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소설보다 신문보는 게 더 무섭다

[일본 소설 맛보기 11] 온다 리쿠의 <도서관의 바다>

등록 2008.03.16 19:18수정 2008.03.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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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실의 바다>
<도서실의 바다>북폴리오
온다 리쿠의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이미지즘'이 아닐까. 작년 여름, 인상깊게 읽었던 <유지니아>에 이끌려 그녀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뚜렷하게 '이것은 이것'이라고 한 번에 말하는 법이 없는 듯하다. 그저 그 분위기를 느껴보라고 팔짱을 끼고 묵묵히 독자를 보는 듯하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하여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꼭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나 어디선가 보았던 것을 또 보는 듯한 기시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 느낌이 절묘하면서도 왠지 불안한 기분을 자아낸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팬들은 아마 그 맛에 그녀의 작품을 또 찾는 것이 아닐까.

<도서실의 바다>는 온다 리쿠의 단편소설 열 편을 모은 작품선이다. 단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단편보다는 엽편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90년대부터 미스터리 잡지 등에 기고한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이중 몇몇은 후에 장편소설로 재발표하기도했다. 작품의 모티브와 이미지가 아주 강하고 농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수련>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온다 리쿠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 등장하는 미즈노 리세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어느 영화의 기억>은 밀실이 테마인 앤솔로지 <대밀실>을 위해 쓴 것인데 이 작품은 반쯤은 실화라고 한다.

짧고 굵게...온다 리쿠 '컴필레이션'


<어느 영화의 기억>은 작중 화자인 소년의 작은 아버지와 그의 정부였던 소년의 어머니가 둘이서 짜고 작은 어머니를 죽인다는 이야기. 겉으로는 평온해보이고 아무 움직임도 없어보이던 파도가 어느새 차츰차츰 다가와 어느덧 정강이를 적시고 내 몸을 삼키는 듯한 공포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 외에 <피크닉 준비>는 <밤의 피크닉>이라는 대장편의 예고편으로 하루 만에 쓴 것. 당시 기고했던 문예지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는다하여 퇴짜를 맞고 그 이튿날 <오디세이아>라는 작품을 썼는데 이것 역시 단 하루 만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는 기괴함이 느껴진다. 그것의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살아가는 올바른 인물이 묘하게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경우를 볼 때가 그렇다. 또한 아주 정상적이고 차분한 일상뒤에 펼쳐져있는 모순과 불안함 등이 그 기괴함의 정체랄까. 이를테면 여기에 소개된 <국경의 남쪽>에서 한 인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 앞을 쓸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매달 우체국에 일정 액수를 저금하고 있을 것이다. 단추가 떨어지면 꿰매 달고 자전거 브레이크에서 소리가 나면 기름을 쳐달라고 하고 상가 스탬프를 모아 작은 경품을 받을 것이다. 막내 남동생이 감기에 걸리면 죽을 끓여주고 동네 병원에 어머니 약을 받으러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순당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그렇게 '순당하고 성실하게 사는'것으로 보였던 카페 웨이트리스가 매일 소량의 비소를 손님의 물에 타 넣으리라고 차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선량하고 순박해보였던 카페주인들과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말이다.

이래도 소설이 더 무서워?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으면서 참 기묘하고 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건이 발생하는 그곳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곳이라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좀 덜하지만 기리노 나쓰오나 다른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이 그려내는 현실은 도무지 잔인하고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현실은 그렇게 잔인하고 무섭지만은 않다고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가혹하고 끔찍한 법이라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평범'을 가장한 '엽기'를 숨기고 있는 현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겉으로 보기에 별 하자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멀쩡한 문화재에 불을 지르고, 남의 아이를 유괴하여 토막을 내고, 남편 전처의 아이를 불태워 죽이고도 천연덕스럽게 실종신고를 냈다. 미스터리 소설감으로 이 정도면 가히 엽기중의 엽기랄 수 있다. 이래도 현실보다 소설이 더 무섭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신문보기가 더 무섭다.

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북폴리오, 2007


#온다 리쿠 #일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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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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