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아들'과 '당 대표'의 대격돌
서쪽은 한나라당, 동쪽은 민주당 텃밭

[18대총선, 이곳이 뜨겁다 ① 종로] 박진-손학규 양강구도에 정인봉 가세

등록 2008.03.19 16:41수정 2008.03.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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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각각 서울 종로구 청운 약수터를 찾은 박진 한나라당 의원과 강북구 수유시장을 찾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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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 약수터를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과일을 나눠 먹고 있다. ⓒ 유성호


서울 종로는 조선왕조가 이곳에 터를 잡고 왕과 집권 사대부들이 거주할 때부터 우리나라의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을 부여받았다.

지난 20년 동안 98년 재보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한나라당 계열 후보가 어김없이 당선된 곳이지만,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역풍에 휘말린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열린우리당 김홍신 후보에 불과 600여 표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굳이 지난 총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특정정당의 일방적인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이 지역의 특성이다.

이번 총선만 해도 박 의원이 대선 압승에 힘입어 무난히 3선 고지에 오르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지만,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출사표를 던지며 얘기가 달라졌다. 지난 15일 실시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는 박 의원이 손 대표를 9~10% 차이로 앞서고 있지만, 민주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여당 견제론'이 부상하고 있어 최종 결과를 쉽사리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진] 6년간 표밭다진 '종로의 아들' 강조... 최근 떨어진 당 인기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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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안녕하세요! 종로의 아들입니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18일 오후 3시 종로구 효자동 통인시장을 방문해 시장 상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 문경미


3선에 도전하는 박진 의원은 새벽부터 지역구를 누비는 강행군에 돌입한 지 오래다. 손 대표의 종로 출마가 확정되자 한나라당 내에서 "야당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기 위해서라도 거물급 인사를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없지 않았지만, 박진 의원 이외의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외교분야 보좌역으로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2002년 재보선 이후 3번째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6년간 표밭을 다져온 만큼 주민들에게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그의 강점이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다가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중도 포기해야 했던 그가 손 대표를 꺾을 경우 차기 서울시장 선거의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셈이다.

18일 통인시장을 찾은 그는 유권자들을 만날 때마다 '종로의 아들 박진입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손학규 대표가 '갑자기 날아온 철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선거 전략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선거에서 지역 연고가 없는 후보들을 물리쳤다는 점도 박 의원에게 큰 자신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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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 약수터를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러면서도 그는 손 대표와의 대결을 '기구한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손 대표가 한나라당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경기고-서울대-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로 이어지는 이력을 공유했다.

박 의원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고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당이 달라져서 정치 1번지에서 승부를 겨루게 됐다"며 "얼마 전에 손 후보를 결혼식장에서 만났는데, 서로 페어플레이 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박 의원에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인기가 대선 직후만 못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직인수위가 영어몰입 교육 논란 등으로 인해 과거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활동을 종료한 것도 인수위 분과간사까지 지낸 그가 아쉬워할 대목이다.

박 의원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하고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데 장관 후보자 낙마도 있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이런 어려움이 쓴 약이 될 수 있다"며 애써 여유를 보였다.

다소 육중한 체구의 박 의원은 "인수위에서 계속 책상에 앉아서 일하다보니 체중이 조금 늘었다"며 "선거운동 하다보면 5kg는 자동으로 빠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손학규] 장관·지사 등 화려한 경력 자랑... 한나라당 탈당 전력 '꼬리표'

박 의원의 도전자로 나선 손학규 대표는 19일의 첫 일정을 창신동 숭인공원에서 시작했다. 낮에는 공천 마무리와 타 지역 후보 지원 활동 등으로 지역구 활동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아침운동을 나온 주민들에게 일단 '전입 신고'를 한 셈이다.

공원의 한 주민이 "운동 나온 사람들에게 커피를 팔아 불우이웃을 돕고있다"고 하자 손 대표는 커피를 사주며 "내가 복지부 장관을 하지 않았나? 정부 예산으로 다 감당을 하지 못하니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웃을 돕는 게 최고의 복지"라고 자신의 경력을 은연중에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 대표의 종로 입성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한 지지자가 손 대표의 탈당 전력을 거론하자 두 사람 사이에 즉석 정치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나라당 지지자 : "한나라당에서 복지부 장관과 경기도지사 다 했는데, 민주당으로 간 게 너무 아쉬워요."
손 대표 : "내가 한나라당을 개혁하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강부자 내각', '1% 특권층'얘기 나오고… 한나라당은 '이웃돕기 정신'이 부족한 것 같아요."

