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이마, 끝이 살짝 올라간 두툼한 입술, 넓은 코평수의 캄보디아 사람들을 닮은 사면상. 54개가 넘는 사면상, 즉 200개가 넘는 큰바위 얼굴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39개의 사면상 뿐
이승열
하늘과 밀림, 사면상을 또렷하게 구분지었던 푸른 어둠이 점점 더 짙어져 간다. 천년을 하루처럼 묵묵히 서 있는 저 관세음보살의 현신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이 이룩했던 앙코르 제국의 영광과 몰락, 그 와중에 숱하게 일고 스러진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까?
동서남북, 그 각각의 길이가 3km, 둘레 12km에 이르는 정사각형 앙코르 톰(Angkor Thom)은 거대한 도시란 뜻의 크메르 왕국 마지막 도읍지였다. 현재 실측해도 네 변 길이의 오차가 5mm 이내라 하니, 계절에 따른 수축과 팽창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열대 기후였다고는 하나, 건물과 다리가 맥없이 무너지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당시 그들의 건축술에 경이와 찬탄을 보낼 따름이다. 당시 중국 원나라 사신으로 앙코르 톰을 찾았던 주달관의 기록을 보면서 찬란했던 앙코르 톰의 위용을 짐작해 본다.
'왕궁의 중앙에는 황금 탑(바이욘)이 우뚝 서 있고, 주변은 12개가 넘는 작은 탑들과 돌로 만든 수백 개의 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에는 황금사자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황금 다리가 놓여 있고, 다른 쪽에는 황금 불상 8개가 돌로 된 방을 따라 늘어서 있다. 청동으로 된 황금 탑(바푸온)의 북쪽에는 바이욘보다 더 높아 보이는, 아래에 10개가 넘는 방이 있는 탑(삐미아나까스)이 있다. 이 탑의 북쪽 4분의 1리쯤에 왕이 기거하는 왕궁이 있다. 왕실 위에도 황금으로 된 탑이 있다. 이 탑들을 보고 외국에서 온 상인들마다 앙코르 제국은 참 부유하고도 장엄한 나라라며 감탄했다.' 성 안팎으로 인구 백만이 살았던 거대한 도시 앙코르 톰의 정 중앙에, 내가 지금 서 있는 바이욘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에 비견되는 자야바르만 7세는 1170년 똔레삽에서 있었던 참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왕위에 오른 뒤, 왕가의 정통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기득권 세력의 견제와 맞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