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산수유의 한 해, 그 위대한 여정

등록 2008.03.25 13:58수정 2008.03.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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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산수유 산수유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던 3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산수유 산수유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던 3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 김민수

▲ 산수유 산수유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던 3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 김민수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지난 겨울, 긴 겨울이 미안해서 큰 꽃샘추위 없이 봄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삼각산 자락 사무실 뒷켠에 산수유나무의 꽃몽우리가 수줍은 듯 노란 꽃봉오리를 내어놓았다.
 
봄이 오는구나, 나는 그를 보면서 도시의 봄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하면 그와 눈맞춤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a 산수유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산수유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 김민수

▲ 산수유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 김민수
 
매일매일 보아도 그저 그렇게 보이던 산수유가 어느 날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들은 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봄을 만들어가고 있는 동안 작은 풀꽃들이 앞을 다퉈 피어나기 시작했다. 피어난 작은 꽃들이 일으키는 봄바람에 산수유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는 듯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a 산수유 터지기 시작한 후부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보인다.

산수유 터지기 시작한 후부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보인다. ⓒ 김민수

▲ 산수유 터지기 시작한 후부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보인다. ⓒ 김민수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들은 변해갔다. 그들은 보면서 '변함과 변질'의 경계를 볼 수 있었다. 변해가는 것이 쓸쓸한 것만은 아니구나, 변하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생각하며 나이듦이라는 것이 단지 쓸쓸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a 산수유 이제 오전과 오후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산수유 이제 오전과 오후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 김민수

▲ 산수유 이제 오전과 오후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 김민수

 

막상 꽃몽우리를 터트리자 그들의 행보는 빨라졌다. 마치 스프링처럼 막 튀어오르는 그들의 행보는 오전과 오후가 달랐다. 그렇게 천천히 오더니만 막상 곁에 오더니만 그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게 빠르다. 봄, 그렇게 천천히 왔다가 그렇게 빨리 달려가는 것임을 산수유를 보면서 본다.

 

a 산수유 이제 곧 꽃망울이 하나 둘 터질 것이다.

산수유 이제 곧 꽃망울이 하나 둘 터질 것이다. ⓒ 김민수

▲ 산수유 이제 곧 꽃망울이 하나 둘 터질 것이다. ⓒ 김민수
 
그러나 이제 곧 피어날 듯, 피어날 듯 꽃 한 송이를 기다리고 기다려봐도 뜸을 들이며 앙다물고 있다. 이제 저 꽃도 한 송이 피어나면 앞을 다투며 피어날 것이다. 저 작은 꽃들마다 가을이면 붉은 산수유를 맺을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모두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남은 꽃들을 위해 떨어지는 꽃들도 있을 것이다. 남은 것들이 떨어진 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본다. 남은 것들, 그래서 열매 맺는 것들만 승자가 아니라 떨어진 꽃들도 패배자가 아닌 것이 자연인 것이다.
 
a 산수유 그러나 한 송이 꽃을 피우기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산수유 그러나 한 송이 꽃을 피우기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 김민수

▲ 산수유 그러나 한 송이 꽃을 피우기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 김민수
봄비가 내린 다음 날, 비에 젖은 채로 피어난 꽃이 있었다. 봄비가 산수유가 머금고 있던 노란 물감을 조금 빼앗아갔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노란칩은 눈 부시다.
 
드디어 피기 시작했구나. 노란 속내를 보기 시작한 이후 10여일 만에 보는 꽃이다. 그는 알까? 그렇게 많이 피어난 꽃봉오리 중에서 나의 시선이 줄곧 그에게만 가 있었다는 것을.
 
a 산수유 한 송이 피어나자 앞을 다퉈 피어나기 시작한다.

산수유 한 송이 피어나자 앞을 다퉈 피어나기 시작한다. ⓒ 김민수

▲ 산수유 한 송이 피어나자 앞을 다퉈 피어나기 시작한다. ⓒ 김민수
 
불어오는 바람에 빗물을 털어내고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그들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젠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에 한 송이씩이라도 피어날 듯 힘찬 몸짓을 본다.
 
드디어, 축제다.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듯 산수유의 꽃이 봄을 자축하며 피어나고 있다. 이미 남녘에는 오래 전에 그 축제가 시작되었지만 이 곳은 이제 막 그 축제가 시작되었다.
 
a 산수유 이제 곧 화들짝 피어날 터이지만 산수유빛은 꽃을 피기 직전이 더 매혹적이다.

산수유 이제 곧 화들짝 피어날 터이지만 산수유빛은 꽃을 피기 직전이 더 매혹적이다. ⓒ 김민수

▲ 산수유 이제 곧 화들짝 피어날 터이지만 산수유빛은 꽃을 피기 직전이 더 매혹적이다. ⓒ 김민수
 
신비롭다. 이제 남은 꽃들 다 피어날 즈음이면 어제 오늘 핀 꽃들은 작별하고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그들이 피어나는 순간까지 담는 것도 그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가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고, 꽃이 진다고 그들의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까지가 딱 좋을 것 같다.
 
a 산수유 그 작은 꽃들 중에서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남아있는 것을 위해 떨어진 꽃도 있다.

산수유 그 작은 꽃들 중에서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남아있는 것을 위해 떨어진 꽃도 있다. ⓒ 김민수

▲ 산수유 그 작은 꽃들 중에서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남아있는 것을 위해 떨어진 꽃도 있다. ⓒ 김민수
 
그 어느해 가을에 담아 놓았던 산수유의 열매를 꺼내어 본다. 그 작은 꽃 하나가 저렇게 소담스런 열매 하나가 되었다. 피어난 꽃들 중에서 열매가 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아도 가을이면 산수유는 붉은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노란 꽃 속에 붉은 물감이라도 들어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 빛이 이리도 고울까? 내 안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빛깔,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a 산수유 겨울, 하얀 눈을 이고 한 해를 마감하며 새 봄을 준비하는 산수유.

산수유 겨울, 하얀 눈을 이고 한 해를 마감하며 새 봄을 준비하는 산수유. ⓒ 김민수

▲ 산수유 겨울, 하얀 눈을 이고 한 해를 마감하며 새 봄을 준비하는 산수유. ⓒ 김민수

 

겨울, 미처 떨구지 못한 것들이 하얀 눈과 어우러져 은빛 세상의 홍일점이 된다.

 

산수유의 한 해,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여정을 쉰 적이 없다. 칼바람이 불어왔다고, 장대비가 왔다고, 타는 목마름과 찌는 무더위가 왔다고, 꽃샘추위가 왔다고 그 여정을 멈춘 적이 없다.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피고, 지고, 열매를 맺으며 변함없는 삶을 살아왔다.

 

변함없이, 그러나 늘 새롭게 다가오는 만물이 춤추는 축제의 봄날 나도 변함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3.25 13:5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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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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