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차버린 여학생과 함께 먹었던 부대찌개

수원 합동신학대학원 앞 할머니 부대찌개 집에서의 일화

등록 2008.03.25 15:27수정 2008.03.2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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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1997년까지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합동신학대학원'에 다녔다. 학교 밑에 부대찌개를 아주 잘하는 집이 있었다. 아예 식당 이름조차 없는. 우리들은 그 부대찌개 집을 '할머니 부대찌개집'으로 불렀다.


집은 다 쓰러져가고, 의자도 없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 옛날 온돌방처럼.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밤에 한 번씩 나가 먹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금요일마다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 한 분은 점심을 반드시 할머니 부대찌개 집에 드셨다. 매주 빠지지 않고.

부대찌개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부산물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할머니 역시한국전쟁 직후 미군 부대 근처에 사시다가 부대찌개를 만들어 파시기 시작하였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다. 그 집 육수 맛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였다.

음식을 앞에 놓고, 다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었다. 신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당시 일인분에 4000원 정도였다. 몇 명이 어울려 먹으면 푸짐하고, 넉넉한 만찬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술값으로 들어가는 것을 몇 인 분 더 시켜 먹을 수 있어서 양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할머니 부대찌개집에서 겪은 잊을 수 없는 추억 거리가 있다. 같은 반에 마음에 든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마음에 들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가장 순진한 방법인 편지를 썼다. 드디어 여학생이 나를 만나기를 원했다. 1995년 가을 어느 날 우리는 둘 만의 장소에서 만났는데 그게 바로 할머니 부대찌개 집이었다. 기대가 넘쳤다.

"동수씨 정말 끈기 하나는 대단하네요."
"……."
"보내주신 편지 잘 읽었어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좋았어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니 정말 고마웠어요."
"00씨 일 년동안 지켜보면서 고민도 많이 했고, 앞으로 이 길을 가는데 동역자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 말도 잘 못하는 편이라,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동수씨 마음은 고맙지만. 제 마음은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편지가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요."
"저는 편지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동수씨가 나의 한쪽이 되는 것에 대하여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받고서부터 부담스러웠다는 것입니다."
"…?"

"진실한 마음을 가진 동수씨에거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이예요.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잖아요."


할머니집부대찌개가 그날 만은 쓰고, 맛이 없었다. 수없이 먹었던 부대찌개 맛이 아니었다. 육수는 싱거웠고, 진한 맛이 전혀 없었다. 주인이 바뀌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따라 부대찌개 맛이 없네요."
"당연하지요. 내 한테 완전히 차였는데."


그냥 웃고 말았지만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학교까지 올라가면서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와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후에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할머니 부대찌개 집을 찾지 않았다.

1997년 8월 한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1998년 2월 졸업을 위하여 학교에 다시 갔다. 아내에게 학교 앞에 제일 맛있는 부대찌개 집이 있으니 저녁은 거기서 먹자고 했다. 할머니는 안 계시고 며느리가 할머니 뒤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다.

"이런 집도 장사가 되나요? 얼마나 부대찌개 맛이 있으면."
"한 번 먹어보면 알거요. 정말 두 사람이 먹다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어요."

"당신이 맛있다고 하는 집 치고 진짜 맛있는 집은 없더라."
"아차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해줄까요?"
"아 그 여자 전도사님?"

"응 바로 이 자리에서 완전히 차였지. 오늘 그 전도사님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 보고싶다. 그 분. 당신 찬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한데요?"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나더라. 부대찌개 먹으면서 짝사랑했던 사람에게 차인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술이라도 마실 줄 알면 정신없이 마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나요."
"그 분도 대단해요. 차이고 나서 서먹서먹해서 어떻게 지냈어요?"
"응 그럭저럭 지냈지."

오래 만에 먹어본 부대찌개 맛은 할머니 때보다 조금은 못했지만 아직도 맛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 나는 나를 차버린 전도사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잤다. 그 남편도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분이었다.

부대찌개가 생각나면 집에서 한 번씩 끓여먹지만 전혀 맛이 나지 않는다. 한 번은 진주 시내에서 부대찌개를 시켜 먹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한 숟가락 입에 대고 식당을 나온 적이 있을 정도로 학교 밑 할머지집 부대찌개 맛은 잊을 수 없다.

할머니집 부대찌개는 맛도 잊을 수 없는 곳이지만 나를 차버린 여성과 아내가 된 여성과 함께 한 잊을 수 없는 맛집이기도 하다.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곳 할머니 부대찌개 집에  후배들이 계속 드나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학교) 맛집> 응모글


덧붙이는 글 <우리 동네(학교) 맛집> 응모글
#부대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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