하건만 아직 산색은 겨울입니다. 그러나 지난 3월 7일 나는 활짝 핀 ‘꽃’을 보았습니다. 그날 봉암사 마당에는 지금껏 내가 본 그 어느 꽃보다 크고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백지화시키기 위해 모인 대중들이 바로 그 꽃이었습니다. 그 꽃의 아름다움은 수행 정진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이 시대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에 앞서 봉암사에서는 대운화 계획 철회를 위한 '종교인 생명평화순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모두가 개산 이래 유래가 없던 일입니다. 산문을 폐쇄한 수좌 집단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세상 간섭이라는‘이유 있는’비판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세간이 무너지는데 출세간이 무슨 소용이며, 국토가 허물어지는데 어찌 희양산인들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전장에서 전리품 챙기기에 급급한 장수들지금 이 나라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당장의 돈에 눈이 멀어 앞뒤 분간도 못하는 듯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장에서 전리품 챙기기에 급급한 장수 같습니다. 이를 질타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만 아랑곳 않습니다.
특히 대운하 건설 계획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지 알면서도 오히려 강행 의지를 밝힙니다. 반대하는 국민의 뜻을 모래알처럼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물신의 사제’다운 태도입니다. 그들은 지금 공동체의 정신적 물질적 기반을 허물고 그 위에‘살생과 탐욕의 성전’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와 보살은 항상 세 가지 방법으로 중생을 제도한다. 첫째는 한없이 부드러운 말이요, 둘째는 한없이 엄한 질책이요, 셋째는 때로는 부드럽고 혹은 엄한 질책”이라 했습니다. 지금 우리 불자들이 이 땅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일러주는 부처님의 유훈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계획은 ‘탐욕과 분노와 무지’로 똘똘 뭉친 ‘삼독’의 미망입니다. 만약 승가 집단에서 이를 방관만 한다면 불상생과 무소유는 말장난이 되고 맙니다. 승가의 위의는 가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실로 대운하의 위기는 환경과 경제의 위기만이 아니라 승가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이를 수수방관하면서 무슨 면목으로 불조를 대할 것이며 무엇으로 시은을 갚을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