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의 여래를 만나다

경북 구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존재의 실상 마애(磨崖)

등록 2008.03.26 17:09수정 2008.04.0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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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금오산 마애불 천년의 세월을 돌부처로 서서 세상을 관조하는 여래의 모습이 경이롭다. 앙코르왓트사원의 부처님처럼 하늘과 맞닿은 그 모습이 웅장함마저 든다. 사진의 각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 권미강

▲ 구미 금오산 마애불 천년의 세월을 돌부처로 서서 세상을 관조하는 여래의 모습이 경이롭다. 앙코르왓트사원의 부처님처럼 하늘과 맞닿은 그 모습이 웅장함마저 든다. 사진의 각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 권미강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반야심경에 나오는 이 구절은 자본의 물욕에 몰입하는 현대인들에게 비움의 이치로 다가온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존재의 실상. 마애불을 보면 그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자연물이면서 여래의 존재로 기억되는 그래서 숭배의 대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마애불. 그저 마음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 돌 속의 부처님을 밖으로 모셔낸 듯한 자연스러운 형상에 경외심마저 든다.

 

금오산마애보살입상(金烏山 磨崖菩薩立像)

 

가슴에 숭배의 대상을 갖는다는 건 분명히 좋은 기운을 얻는 것이리라.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경북 구미 금오산은 천천히 봄기운을 품어내며 사람들의 기분을 적당히 신선하게 해주었다.

 

워낙 길이 가팔라서 '할딱고개'라는 명칭을 얻은 산등성이를 넘어 오르는 산길은 목적이 없다면 생전 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불쑥 불쑥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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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딱고개를 힘겹게 넘는 등산객들 숨을 할딱거리며 오른다 해서 붙여진 '할딱고개' 이름이 재미있지만 진짜 등산을 하다 보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 권미강

▲ 할딱고개를 힘겹게 넘는 등산객들 숨을 할딱거리며 오른다 해서 붙여진 '할딱고개' 이름이 재미있지만 진짜 등산을 하다 보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 권미강

하지만 도달하지 못할 거 같은 할딱고개 정상에 오르자마자 뺨을 스치는 바람에 피곤한 불평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등산객들은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에 중간 정상이기도 한 고개 위에 있는 바위에 올라 힘겨움을 달랬고 발아래 풍경들을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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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숨을 몰아쉬고..., 할딱고개 정상, 여기서 잠시 등산객들은 휴식을 취한다. ⓒ 권미강

▲ 중간에 숨을 몰아쉬고..., 할딱고개 정상, 여기서 잠시 등산객들은 휴식을 취한다. ⓒ 권미강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오르는 등산길은 하지만 할딱고개 만큼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았다. 아무래도 평소 운동부족이 원인인 거 같았다.

 

그저 산이 있어 오르기보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으니 그 힘겨움을 모두 감내해야지 하며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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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올려다 본 하늘 오르다 오르다 힘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고목의 잔가지들이 하늘과 어울려 논다. 이 아름다움에 피곤함은 녹고... ⓒ 권미강

▲ 너무 올려다 본 하늘 오르다 오르다 힘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고목의 잔가지들이 하늘과 어울려 논다. 이 아름다움에 피곤함은 녹고... ⓒ 권미강

그리고 결국 도착한 '금오산마애보살입상'은 온몸에 전율을 일게 했다.

 

'금오산마애보살입상'은 금오산 정상 북편 아래 암벽에 조각돼 있었는데 마음을 다잡고 오른 산이지만 마애불을 보는 순간 경이로운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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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나무에 그려진 친절한 약도 병 때문인지 모르겠다. 죽어서 누운 나무에 껍질을 벗기고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놓았다. 다행이다. 이 약도가 없었다면 엄청 헤맬 뻔 했다. 죽어서도 제 몫을 다하는 나무에게도 고맙고 그걸 이용해 가는 길을 그린 어떤 분에게도 고맙다. ⓒ 권미강

▲ 누운 나무에 그려진 친절한 약도 병 때문인지 모르겠다. 죽어서 누운 나무에 껍질을 벗기고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놓았다. 다행이다. 이 약도가 없었다면 엄청 헤맬 뻔 했다. 죽어서도 제 몫을 다하는 나무에게도 고맙고 그걸 이용해 가는 길을 그린 어떤 분에게도 고맙다. ⓒ 권미강

