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콤 비정규직 새 보금자리도 '원천봉쇄'

20일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선출, 약이 될 수 있을까

등록 2008.03.19 08:51수정 2008.03.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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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이랜드·뉴코아노조, 기륭전자분회 등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공동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이지섭

3월18일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이랜드·뉴코아노조, 기륭전자분회 등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공동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이지섭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공권력은 언제나 약자에게만 가혹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증권노조 산하 코스콤 비정규지부(이하 코스콤지부)가 원청 사용자인 코스콤에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해 줄 것을 요구하며 증권거래소 건물 앞에 천막을 치고 파업을 시작한 지 182일이 됐던 지난 11일, 영등포구청은 민원 폭주를 이유로 새벽에 기습적으로 천막을 철거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조합원들이 여섯 달 동안 살아왔던 보금자리였다.

 

철거 과정에서 이를 막던 조합원들 중 6명이 용역의 과도한 폭력으로 인해 척추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새 정부 들어 첫 번째로 이뤄진 공권력 투입이자 그 대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향후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18일 코스콤지부 조합원들은 또 한 번 공권력의 냉혹함을 확인해야만 했다. 코스콤지부는 18일 오후 2시부터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공동결의대회"를 코스콤 건물 앞에서 진행했다. 지난 11일의 폭력 철거 사건을 규탄하고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집회였다.

 

기륭전자분회, GM대우 비정규지회 등 지난한 세월을 투쟁으로 보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그 중에는 2007년 한 해 큰 공분을 불러모았던 이랜드·뉴코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었다.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았던 이랜드·뉴코아 투쟁조차도 아직 끝나지 않은 '장기투쟁'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권력은 그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 경찰은 4개 중대 정도의 병력을 투입해 집회 내내 대열을 둘러싸고 있다가, 코스콤지부 조합원들이 천막을 다시 설치하려고 하자 곧바로 진압에 나섰다.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던 코스콤지부 조합원들은 결국 천막 설치를 포기했다. 여성 노동자들도 많이 와 있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지난 번처럼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연행됐다가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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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제지로 코스콤 농성장 천막 설치가 무산된 뒤, 널브러진 천막용 자재 앞에 코스콤 조합원과 연대 노동자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지섭

경찰의 제지로 코스콤 농성장 천막 설치가 무산된 뒤, 널브러진 천막용 자재 앞에 코스콤 조합원과 연대 노동자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지섭

 

코스콤지부의 이덕기 쟁의국장은 "연대 동지들의 힘을 빌어 다시 천막을 설치하려고 했다. 지금 남은 비닐 천막은 잠자리가 너무 추워서… 다들 감기도 많이 들고 피로도 잘 안 풀린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또 증권거래소 건물(코스콤은 대주주인 증권거래소 건물에 세 들어 있다) 울타리 옆에 보도블록으로 만들어진 경계선을 보여주며 "여기까지는 (증권거래소의) 사유지다. 사유지에 천막을 치겠다는데 왜 굳이 구청 공무원들과 경찰들이 나서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신경쓸 일이 아닌데…"라고 말했다. 코스콤 사측과 영등포구청·경찰 사이에 일종의 '교감'이 있지 않았겠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있을 때 (천막을) 치면 우리도 곤란하다. 우리가 없을 때 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양해각서'도 그리 믿을 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코스콤지부가 원래 천막을 치려고 했던 건 17일 밤이었다. 이를 먼저 알아차린 경찰은 '경찰이 없을 때'였음에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히려 농성장 근처에 병력을 대기시키고 밤새 지켰기 때문에 코스콤지부는 천막 설치 시도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오늘까지도 계속 상주하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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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왔는데… 계속 필요한가?" 영등포구청의 천막 강제 철거로 길가에 방치된 코스콤지부 조합원들의 가재도구 뒤로, 집회를 주시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 이지섭

▲ "봄도 왔는데… 계속 필요한가?" 영등포구청의 천막 강제 철거로 길가에 방치된 코스콤지부 조합원들의 가재도구 뒤로, 집회를 주시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 이지섭

 

20일, 내일 모레면 코스콤의 대주주인 증권선물거래소의 새 이사장이 선출된다. 후보자는 남상구 고려대 교수, 이정환 증권선물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 전홍렬 전 금감원 부원장 등 3명이다. 코스콤은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받는 사업물량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증권선물거래소의 영향력이 크게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차기 이사장이 코스콤지부에게 또 하나의 '공권력'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지섭 기자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월간 <노동사회>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이 기사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홈페이지(http://www.klsi.org)에도 실렸습니다.
#코스콤 #코스콤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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