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세습은 막아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 인터뷰 특강을 다녀와서...

등록 2008.03.25 21:18수정 2008.03.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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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대충의 일과를 서둘러 마무리 하고서 지하철을 타고 숙명여자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특강이 마련된 백주년 기념관으로 쌀쌀한 꽃샘바람을 거스르며 오르자 이미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강의실 안으로 입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 맛깔스런 입담과 재치, 쫄깃쫄깃한 말솜씨가 매력적인 배우 오지혜씨가 사회자였습니다. 역시나 청중들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의 목소리와 호소력 짙은 어휘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진행, 순간순간 넘치는 재치와 순발력 있는 유머, 때론 매우 의식적인 비판적 용어와 발언들. 처음 마주하게 되는 오 지혜 씨는 그녀의 말마따나 천부적인 딴따라였습니다.

 

잠시 후 요즘 세간의 인구에 회자되며 언론의 이목과 관심을 몰고 다니는 김 용철 변호사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는 별 다른 인사말도 없이 곧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들은 김 변호사의 거침없는 ‘촌철살인’의 이야기 중 인상적인 부분을 간단히 메모한 것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삼성 비자금 1조원은 5천만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0만원 씩 나눠줄 수 있는 돈입니다.”

 

“우리나라의 법 집행구조의 트라이앵글은 ‘검사는 잡아넣고, 판사는 적당히 선고하고, 변호사는 돈 받고 빼내주고’ 하는 서로 돕고 서로 나눠먹는 삼자공조의 공생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삼성에 입사하여 OJT를 받을 때였습니다. 말이 ‘오제이티’지 하루 종일 회장(이건희)의 통치사료에 대한 자료(영상물)를 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마치 절대로 잊어버리지 못하도록 세뇌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장은 참 특이한 분이셨습니다. 그는 6시간 동안 한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참석한 임직원들은 잠시라도 자리를 뜰 수 없어 물도 안 마시고 그대로 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삼성에서 제게 승진제안을 해 온 적이 있습니다. ‘네가 원하는 때를 골라라, 그리고 네가 가고 싶은(원하는) 회사를 골라라! 다 들어주겠다.’ 그런데 저는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장단이 되면 그들과 확실한 공범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삼성에 들어가서 결재서류(양식)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검찰청에서 쓰던 문서양식하고 너무 똑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네가 문서양식을 만들어 놓은 것을 정부에서 빼다가 쓴다고 말했습니다.”

 

“삼성 회장 비서실은 청와대 비서실하고 경쟁관계라고 말합니다. 모든 조직구조와 서류양식 보고체계 등이 청와대하고 똑 같았습니다.”

 

“나는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세습으로 영구히 지속되는 씨스템(system)을 통해 국가권력이나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오염시키고, 악용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특수부 검사로써 전 두환 씨 비자금 수사를 하면서 현금흐름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3개월 간 퇴근도 못하고 전국에서 10억 원 이상의 현금의 흐름을 모두 조사해서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부하들(장 0 0, 안 0 0 등)을 불러다가 당신들 어른이 1조에서 정확히 4백5십만 원 빠지는 비자금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하였더니 그 사람들 하는 말, ‘어른께서 큰 뜻이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더군요.”

 

“수사는 의지로부터 시작된다. 훔친 사람에게 ‘혹시 훔치신 게 없으시지요?’ 라고 묻는다면 그 수사는 의미가 없다. 의지 없는 수사는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저는 호남(광주)출신 입니다. 예부터 남도는 강진, 완도, 해남, 담양 등 서울에서 천리를 넘어선 유배지라 할 수 있는데, 남도 끝자락을 다시 말하면 역적들의 소굴인 것이지요. 게다가 저는 고교시절 광주에서 광주학생 의거 탑에 새겨진 ‘옳은 길이라면 물 속이라도, 불 속이라도 가야한다’는 말을 매일 참배하며 읽었습니다. 한창 사춘기였던 때 제 마음속에 새겨진 그런 말들은 커서도 저를 몹시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제 몸 속에도 그런 DNA 구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요즘 댓 글을 보면 참담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찬양하는 글을 수도 없이 올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스게 소리로 우리나라가 ‘우간다’ 수준은 벗어난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반정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은 잘못 사용되면 무자비한 폭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국정원, 검찰 경찰, 군대, 통신 등의 모든 공권력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들어 정의(正義)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바를 정(正)’자를 살펴보면 ‘한 일’자 아래 ‘그칠 지’자가 있는데, 하나의 목숨이 그친다. 즉 이것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 아닌가 싶습니다. ‘정의라는 것은 생명을 걸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삼성 비자금 폭로 이전과 이후의 희망이 변하였는가?”

답변 : “삼성에 있을 때는 꿈(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행동이 단초가 되어 우리 사회와 국가가 건전하게 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 현재 삼성에 직장을 다니고 있는 후배들(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답변 : “현재의 삼성 직원들은 자부심 가지고 회사 다녀도 됩니다. 아비가 죄인이라고 자식이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삼성 계열사 가족을 모두 포함하면 약 200만 명이 넘을 텐데, 본인의 문제제기는 압축하고 압축해서 200명 미만의 사람(이회장과 가신들)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삼성 비자금 특검’이 ‘이건희 일가 비자금 특검’으로 명칭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 용철 변호사는 약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심정을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고 고백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허물이 많은 사람이고, 한 때는 그들의 공범으로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참회하는 마음, 새롭게 성찰하는 마음을 가지고 현재 저를 도와주시고, 지원해주시는 분들과 무슨 일로든 평생을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둠이 드리워진 숙명여대 백주년 기념관을 총총히 걸어 내려오며 그가 어디에선가 말했다고 하는 한 마디가 생생히 귓가에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 아들이 언젠가부터 아빠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3월 24일 숙명여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있었던 한겨레21 창간 14주년 기념 '배신'을 주제로 한 인터뷰 특강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2008.03.25 21:1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3월 24일 숙명여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있었던 한겨레21 창간 14주년 기념 '배신'을 주제로 한 인터뷰 특강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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