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 공항 레이더 타워.
David Monniaux / Wikimedia Commons
매년 4백만 영국인이 줄서서 지문 찍을 전망... 명분은 테러 방지그러나 히드로 공항 측이 '테러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지문 확인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들고 나오는 것은 이 신청사의 독특한 설계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내선 청사와 국제선 청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일반 공항들과 달리 히드로 신청사는 탑승 수속을 마친 국내선 승객과 국제선 승객이 같은 라운지에서 탑승 대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해외에서 영국행 비행기표를 끊었거나 히드로 공항에서 다른 유럽 공항으로 여행하는 환승객을 가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이미 탑승 수속을 마친 국내선 승객들의 탑승권을 바꿔치기해 국내선을 이용, 영국 내로 잠입할 경우 속수무책의 상황에 놓일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여권 등을 이용한 별도의 신분 확인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 국내선 보안 수속의 허점을 테러리스트들이 노릴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병목'에 해당하는 탑승구 앞에 이중 보안 시설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항 측의 설명이다. 그리고 탑승권을 받아간 승객과 실제 탑승객이 동일 인물인지를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지문 확인 시스템 도입이라는 결론이다.
사생활 침해-생체 정보 오용 우려 목소리... 정부 기구도 이에 동참
그러나 히드로 공항 측의 이러한 보안 강화 구상은 여기저기서 반대 목소리에 부딪치고 있다. 인권단체들의 반발은 물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정부 내 독립기구인 '정보위원회 (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마저도 이를 문제 삼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사생활 침해 관련 독립 규제기구인 '정보위원회'는 히드로 공항 측의 지문 요구 조치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또 필요할 경우 시정을 요구할 방침이며 공항공사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고발 및 기소까지도 가능하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특히 영국 내 인권단체들은 두 가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사생활 침해 논란. 공항 보안 시스템을 통해 수집된 개인의 생체 정보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경찰 및 행정 당국으로 넘어가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에 이들 단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히드로 공항 측은 지문 인식 시스템에 입력된 개인 생체 정보는 24시간 내에 자동적으로 폐기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 자료가 경찰이나 정보기관에 넘어갈 가능성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설령 경찰이나 정보기관에 이 자료를 넘기지 않더라도 국내선 여행 승객들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는지 고스란히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사생활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지문 인식 시스템의 실효성 문제.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문 인식 시스템의 정확성은 9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테러리스트들의 잠입을 완전히 차단할 방안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테러용의자의 지문을 데이터베이스화된 범죄정보와 일일이 대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문 인식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테러용의자를 색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