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계에 이는 조용한 셰익스피어 바람

관객들 '캐릭터 종합선물 세트' 같은 무대 보며 갈채와 환호성

등록 2008.03.19 11:05수정 2008.03.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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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도 안 바꾸겠다는 셰익스피어

 

영문학을 대표하는 문화상품 1호는 윌리암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년)의 희곡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 <오셀로> <햄릿>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37개의 희곡 작품들은 지난 400년 동안 영국과 유럽은 물론,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까지 영감을 제공했다. 동양에서는 ‘일본영화의 천황’이라는 추앙을 받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오셀로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란(亂 1985)’을 완성하기도 했다.

 

지난 15년 간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미국의 할리우드다. 기네스 팰트로우, 멜 깁슨, 케네스 브래너 이들은 모두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한 적이 있다. 호주 출신의 바즈 루어만이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로미오+줄리엣(1996)>란 영화는 세익스피어의 이름을 국내에 알리는 데에도 결정적인 구실을 했고 ‘사바나의 햄릿’이란 별명이 붙은, 월트 디즈니 픽쳐스의 <라이온 킹>도 국내 관객의 인기를 끈 바 있다. 

 

물론 이런 루어만의 영화처럼 현대적 요소가 살포된 작품들의 스타일과 테마는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을 감독한 오슨 웰즈(George Orson Wells 1915~1985)가 영화적으로 재창작한 세익스피어의 작품들과는 완성도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를 심리적 공포영화 스타일로 찍었던 오슨 웰즈가 만약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을 관람했다면 경멸 내지 분노감을 표출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익스피어 작품을 해석하는 다양성을 말하기 위한 상상일 뿐이다.

 

2008년 한국도 셰익스피어 열풍?

 

지난 수백 년 동안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세익스피어 희곡의 무대화 내지 각색은 상반기 한국 연극게에서도 진행중이다. 지난해 <끝이 좋으면 다 좋아?(연출 남육현)>란 셰익스피어의 문제희극을 초연한 「유라시아 세익스피어」 극단은 앞으로 세익스피어 전작품을 한국 최초로 무대화한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관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햄릿>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4월5일까지 ‘시즌2’ 상연을 예약해 놓고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립극장도 세익스피어 작품에 관심이 많다.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의 예술감독 옌스-다니엘 헤르초크(Jens-Daniel Herzog)가 연출한 <테러리스트 햄릿>은 2007년 정기 공연에 이어 올 3월 23일까지 앵콜 상연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상반기에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영감을 받은 주목받는 작품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번 3월21일부터 4월13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무대화할 <레이디 맥베스>는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재해석된 새로운 맥베스가 관객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a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 나오는 배우들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압축해서 생략과 과장, 슬랩스틱과 익살로 풀어낸 이 무대는 영어권 인구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 나오는 배우들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압축해서 생략과 과장, 슬랩스틱과 익살로 풀어낸 이 무대는 영어권 인구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 M시어터 제공

▲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 나오는 배우들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압축해서 생략과 과장, 슬랩스틱과 익살로 풀어낸 이 무대는 영어권 인구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 M시어터 제공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캐릭터 종합선물 세트'

 

올해 2월26일부터 3월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The complete works of William Shakespeare>의 무대는 세 명의 호주 배우가 나와서 셰익스피어 희곡 37개를 압축해서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극이었다.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9년 동안 장기 흥행된 이 작품의 한국 공연에선 갖은 익살과 슬랩스틱한 연기와 분료담을 쏟아내는 백인 배우들을 본 관객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유행가 ‘텔미’가 등장하고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사이코>의 욕실 살해 장면의 배경 음악이 무대의 허공을 찢는가 싶더니 햄릿에 등장하는 극중극이 손가락 인형극으로 둔갑해서 나온다. 이어 KBS 개그콘서트에서나 보았던 되감기 개그까지 등장한다. 관객의 박수 소리를 앵콜 요청으로 받아들인 배우들은 동작을 거꾸로 하는 역모션 개그를 다시 압축,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 관객들은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보다 저마다 개성적인 100여 개가 넘는 인물들을 셰익스피어가 창조했다는 사실의 재발견이다. 인기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제목은 거의 등장인물 중심으로 되어 있다. <리어 왕>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헨리 5세><리처드 3세>…<햄릿>은 이 목록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인물유형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한다. 냉혹한 악한, 교활하게 사람을 조정하는 자, 멍청한 하인, 신비한 요정, 괴기스런 유령, 변덕스러운 떠돌이 방랑자, 우울하고 비탄에 잠긴 영웅, 매력적인 여인, 눈 먼 여인,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여인, 잠자는 여왕, 겁 많은 왕, 영리한 광대(이상은 호주 셰익스피어 글로브 센터의 맷 하워드 분석), 이밖에도 정욕과 윤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왕, 정신불열증 청년, 광기에 굴복 자살하는 아리따운 여자, 교활하기 짝이 없는 정치인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 다양한 캐릭터들은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며 관객의 의식에 자극을 가한다. 관중은 자기 안에서 이런 캐릭터 중 하나나 둘이 자신 안에 있음을 발견하며 탄성을 발한다. 예컨대 관객은 햄릿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애끊는 듯한 고통에 공감한다. 그런 관객은 오늘도 셰익스피어 무대를 찾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감상한 관중들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처한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면서 모호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앞으로 관련기사
<테러리스트 햄릿>
<줄리에게 박수를>
<레이디 맥베스>

2008.03.19 11:05ⓒ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앞으로 관련기사
<테러리스트 햄릿>
<줄리에게 박수를>
<레이디 맥베스>
#셰익스피어 #테러리스트 햄릿 #오슨 웰즈 #로미오와 줄리엣 #구로자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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