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망설인 까닭?

<디앤디포커스> 4월호 정상회담 비화 발굴 보도

등록 2008.03.27 20:46수정 2008.03.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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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안보전문지 <디앤디포커스> 4월호

외교·안보전문지 <디앤디포커스> 4월호 ⓒ 디앤디포커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 2007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를 망설였다는 비화가 공개됐다.

최근 발행된 외교·안보전문지 <디앤디포커스>는 4월호에서 남북정상회담 의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디앤포커스>에 따르면, 2007년 9월 중순께 노무현 대통령은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비밀리에 가져온 문건을 받아본 뒤 측근들에게 "꼭 정상회담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북측이 준비해온 정상회담 의제들이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는 얘기다.

이는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들이 주장해온 것과 달리, 노 대통령 본인은 임기 중에 반드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갖고 있지 않았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비밀리 방문한 김양건 부장이 가져온 문건에 실망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6월부터 7월 초 사이에 전격 합의됐고, 8월 중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북측은 폭우피해 등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했고, 정상회담 개최 시기는 10월 초로 최종 조정됐다. 

그런 와중에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남북 정상들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노 대통령은 큰 기대감을 갖고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양건 부장을 만났다. 하지만 북측이 준비해온 정상회담 의제는 실망스러웠다.


<디앤디포커스>는 의전 관계자들의 증언을 빌어 당시 상황에 대해 "잠시 (김양건 부장이 가져온) 문서를 훑어보던 노 대통령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김양건을 쳐다보았다"며 이렇게 묘사했다.

"김양건은 노 대통령의 눈빛에서 무엇인가 묵직한 메시지를 읽었다. '이걸 보고서라고 나한테 가져왔단 말인가.' 황급히 김양건은 사태를 수습해야겠다고 직감했다.


'죄송합니다. 이것은 상부의 지침이 아니라 실무자의 의견을 정리한 것입니다.'

김양건은 자신도 모르게 노 대통령에게 결례가 되는 언행을 하며 이미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문건을 회수하려 했다. 노 대통령의 냉랭한 반응에 크게 당황한 김양건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노 대통령은 그 장면을 천연덕스럽게 지켜보았다."

노 대통령은 김양건 부장이 돌아간 다음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꼭 정상회담 해야 하나? 내가 반드시 올라가야만 할 것인가?"

이와 관련, <디앤디포커스>는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며 "(오히려 그것이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 국가연합의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남북교류와 협력의 대부분을 합의한 원동력이었다"고 분석했다.

식수행사를 둘러싼 남북한 최고위층의 막후접촉

a 군사분계선 바로 앞둔 노대통령 내외 지난해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며 군사분계선으로 걸어가고 있다.

군사분계선 바로 앞둔 노대통령 내외 지난해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며 군사분계선으로 걸어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또한, 노 대통령은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자'는 제안도 처음에는 적극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의전 관계자가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자'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노 대통령은 "번잡스럽게 행사를 준비하지 마라"며 소극적으로 반응했다는 것.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3일 앞두고 "의전비서실 건의대로 준비하라"고 지시했고, 북한도 이를 받아들여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다. 

정상회담 두 번째 날(10월 3일)에 벌어진 '식수행사 논쟁'도 흥미롭다. 원래 식수행사는 10월 3일 오후에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다음날(4일)로 연기됐다. 당시에는 날씨 등이 행사연기의 이유로 알려졌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 참석 여부를 둘러싸고 남측과 북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연기가 불가피했다는 것. 

<디앤디포커스>에 따르면, 10월 3일 밤 12시부터 4일 새벽 3시까지 남측의 최고위 의전관계자와 북측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막후접촉을 벌였다. 당시 남북한 의전 최고위층 인사들이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남측) "식수행사에 대해 위원장께 보고는 제대로 했는가?"
(북측) "어렵다. 김영남 의장이 대신하면 되지 않겠는가?"
(남측) "무슨 소리. 안된다. 이미 노 대통령께 보고된 행사다."
(북측) "그러면 내가 직접 노 대통령께 양해를 구하는 보고를 하겠다."
(남측) "그런가? 그러면 나도 김정일 위원장께 직접 참석을 부탁드리는 보고를 해야겠다."

하지만 이러한 막후접촉에도 4일 식수행사에는 김정일 위원장 대신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했다.
#남북정상회담 비화 #디앤디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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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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