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노릇 할 생각 버리고 오직 중노릇만 잘하라

[가야산의 암자들 ④]일타 스님이 주석했던 암자 지족암

등록 2008.03.14 19:04수정 2008.03.1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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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족암 가는 길.

지족암 가는 길. ⓒ 안병기

지족암 가는 길. ⓒ 안병기

 

오솔길은 지족(知足)의 길이다

 

지족암을 향해 걸어간다. 길이 제법 호젓하다. 하지만, 너무 넓은 게 흠이다. 무생물이긴 하지만, 길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오솔길과 같이 작은 길은 생각을 일게 하며 부드러운 정감을 솟아나게 한다. 그러나 길이 넓어지면 그런 오밀조밀한 생각들은 어느새 구름처럼 순식간에 흩어지고 만다.

 

길은 그렇게 걸어가는 인간과 무수한 교감을 나눈다. 길이 구부러지면 사람의 마음도 따라서 구부러지고, 길이 직선이면 걸어가는 사람의 마음도 어느덧 사무치는 직선이 된다. 길가 작은 풀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면 나그네의 마음도 덩달아 하늘거린다. 길이 딱딱한 시멘트 길이면 그 길을 밟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물리적 변화를 일으켜 딱딱한 고체가 돼 버린다.

 

또한 오솔길은 지족(知足)의 길이자 자족(自足)의 길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걷기 좋은 길이다. 아마 이 길도 예전엔 그렇게 작은 오솔길이었을 것이다. 될수록 길 가운데가 아니라 포장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길섶을 밟으며 걸어간다. 마음이 고체가 되지 않으려면, 맨땅을 자주 밞아야 하리라.

 

유전을 거듭한 지족암의 역사

 

a  지족암 전경.

지족암 전경. ⓒ 안병기

지족암 전경. ⓒ 안병기

 

금세 지족암에 닿는다. 지족암은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해인사를 중건했다는 희랑 대사의 기도처였다는 말도 있지만 믿을 건 못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선비들이 쓴 가야산 유람기에 등장하는 지족암은 터만 남아있는 암자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조선시대 후기 1856년(철종 7년)에 추담대사가 창건하였다는 게 정설이 아닐까 싶다.

 

원래 이름도 도솔암이었다고 한다. 1893년(고종 30년)에 환운 스님이 절을 중건하면서 지족암으로 이름을 바꿨다. 도솔(兜率)은 범어 tuita의 음역이다. 묘족(妙足)·지족(知足)이라 의역한다. 도솔이란 육욕천 중 제4천에 속하는 곳이며,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머물러 사는 곳이다. 음을 버리고 뜻을 취한 셈이다.

 

1913년에는 불이 나 큰 요사채가 타버렸는데, 1915년에 해산 박기돈의 집안이 나서서 중건했다고 한다. 박기돈은 구한 말의 서예가요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한 대구지역의 상공인이었다. 지족암 중건 시에 쓴 상량문이 그의 집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1975년 이래, 일타 스님이 이곳에 주석하시면서 주변 건물을 정리하고, 법당을 새로 짓는 등 가람의 면모를 일신했다.

 

차와 선이 둘이 아니다

 

a  정자가 있는 풍경.

정자가 있는 풍경. ⓒ 안병기

정자가 있는 풍경. ⓒ 안병기
a  정자 옆에 세워진 끽다거래비.

정자 옆에 세워진 끽다거래비. ⓒ 안병기

정자 옆에 세워진 끽다거래비. ⓒ 안병기
 
마당으로 올라가자, 두 채의 정자가 나그네를 맞는다. 그중에서 원두막같이 생긴 삼덕정이란 초가 정자에 가 앉는다. 바로 옆에 기와를 얹은 사모지붕 정자가 있긴 하지만, 나무를 가공하지 않은 채 기둥을 삼고 초가를 올린 삼덕정이 더 운치 있고 평안하다. 자리에 앉으니, 가야산에서 갈라져 뻗어간 매화산 줄기가 보인다. 
 
사람들이 암자를 찾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큰 절과 같은 번잡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쓸데없는 망상과 번잡함을 털어버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차 마시기만 한 게 또 있을까. 정자 옆 까만 비석을 바라보니, '끽다거래(喫茶去來)'라는 말이 쓰여 있다. 조주선사가 자신을 찾아온 선객들이 어떤 답을 하건 "차나 한 잔 마시게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다선일매(茶禪一昧)의 경지를 맛보라는 뜻일 게다.
 
'끽다거래(喫茶去來)'라는 비를 바라보노라니, 80년대 광주를 대표하는 민중가요 가수였던 범능 스님 노래 '끽다거'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여보게, 세상살이 명리(名利)란

다 그런 것 있으나 없으나

모두 버리고 갈 유산인데

무에 그리 얽매이나

여보게, 세상살이 다 내려놓고

차나 한 잔 드시게나 - 범능 스님 노래 '끽다거' 2절

 

이 다정(茶亭)은 1999년에 입적하신 일타 스님이 지은 것이다. 벌써 10년이 다 돼 가지만, 일타 스님은 아직도 이곳 지족암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지족암 하면 일타 스님이다. 일타 스님과 불연은 끈질기게 얽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친가·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했다. 일타 스님은 1995년에 나온 <기도>라는 책에서 그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아마도 석가모니 부처와 그 일족의 출가를 빼곤 가장 숫자가 많은 집단 출가일 거라는 얘기다.

