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죽던 날, 장인 홍봉한은 뭘 하고 있었을까?

뱃놀이에 관한 몇가지 단상

등록 2008.03.29 11:50수정 2008.03.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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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소리가 들릴듯한 뱃놀이와 에로틱한 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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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관매도 뱃전에 앉아서 안개 사이로 얼핏 보이는 매화를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 김홍도


남쪽 바닷가에서 태어나 배를 타고 노동을 하면서 자란 내게 '뱃놀이'는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유흥이다. 잔잔한 물결에 배를 맡기고 악공이 불어주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기생 옆에 끼고 술 한 잔 들이키는 정경을 상상해 보면 나름대로 운치가 있으려니 싶지만 아무래도 나는 유흥을 위해 배를 띄우지는 않겠다. 뱃전에 앉아 마시는 술이 특별히 더 맛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산골 출신 역시 마찬가지다. 조석으로 넘어 다니던 산길을 일부러 취미삼아 오른다는 게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유홍준 선생이 강원도 산골 출신인 부인에게 어느 산 단풍구경을 시켜줬더니 시큰둥하게 다녀와서는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 "니네 형부가 구경시켜 준다기에 따라 나섰더니…우리 집 앞산 뒷산보다도 못하더라"고 하더란다.

뱃놀이 중에 가장 인상적인 뱃놀이는 바로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바로 이 그림이다. 배를 타고 언덕 위에 핀 매화를 감상하고 있는 그림. 주변을 모두 생략하고 배를 탄 인물과 매화만을 그렸지만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두보를 떠올리게도 하고, 꽃미남 김홍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안개가 뒤덮인 배경으로 왠지 아련한 피리소리나 대금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반면 신윤복의 선유도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맨 왼쪽 삿대를 짚어 배를 몰고 있는 사공과 한가운데 대금을 불고 있는 악공을 빼면 양반 셋에 기생도 셋, 3대3으로 짝이 맞는다. 역시 애로틱 풍속화의 대가 신윤복다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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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기녀들의 옷차림새에서 느껴지는 풍성함이나 애로틱한 분위기가 참으로 신윤복답다. ⓒ 신윤복


한강에서 배타고 술과 담배 벗삼아 문학 읊은 오상순과 변영로

뱃놀이를 위해 한강에 배를 띄운 경우 중에 비교적 근래의 사람으로는 공초 오상순과 수주 변영로가 있다. 50~60년대 '담배로는 공초를 당할 자가 없고, 술로는 수주를 당할 자가 없다'는 말이 유명했더란다.


공초 오상순은 죽을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 담배만 물고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다가 끝내 조계사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으로 당대 모든 문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큰 스승이었다고 한다.

수주 변영로는 <명정 40년>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말은 '술에 취해 살아온 40년'이라는 뜻이다. 한때는 '禁酒'(금주)라는 글씨를 새긴 명패를 목에 걸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나 술 끊었소'하고 시위를 했지만 결국 밤이 깊어지면 그 금주패마저 저당 잡히고 술을 먹었다는 위인이다.

하루는 교회 전도사였던 공초 선생이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저만치 수주 선생이 보이더란다. 공초는 대충 얼버무려 설교를 마치고는 둘이서 담배 몇 보루와 양주 몇 병을 사서 한강으로 나갔고, 두 사람은 달이 휘영청 밝은 한밤 중에 사공을 찾아 배를 띄우고는 술과 담배를 벗삼아 시를 읊고 문학을 논했더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서민들 끼니걱정하기도 바쁜 시절에 저런 호사를 누리다니 하고 눈살을 찌뿌릴 만도 하지만 그냥 애교려니, 풍류려니 하고 넘어가자.

세자가 죽었다는 희소식(?), 뱃전에서 들은 장인 홍봉한

한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즐겼던 사람 중에 '홍봉한'이라고,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의 친정아버지가 있다.

요새 정조가 등장하는 사극 <이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니 다들 홍봉한과 홍인한 형제를 아실 것이다. 혜경궁 홍씨는 그녀가 칠순 할머니쯤 되어 쓴 책 <한중록>에서 홍봉한 형제가 마치 사도세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역설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사도세자를 죽인 인물이 바로 이 홍씨 형제들이었다.

영조와 사도세자를 이간질시켜 영조로 하여금 아들에게 자결을 명하도록 유도했고, 훗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지 못하도록 갖은 공작을 펼치고, 자객을 보내 외손자를 죽이려 했던 노론의 영수가 바로 홍봉한이다. 일설에는 영조가 차마 아들을 죽이지 못하리라 예측을 하고 뒤주를 미리 준비한 사람도 홍봉한이라고 한다.

그럼 혜경궁 홍씨는 그때 뭘 했을까? 그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노력은커녕 오히려 노론 당파와 친정아버지를 위해 남편을 죽이기 위한 음모에 스파이 노릇을 한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사도세자의 움직임을 친정 아버지에게 보고하여 남편의 죽음에 큰 기여를 했는데도 훗날 <한중록>을 써서 자신과 친정아버지가 사도세자를 보호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영조의 명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바로 그 비극의 날, 세자의 생모도, 장인도, 아내도, 아니 그 누구도 세자를 두둔하지 않았다. 열 살 안팎의 어린 세손(정조)만이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매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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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주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와 어린 정조 ⓒ MBC


그렇게 장인이 미리 준비해놓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 만에 죽었다.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좁은 뒤주 안에서 8일을 버티다니…. 그 속에서 얼마나 처절했을까?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사도세자가 "아바마마, 살려 주시옵소서"하고 부르짖으며 죽은 바로 그 날, 장인 홍봉한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그는 세자가 드디어 죽었다는 희소식을 뱃전에서 들었다고 한다. 한강에 뱃놀이를 나갔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에 실은 글을 일부 바꿔 올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에 실은 글을 일부 바꿔 올린 글입니다.
#사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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