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최재구
2004년 미국에서 발간된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책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사교육비와 주택비용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군이 좋고 범죄가 적은 교외지역으로 몰리면서 해당 지역의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부담스런 주택가격임에도 그들은 20년 이상의 장기 모기지 대출을 얻어 과감히 투자를 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통해 벌 수 있는 돈에 모기지 대출 상환원리금과 자녀 사교육비 등의 고정비를 맞추어놓고 무리한 가계 지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 무리한 가계 수지는 가정의 재무 사건이 변동하게 될 경우 충격을 흡수할 쿠션이 전혀 없는 수준이라며 심각한 문제제기를 던진다. 저자는 가계 유동성을 쿠션에 비유하면서 만에 하나 소득이 감소하고 주택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파산에 이르는 중산층이 크게 늘어날 것을 경고 했다.
그 책이 출간된 지 3년 만에 미국 경제는 결국 심각한 유동성 위기,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게 되었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금융회사들이 과도하게 부채를 내주고 그 채권을 파생상품으로 엮어 내다팔면서 신용경색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집값이 오르리라는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리한 부채를 내 주었을까?
조금의 틈도 없는 가계 수지에 대한 염려는 뒤로 한 채 경기 호황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그로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믿음이 지나쳤던 것이다.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는 금융기법에 대한 자만도 현실을 냉철히 분석하지 못하게 하는데 한 몫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금융기법이 발달한다 해도 경제 주체의 기본인 가정에서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을 이겨내지 못해 터지는 것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한도의 빚을 거의 다 끌어다 쓰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서브프라임 계층이 부채 상환이 감당이 안 돼 던지는 매물을 소화해 낼 수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급하게 집을 내놓아도 사는 사람이 없다. 이자가 연체되고 모기지 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채권 회수가 안 되면서 급격히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급기야는 큰 손실로 파산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불패'라는 믿음? 이젠 버려야 할 때우리나라의 상황이 바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염려할 때이다. 가계부채는 740조를 넘어서 국민 일인당 150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집으로 인해 부채 1억 이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매월 부채 상환원리금만 80만~90만원 돈을 지출하는 것이다. 거기에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영어 유치원 하나만 보내도 100만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한다. 주거비용과 사교육비로만 200만원 가량의 돈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셈이다. 저축은커녕 가계 수지에 숨 쉴 틈이 없다.
당연히 빚을 더 내서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크게 창출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추가로 오를 것이란 기대심이 있다. 기대심이 반영되어 당장 빚 갚는 것이 부담스러워도 버티는 가정이 많다. 매물도 없고 수요도 없는 거래 실종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간간히 그간 상승대열에서 소외되어 왔던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기대심이 반영되어 매물자체가 적고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불어 새 정부 들어 들썩이는 교육정책에 대한 불안함이 전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전국의 특목고 진학률 1위라는 지역적 특성이 강남 엄마들의 관심을 집값에 끌어 들이고 있는 특수한 현상도 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IMF때보다 많은 수준임을 감안해 보면 집을 살 여력이 되는 사람이 적어 수요가 실종하고 있음을 의심해 봐야 한다. 수요자의 주머니 사정, 빚을 갚을 현금 흐름과 무관하게 자산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를 것이란 믿음은 상당히 무리한 것이다.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오른 집값은 집을 사야하고, 사고 싶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이미 뛰어 넘었다. 빚도 끌어낼 만큼 끌어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르래야 오를 수 없는 한계에 달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 언제까지 믿을 수 있나그렇다면 만일 상승에 대한 기대심이 꺼진다면 어떻게 될까?
2억의 집을 사기 위해 1억의 부채를 갚고 있는데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고 고스란히 빚을 갚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어차피 살기 위해 산 집이니 천천히 부채 갚으면서 집값은 생각 않고 살겠다고 할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적어도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미국처럼 집값의 100%까지 빚을 내 주는 최첨단 선진(?) 금융 환경은 아니었다. 정부의 금융규제로 갚을 여력을 크게 뛰어넘는 빚을 낸 사람은 그리 맞지 않다. 버겁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빚을 갚아나갈 정도는 되는 가정이 많다.
전매 제한으로 적은 자금으로 단기 투자 수익만을 노리는 투기, 빚으로 계약금만 마련해 투자해 빠지는 레버리지 투자도 제한했다. 주택가격에 거품이 껴 있기는 하지만 가구의 소득에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폭락이라는 극단적인 위험으로 치달을 분위기는 아닐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세계 경제가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경기 하강, 물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빚을 갚아나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가계도 위험에 대처할 쿠션이 없는 재무구조이다. 만에 하나 경기 하강으로 기업이 다시 구조조정에 나서고 물가 상승이 멈추지 않는다면 대단히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될 가정이 적지 않은 아슬아슬한 현실이다.
당장의 가계 재무구조를 냉철하게 평가해 봐야 할 시점이다. 거기에 여전히 부동산이라는 믿음이 껴 있다면 낙관이 지나친 사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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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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