지지자 : "탈당할 때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이었잖아요? 그리고 민주당에서 유승희 의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손 대표가 온다고 하니…."
손 대표 : "비례대표를 하면 쉽게 의원이 될 수도 있지만, 서울시와 각 구청, 시의회가 한나라당 일색 아닙니까? 여야의 균형을 잡아보려고 나왔으니 제발 야당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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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만난 종로구민 "그래서 종로에서 자신있어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택한 종로구의 주민들을 만나기위해 19일 오전 7시 종로구 숭인공원을 찾았다. ⓒ 문경미


손 대표는 자신보다는 당을 강조하는 데 선거운동의 초점을 맞췄다. 손 대표의 '변신'에 비판적인 시각이 남아있고 야당의 대표주자로서 충분히 각인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극도로 낮추고 정당 대결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 들른 허름한 식당이나 미용실에서 '국회의원 이명박', '국회의원 노무현'이라고 적힌 벽시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종로의 지역특성 중 하나다. 이명박·노무현 전·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종로에서 당선되며 대선주자로서의 기반을 다진 만큼 종로구 주민들에게 스며들어있는 '대통령을 만든 지역구 주민'이라는 자부심이 손 대표의 득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이곳에 출사표를 던진 것도 두 대통령의 대권운이 자신에게 이어질 것을 기대한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이지만, 손 대표 자신은 "벌써 두 사람이 종로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는 지지자들의 얘기를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서부지역에선 한나라당, 동부지역에선 민주당이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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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시장을 방문하여 시장 상인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공식 선거운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선거 분위기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수차례 선거를 치러온 주민들의 출마자들에 대한 호불호도 분명한 편이다.

고급주택이 많고 중상류층이 주로 사는 서부지역(평창동·효자동·청운동 등)에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인 반면, 서민들이 몰려 사는 동부지역(숭인동·창신동 등)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높은 '서여동야(西與東野)'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종로 선거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만나본 종로구 유권자들도 지역에 따라 후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엇갈렸다.

통인시장에서 만난 '이명박 지지' 성향의 정학진(쌀가게 운영)씨는 "손학규씨는 원래 한나라당 사람이었는데, 통합민주당으로 옮겨가지 않았냐"고 "지금 지역구 의원(박진)이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안숙자씨도 "밖에서는 종로가 정치1번지라고 의미를 많이 부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평화를 원한다"며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대립적인 면을 그어서 이겨보겠다는 것은 별로"라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통인시장 상인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인물은 박진이 괜찮고, 손학규는 탈당 전력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으로 요약됐다.

제3후보들 활약에 따라 두 사람 승패 엇갈릴 수도 있어

반면, 창신동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손학규를 찍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 대표가 입주할 아파트 근처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경자씨는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 김씨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요새 하는 걸 보니 무리수를 많이 두고 속도조절이 안 되는 것같다"며 "박진 의원과 한나라당 구청장 얼굴 한 번 안 비치는데, 아무래도 손 대표 밀어야겠다"고 쏘아붙였다.

자영업자 장형석씨도 "박진 의원도 잘 했지만, 손 대표가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해놓은 업적이 있지 않나? 대선은 한나라당을 찍었으니 총선에서는 민주당을 찍을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양강 구도에 가려진 제3후보들의 활약에 따라 두 사람의 승패가 엇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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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시장을 방문하여 지역 주민들에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자유선진당 후보로 나오는 정인봉 변호사는 지난 20년간 이 지역에서 법률상담소를 무료로 운영하며 토박이 주민들에게 크게 인심을 얻었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네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1만5000 표 이상을 꾸준히 득표해온 만큼 적어도 1만 표의 잠재력을 가진 후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까지 지냈다가 '기자 성접대' 사건이 드러나는 바람에 의원직을 내놓아야 했던 그는 "국회에 다시 들어가면 '과외공부 금지'법안을 발의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정 후보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외금지는 진보성향의 강준만 교수가 '전두환 대통령이 유일하게 잘한 정책'이라고 칭찬할 정도로 사교육 열풍을 막은 획기적인 정책이었다"며 "나중에 위헌 결정을 받았지만, 당시 헌법재판관이 '이 정도로 사교육이 문제될 줄 알았으면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할 정도로 사교육을 막기 위한 획기적인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후보는 "이 공약 덕에 학부모들로부터 알찬 표들이 모이고 있다. 지금 언론사들이 내 이름을 빼고 여론조사를 돌리고 있는데, 지금 조사해도 13%는 나온다"고 자신했다.

'커밍아웃'으로 관심 모은 진보신당 최현숙 후보도 득표 활동 돌입

선두를 다투는 양 후보는 '정인봉 변수'를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그의 득표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상존하고 있다.

박진 선거사무소의 관계자는 "기자 성 접대로 의원직을 잃었고, 돌출 기자회견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하는 등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문제인물'로 찍힌 사람"이라고 평가절하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사이에서는 "정인봉 후보가 나오면 손학규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손 대표의 측근은 "정 후보가 그동안 서민 거주지역에서 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의 출마가 손 대표에게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2002년 재보선과 2004년 총선에 출마했던 정흥진 전 종로구청장이 비례대표 출마로 선회한 것이 손 대표에게는 다소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두 차례의 선거에 출마했던 정 전 구청장이 각각 9000여표를 획득함으로써 2위를 달리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후보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3선에 도전하는 박 의원 측도 "이번에야말로 '표가 갈려서 운 좋게 당선됐다'는 소리를 안 듣도록 압승을 거두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커밍아웃한 여성동성애자로 관심을 모은 진보신당 최현숙 후보도 "성 소수자 등 소외계층의 권익향상을 위해 싸우겠다"며 종로3가에 선거 사무실을 내고 득표 활동에 들어갔다.
#격전지 #박진 #손학규 #정인봉 #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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