 

'끽다거'라는 노래를 부른 범능 스님 역시 끈질긴 불연이다. 언젠가 범능 스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5형제 가운데 4형제가 출가를 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그렇지만 일타 스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셈이다.

 

오직 중 노릇만 잘 하리라

 

a  마당 담장에서 바라본 가야산 봉우리들.

마당 담장에서 바라본 가야산 봉우리들. ⓒ 안병기

마당 담장에서 바라본 가야산 봉우리들. ⓒ 안병기

 

일타 스님은 192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고경 스님을 은사로 득도 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해인총림 해인사 주지를 거쳐 해인총림 해인율원장(1987년)과 조계종 전계대화상을 역임하셨다.


일타 스님은 당대 최고의 율사(律士)로 손꼽히던 분이다. 율이란 계율의 준말로써 청정가풍(淸淨家風)을 유지시켜 주는, 수행자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일타 스님은 율에 밝았으며 그것을 오롯이 실천했던 분이셨다. 스님은 "사람 노릇 할 생각 말고 오직 중노릇만 잘 하라"고 하셨다.

 

스님과 관련한 많은 일화가 있지만, 1954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 배씩 7일간 기도한 끝에 오른손 네손가락 12마디를 연비한 일은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하는 일이다. 연비란 불에 제 살을 태우고 뼈를 태움으로써 적멸의 상태에 들어가고 거기서 비로소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장엄한 구도의식이다.

 

'삼매를 닦고자 하여 여래의 형상 앞에서 소신 연비 연지를 한다면 이 사람은 옛 빚을 일시에 갚아 끝내는 사람이라 하리라'는 <능엄경>속 한 구절이 일타 스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어려운 연비를 실행하게 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스님은 온갖 망상을 깨끗이 씻고 태백산 도솔암에 들어가 6년 동안 용맹정진했다. 연비 사건이 수행생활의 전기가 되었던 것이다. 1976년 이래 주로 해인사 지족암에 머물던 스님은 1999년 미국 하와이 와불산 사자봉 금강굴에서 법랍 58세, 세수 71세로 열반하셨다.

 
一天白日露眞心(일천백일로진심 ) 하늘에 밝은 해가 진심으로 드러내니
 萬里淸風彈古琴(만리청풍탄고금) 만리에 맑은 바람 거문고를 타는구나
 生死涅槃曾是夢(생사열반증시몽)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려니
 山高海闊不相侵(산고해활불상침) 산은 높고 바다는 넓어 방해롭지 않구나 - 동곡당 일타 대종사의 열반송

 

헛된 세상 부질없는 꿈을 깨라

 

a  대몽각전 처마.

대몽각전 처마. ⓒ 안병기

대몽각전 처마. ⓒ 안병기

 

요사채 옆 커다란 백송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지족암 법당은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몽각전은 일타 스님이 1985년에 신축한 법당이다. 본래 산신각이 있던 자리에 20평 규모로 지은 것이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왼쪽에는 반가사유자세로 앉은 미륵보살이, 오른쪽에는 과거불인 정광불의 보살형 제화갈라가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중국에서 이운해온 관음보살이 있다.

a  대몽각전 쪽마루에 있는 범종.

대몽각전 쪽마루에 있는 범종. ⓒ 안병기

대몽각전 쪽마루에 있는 범종. ⓒ 안병기
 
'대몽각전'이란 법당 현판이 특이하다. '꿈 깨라'라는 뜻이다. 세상 사는 건 눈을 뜨고 있어도 꿈이요, 눈을 감고 잠을 자도 꿈이다. 그러나 아무리 헛된 꿈일지라도 자질구질하게 꾸어선 안 된다. 기왕이면 꿈을 크게 꿔야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진리를 구하는 길에 절실함이란 감정만큼 큰 힘이 된 것이 있을까. 방황하려거든 아주 먼 데까지 헤매보라. 그래야 허무의 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끝자락을 보고 나면 또다시 부질없는 짓을 하려들진 않을 것 아닌가.
 
'대웅전'이란 이름이 석가모니 부처를 받들기 위한 전각이라면 '대몽각전'은 거기에 드는 자를 위해 붙인 전각 이름이다.
 
법당 툇마루 끝에는 범종이 홀로 외롭다. 종에게 마음이 있다면, 대몽각전을 수 없이 들락거려도 끝내 꿈을 깨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여기서 종을 치면 이 좁은 골짜기에 메아리칠 것이다.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냥 여기 툇마루에 앉아 석양을 기다려 볼까나.
 
이것은 지족(知足)인가, 분에 넘치는 사치인가. 문득 끝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방황과 꿈과 사치가 하나같이 닮은꼴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슬슬 산을 내려간다. 아아, 지족을 아는 나는 얼마나 슬픈 중생인가.

 

a  해인사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금강암에서 바라본 지족암.

해인사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금강암에서 바라본 지족암. ⓒ 안병기

해인사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금강암에서 바라본 지족암. ⓒ 안병기
2008.03.14 19:04ⓒ 2008 OhmyNews
#가야산 #해인사 #지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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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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