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AP / 연합뉴스
이번 시위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 티베트와의 질긴 인연이다.
지난 1989년 3월 5일 1만명의 티베트인들이 라싸 인민광장에 몰려들었다. 티베트 국기인 '설산사자기(雪山獅子旗)'를 든 군중들은 "달라이라마가 돌아와 티베트를 통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외쳤다.
이들은 곧 중국 무장 경찰과 충돌했고, 20여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불에 탔다. 다음날 시위대에는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이 난사됐다. 3월 7일 시위는 완전하게 진압됐고 다음날 라싸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 16명과 무장경찰 한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티베트 망명정부는 250~300여명이 사망하고 350여명이 실종됐다고 반박했다.
3월 7일 <티베트일보>에는 이 지역의 최고 권력자인 티베트 공산당 서기가 철모를 쓰고 계엄군과 함께 라싸 거리를 장악한 사진이 실렸다. 이 젊은 서기는 티베트에 부임한 지 불과 2개월밖에 안됐다. 또 그는 1965년 티베트 자치구가 성립 이후 부임한 공산당 서기 가운데 군인 출신이 아닌 유일한 인물이었다.
계엄군을 진두지휘하며 라싸 거리를 피로 물들였던 당시 티베트 공산당 서기가 바로 후진타오였다. 불과 3개월 뒤 6·4 천안문 사태로 1400명이 사망했을 때 후진타오의 티베트 공산당 위원회는 중앙당을 적극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다.
후진타오는 티베트 사태를 강경하게 처리한 뒤 덩샤오핑의 눈에 들게됐고 이후 승승장구해 결국 지난 2003년 중국 국가 주석직까지 올랐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의 유혈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16일 후진타오는 집권 2기를 시작했다.
올림픽 보이콧 여부 관심19년전 티베트 유혈 진압은 후진타오가 출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과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이는 올 8월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이 이번 사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100년 넘게 서구 외세에 시달리던 중화민족의 완전한 부활을 선언하고 대외적으로는 패권주의·인권·환경 문제 등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끗하게 씻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티베트 유혈 사태로 벌써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됐다. 잔칫상이 엎어졌다고 할 수 없지만 재는 확실하게 뿌려진 상황이다.
지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서방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 대회로 치러졌었다. 그러나 아직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은 적다.
일단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 위원장은 지난 15일 "올림픽 보이콧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 정부를 비롯한 주요 서방국들도 현재로서는 불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사태 진전 여하에 따라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불참은 아니더라도 인기 선수들이 개별적으로 불참할 수는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은 상당수의 톱 선수들이 중국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빌트 등 16일치 독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스포츠 스타들이 올림픽 경기를 떠올릴 때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는 (올림픽 참가를) 취소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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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 진압으로 뜬 후진타오, 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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