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걸어다니는데, '증거불충분'이라니

[取중眞담] 삼성특검, 불법로비 의혹대상 왜 소환 안하나

등록 2008.03.14 19:03수정 2008.03.1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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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이학수 삼성전자 부회장 겸 전략기획실장이 14일 저녁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은 뒤 차량을 타고 귀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이학수 삼성전자 부회장 겸 전략기획실장이 14일 저녁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은 뒤 차량을 타고 귀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김용철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의 전화를 받고 허허 웃더니 '얘 검사 맞아? 나한테 토끼라는데?'라고 말한 뒤 '정말 내가 토껴야 하느냐'고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당시 정황은 <한겨레> 보도에 자세하게 소개되기도 했다.

 

이 신문은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12일 특검의 소환조사 과정에서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재직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되자 직접 전화를 걸어 '형님 튀세요'라고 조언한 뒤 수사를 피해 출국할 것을 권유한 정황 등을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했다.

 

이학수 부회장은 당시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에게 "이종찬이 자꾸 출국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이 수석과의 전화내용을 상의해왔다는 것이다.

 

재벌 부회장, 돈을 매개로 현직 검사들 조롱했나

 

이 뿐이 아니다. 김 변호사는 이종찬 수석과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와 관련해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은 장소와 시간 등을 진술서로 작성해 특검팀에 건넸다고 한다. 또한, 사회 각계각층의 로비를 담당한 삼성그룹 임원 30여명의 명단도 특검팀에 전달했다.

 

김 변호사가 작성한 '불법로비' 관련 진술서에는 "국세청 로비는 최도석 삼성전자 사장, 최외홍 부사장, 이선종 전무가 맡"았고, "국회 등 정치권 로비는 장충기 전략기획실 기획담당 부사장이 담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사제단이 '검찰 떡값명단' 일부로 밝힌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귀남 대구 고검장, 이종백 전 국가청렴위원장에 대한 삼성그룹의 로비 실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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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전종훈 신부)은 5일 오후 서울 상계1동 수락산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성호 국정원장은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았고,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은 비자금 차명계좌 개설 및 관리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전종훈 신부)은 5일 오후 서울 상계1동 수락산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성호 국정원장은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았고,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은 비자금 차명계좌 개설 및 관리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해당 관계자들은 전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와 이종찬 민정수석은 근거 없는 허위내용을 보도하면 법적 조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둔 상태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재벌 부회장은 돈을 매개로 현직 검사들을 조롱한 꼴이 된다. 재벌에게 수사정보를 건네고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면 그 자체로 검사 자격이 없다. 

 

문제는 특검이 김용철 변호사가 뇌물을 직접 줬다고 자백하는데도,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소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말처럼 "뇌물 건네고 영수증 받을 일" 없고, "기념사진 찍어둘" 리 없다. 그렇다면 김용철 변호사야말로 '걸어다니는 증거'인 셈이다. 그런데도 특검은 소환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증거불충분이 그 이유다.

 

하지만 특검이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을 일방적 주장으로 몰아세우고 접어버리기에는 그 진술 내용이 구체적이다. 게다가 그는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이학수 부회장이 이종찬 '선배 검사'를 향해 '얘 검사 맞아?' 했을 때의 참혹함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삼성, 특검이 그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따라서 특검은 남은 수사기간 동안 삼성그룹 비자금 모집 및 관리, 불법 경영권 승계, 불법로비 등 '3대 의혹'의 실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만약 'e-삼성'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재용 전무 등 사건관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고 끝내는 방식으로 결론을 낸다면 국민적 저항운동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참여연대·민변·환경운동연합 등 70여개 시민단체들은 오는 15일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국민한마당'을 열 계획이다. 15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서울 청계광장과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국민행진과 시민문화제도 계획돼 있다.

 

더군다나 조준웅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면죄부만 주고 끝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판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할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쓴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는 국민 자원봉사에 힘입어 피해복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 무한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으로 특검법이 만들어져 수사가 시작됐으나 이건희 일가의 불법을 규명하고 법에 따른 책임을 묻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권력, 불법행위의 책임을 인정 안 하는 뻔뻔한 삼성에 국민적 항의의 뜻을 전합시다."

 

이런 항의가 조만간 특검에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2008.03.14 19:03 ⓒ 2008 OhmyNews
#삼성떡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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