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어우러진 편안한 정원을 꿈꾸며

[백하단상 7] 나무도 모여 있을 때 더 아름답다

등록 2008.03.25 09:10수정 2008.03.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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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을 땅 한 평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나무를 심고 꽃길 만드는 일이 호사임을 모르지 않는다. 혼자만의 평화란 현실 도피일 수 있다는 점도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일이 눈치 없는 처신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나무심기는 희망 없는 정치를 보지 않기 위해 택한 길이다. 더구나 아내는 물론 나 역시 건강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을 위해 주말이면 우리의 정원에서 나무나 심고 채소를 가꾸며 산다. 주말 유명 관광지의 꽃소식을 소개하는 텔레비전의 유혹이 떠들썩하다. 꽃구경 떠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나무를 심을 시기다.

a 동쪽 철쭉길 아래에서 윗쪽으로 잡은 풍경

동쪽 철쭉길 아래에서 윗쪽으로 잡은 풍경 ⓒ 홍광석


토요일 아침, 우리 정원에 도착하자마자 지난 일요일에 반쯤 타버린 잔디밭을 대비로 쓸었다. 불에 탄 잔디밭의 잔디는 더 잘 자랄 것이라고 하지만 불탄 흔적은 여전히 철렁하게 한다. 때문에 흔적이 덜 보이도록 지운 것이다.

그리고 오전에는 배롱나무 다섯 주, 목련 두 주, 노란 꽃이 피는 산수유 두 주, 회화나무 두 주를 심고 오후에는 하얀 철쭉 백 주를 심었다.  

나는 아름다운 정원보다 여백이 있는 편안한 정원을 꿈꾼다. 물론 남의 일손을 빌리지 않고 아내와 둘이서 설계하고 내가 나무를 심으면 아내는 물주는 일을 한다. 평면의 땅이라 입체감이 없다는 지적도 듣지만 가급적 구릉을 만드는 등으로 땅의 모양을 변경하지 않을 작정이다.

a 백일홍 작년에 심은 백일홍 두 주에 금년 다섯 주를 더 심었다.

백일홍 작년에 심은 백일홍 두 주에 금년 다섯 주를 더 심었다. ⓒ 홍광석


지난해 봄, 철쭉이 빨리 자라리라는 생각만으로 울타리에 듬성듬성 심었다. 그러나 철쭉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이 풀이었다. 여름 내내 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철쭉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정원에 무더기로 심어진 철쭉이나 도로변에 심어진 철쭉을 보면서 내 생각이 짧았고 조급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철쭉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모여 살 때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체격이 작은 나무들은 혼자 두면 외롭게 보일 뿐 아니라 여름날에는 풀에게 더 시달림을 받는다. 특히 꽃은 한두 개만 보는 것보다 무리지어 어우러질 때 풍성한 느낌을 주고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법이다. 모여 사는 나무가 더 힘을 얻기에 그래서 같은 종류끼리 모아 심는 법인데 그 점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금년에는 두 줄을 기본으로 하고 촘촘하게 심었더니 우선 엉성한 느낌을 주지 않아 좋다. 아마 몇 년 후면 아름다운 꽃길이 될 것이다.


a 동편 철쭉길 위에서 아랫 방향으로 잡은 풍경.

동편 철쭉길 위에서 아랫 방향으로 잡은 풍경. ⓒ 홍광석


그렇지만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를 섞어 심는 것은 곤란하다. 나무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고 성장의 한계도 같지 않은데 나무들의 합창을 기대하며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를 함께 심는다면 자칫 작은 나무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가 큰 백일홍은 작년에 심은 백일홍 옆에 모아서 심고 모과나무는 친구를 찾아 옮겼다.

나무를 심는 일은 헐렁한 놀이가 아니다. 거리와 미관을 고려하여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지주를 세워 고정하고, 물을 주는 과정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몇 번의 삽질에 이마에 흐르고 등에 땀이 밴다. 팔다리도 뻐근해진다.

그럴 때는 심어놓은 나무를 돌아보며 피로를 달랜다. 요즘 나무들도 바쁘다. 작년에 심은 나무들은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거나 새싹을 내느라고 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나무들에게 나름대로 말을 걸기도 하고 엉긴 가지를 풀어주면서 정원을 한 바퀴 돌면 나무의 기운을 받은 덕인지 뻐근했던 몸도 풀리는 것 같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정원은 아내와 나의 ‘나라’다. 심어진 나무들은 우리의 백성들이다. 우리 땅에는 어린 묘목도 있고 제법 굵은 나무도 있지만 어리다고 무시당하고 크다고 더 대접 하지 않는다.
   
또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동백에게 더디 자란다고 구박하지 않는다. 지난해 심은 매화가 아직 자리를 못 잡은 때문인지 비실거리는 모습이 보이지만 ‘코드’ 운운하며 퇴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열매를 맺으면 또 그런대로 다 소중한 백성들일 뿐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그 속에서 나도 나무를 닮고자 한다.

a 매화 작년에 심은 청매 중에서 가장 꽃을 많이 피었다.

매화 작년에 심은 청매 중에서 가장 꽃을 많이 피었다. ⓒ 홍광석


지난 1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나무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갖게 된 것은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무에게 단순히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나무를 쓰다듬는 마음을 얻게 된 것이다. 아니다. 나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나무들의 외형을 볼 뿐 소리를 듣거나 내면을 들여다 볼 능력은 없다. 과연 나도 나무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한겨레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음.


덧붙이는 글 한겨레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음.
#평안한 정원 #나무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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