높이 5.5m의 마애불은 특이하게도 암벽의 돌출 부분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조각돼 있었다. 그래서 양쪽 측면으로 봤을 때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물 제490호인 금오산마애불은 장대한 신체에 강한 부조로 조각되었는데 비교적 갸름한 얼굴에 긴 눈은 가늘게 표현되어 있으며 초승달 모양의 눈썹은 작고 오똑한 콧잔등으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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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마애불 바위의 돌출된 부분을 이용한 금오산 마애불은 그래서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필자에게 '찍사'의 행복을 선사했다. ⓒ 권미강

▲ 왼쪽에서 본 마애불 바위의 돌출된 부분을 이용한 금오산 마애불은 그래서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필자에게 '찍사'의 행복을 선사했다. ⓒ 권미강

길게 표현된 인중과 가는 입술은 다소 경직되고 근엄함마저 풍겼다. 어깨에 닿을 듯 늘어져 있는 귀와 짧고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했다.

 

머리에 쓴 보관의 흔적과 높게 올려 튼 육계(肉髻), 머리 뒤에는 3중의 보주형(寶珠刑) 두광(頭光)을 조각하고 두광에서 이어져 내린 2중의 선으로 신광을 표현했다.

 

신체는 넓고 둥근 어깨에 가슴은 다소 평평하며 오른손은 천을 쥐고 왼손은 손바닥이 보이도록 팔을 굽혀 바깥쪽으로 내밀었다. 하반신의 표현이 다소 둔해지는 고려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 있으며 불상 받침대인 대좌(臺座)는 꺾인 바위면을 따라 연꽃잎 11개를 아래로 보게 새겼고 연잎 안에는 다시 화판 장식을 뚜렷하게 새겨 넣었다. 

 

표지 설명을 보니 제작 시기는 10세기 중엽 이후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마애불이 있는 곳은 옛날 선산군 기록이 담긴 <일선지>에 의하면 '보봉사터'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듯 마애불 주변에는 목조전실을 세웠던 흔적과 와편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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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금오산마애불 돌 속에 있다가 홀연히 한 발 내딛고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안에 피안이 있으리라. ⓒ 권미강

▲ 정면에서 본 금오산마애불 돌 속에 있다가 홀연히 한 발 내딛고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안에 피안이 있으리라. ⓒ 권미강

마애불을 참배하고 있는 데 한 남자분이 와서는 야외용 자리를 깔고 있었다. 이리저리 각도를 재가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부처님 모습이 참 좋지요" 한다.

 

"예, 정말 멋진 부처님이시네요" 하고 내가 화답하자, "이 부처님 영험이 대단해요, 여기서 백팔 배 하면서 치성 드린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은덕을 봤지요" 하면서 이내 백팔 배 정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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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어린 마음으로 마애불을 알현하는 거사님 많은 사람들이 마애불에 치성을 들여 소원을 이뤘다고 전해주는 한 거사님이 백팔배를 하고 있다. 진실한 마음이라면 어디에서든 소원은 이루어지리니..., ⓒ 권미강

▲ 진심어린 마음으로 마애불을 알현하는 거사님 많은 사람들이 마애불에 치성을 들여 소원을 이뤘다고 전해주는 한 거사님이 백팔배를 하고 있다. 진실한 마음이라면 어디에서든 소원은 이루어지리니..., ⓒ 권미강

그 남자분의 말에 한 번 더 올려다보니 마애불의 눈빛이 먼발치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간 곳은 바로 구미시 한복판이었다. 그 옛날 민초들의 삶을 내려다보며 영험한 기운으로 다소나마 위안을 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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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 돌탑 마음이 동하면 어디에서든 지성을 드리는 우리 민족의 정성이 엿보이는 돌탑. 마애불을 지나 약사암으로 가는 길에 서 있다. ⓒ 권미강

▲ 바위 틈 돌탑 마음이 동하면 어디에서든 지성을 드리는 우리 민족의 정성이 엿보이는 돌탑. 마애불을 지나 약사암으로 가는 길에 서 있다. ⓒ 권미강

천 년을 넘게 금오산 정상에 서서 지긋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애불에 귀를 대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하는 경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도달한 때, 도달한 때, 피안에 도달한 때,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때 깨달음이 있나니, 축복하소서!'라는 그 뜻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구미시 소식지 <예스 구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보완, 첨가해 올린 글입니다. <구미의 문화유산> 책자를 참고했습니다.

2008.03.26 17:0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미시 소식지 <예스 구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보완, 첨가해 올린 글입니다. <구미의 문화유산> 책자를 참고했습니다.
#구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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