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제공
"생활필수품 50개의 물량수급을 정부가 직접 관리해 서민물가를 안정시키라."지난 17일 지식경제부의 업무보고에서 나온 대통령 말씀이다. 얼굴에 '나는 엘리트'라고 써놓은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난리가 났다. 결론은? "물가안정에 더욱 힘쓰라는 지시",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란다. 요즘 대통령 보고는 선문답으로 하는 모양이다.
서민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필수품'이란 뭘까? 주거비·의료비·교육비의 상승이 가장 큰 부담이고 식료품비와 공공서비스요금도 문제다(이는 통계청의 '소득분위별 가계지출 현황'에서 바로 확인된다. 단, 교육비는 노인가구 등 자녀없는 가구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한 '물량수급의 직접 관리'는 가치재(주거·의료·교육)와 에너지가격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공서비스요금(철도·전기·수도·가스·우편 등), 그리고 식료품에 해당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부는 건강보험비·학원비·공공서비스 요금의 동결, 즉 가격통제를 제시했고 농산물 및 가공 식품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쌀라면", "설렁탕의 사리", "한미 FTA 하의 농업" 등을 제시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21세기형 문제에 70년대식 가격통제'라고 맹비판할 만 하다. 규제완화와 민영화, 세금 인하 등 전형적인 시장만능론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가격통제를 들먹이니 경제학자들이 고개를 외로 꼬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이런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시장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화의 성격에 따라 나눠서 정부 정책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검토 속에서 시장만능을 내세우는 이 정부가 얼마나 시장에 대해서 무지한지, 그리고 진보의 대안은 무엇인지 제시할 것이다.
[주거·의료·교육비] 민영화로 올리면서 가격통제한다니 서민의 주거비 부담은 주택소유자의 경우 대출 이자, 전세가구는 전세 인상금(및 해당 이자), 사글세는 집세로 나타난다.(따라서 월세만 집계한 통계청의 수치는 과소평가돼 있다.) 의료비는 건강보험비에 더해서, 보험이 보장해주지 않는 약 40%의 본인부담금이 문제인데 중병에 걸릴 경우 서민 가계는 곧 파산을 맞을 수 밖에 없다. 교육비는 계층별 지출에 큰 차이가 나며 이 차이는 현재와 같은 학벌사회에서 아이들의 앞날을 결정해버린다.
이 '의교주(醫敎住)'는 과거의 의식주(衣食住)에 해당하는 필수재이며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는 아니지만 최소한 기회의 평등이 요구되는, 사회적 정의의 대상으로서 공공성이 대단히 강한 재화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적 공급과 공적 공급이 공존하는 재화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찾는다면 '가치재'가 가장 근접한 개념이다.
문제는 '시장'에서 공교육과 사교육, 건강보험과 민간보험,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이 경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인수위와 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민간공급의 제약을 없앤다는 것이다. 즉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고급 사교육시장, 고급 의료보험 시장, 고급 민간주택의 공급이 늘어나는 반면, 돈과 사람이 고급시장으로 쏠리는 만큼 공공의 공급이 위축되고 심지어 소멸하리란 것은 이론으로 보나 경험으로 볼 때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가격 상승과 양극화는 필연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급증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현실은 이미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서민들의 불만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가격통제다. 한마디로 모순적인 정책이다. 정책의 큰 틀은 민영화/시장화를 촉진하면서 그 부작용은 가장 저급한 수단인 직접적 가격통제로 막겠다는 것이다. 강둑을 무너뜨리고 그 물을 바가지로 퍼내겠다는 발상이다.
진보의 대안은 공적 공급의 강화이다. 종부세, 누진적 보험료 및 세금 투입, 사교육세 등 기존 자산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여 공공의 공급의 양과 질을 향상시키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극화를 조장하는 정책기조 속에서 대중의 불만이 터질 때마다 자의적이고 일시적으로 가격통제를 한다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규제완화를 내세워 법과 제도는 무력화하고 자의적으로 공무원이 직접 통제하는 것만큼 저열한 정책은 없다. 교육과 부동산·의료정책에서 이명박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장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