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계곡저 밑으로 흐르는 봄의 소리
이희동
나이가 약 1100~15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2여m, 밑둥 둘레가 14m로서 동양에서는 가장 크다는 용문사 은행나무. 예전에 어떤 TV프로에서는 이 은행나무의 가치를 1조원이 훌쩍 넘어 2조에 가까운 것으로 계산했었다.
2조원이라. 그러나 그 엄청난 액수 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전설을 안고 서 있는 은행나무의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돈의 가치를 들이대는 이 사회의 천박함이 영 못마땅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해야 이해할 수 있는 사회. 하긴 인간의 목숨마저 돈으로 환원하는데 은행나무 따위가 무어 대수겠는가.
용문사 은행나무의 가치는 그것이 단순히 크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전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높은 것이 아니다. 신라 마의태자의 지팡이가 변해 은행나무가 되었는지는 아닌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 전설이 1000년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 은행나무를 1000년 전의 사람들과 지금의 내가 함께 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은행나무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유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어떤 존재의 공유. 그것은 곧 역사의 시작이다. 인류의 기원이자 축복인 문자가 몇 천 년의 시간을 이어주듯이, 은행나무는 1000년 전의 선인들과 지금 이 땅에 태어난 나를 이어준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유한적이고 하잘것없는 나를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의 한 명으로 증명해주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