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은 '쌩까기' 대장?

[바깽이의 중국 윈난 여행기 8] 후타오샤에서 리장으로 돌아가는 길

등록 2008.04.03 18:11수정 2008.04.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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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만년설산 사이로 강물이 흐르는 깊은 협곡 후타오샤. ⓒ 박경


잠깐만 봐도 속 시원한 후타오샤

우르릉 천둥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쏟아져 내려간다. 호탕하고 시원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사납고 거칠어 보여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깊고 깊은 협곡을 흐르는 물길은 너무도 거침이 없어 바닥을 휘저은 듯 흙탕물로 흘러가고 있다. 어쩌면 세찬 물결이 큰 산을 갈라 좁은 계곡 길을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호랑이가 건너다닐 만큼 좁다는 의미의 후타오샤(虎跳峽).


제대로 된 트래킹 계획이 아닌 바에야 후타오샤는 그냥 뛰어넘을까 갈등했었다. 괜히 맛만 보다가 입맛만 버릴까 싶어 아예 지나쳐 버릴까 고민했었다. 게다가 겨우 협곡만 잠깐 보기 위해 리장에서부터 2시간 넘게 버스 타고 올 가치가 있을까 남편과 티격태격했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오길 잘했다. 저토록 거침없이 흘러 내려가는 물을 보고 있자니 내 오장육부를 다 긁고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가장 고민스러운 곳이 바로 후타오샤였다. 마음 같아서는 1박 2일로 후타오샤 트래킹을 하고 싶었다. 오르막을 28번이나 굽이친다는 28밴드를 거쳐 도달한 객잔에서 밤을 보내고 협곡으로 내려오는 길은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닌 듯싶었지만, 그러자면 샹그릴라를 포기해야 했다. 샹그릴라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티베트 여행의 맛보기 같은 곳. 티베트에 대한 갈증을 당장 목 축여 해소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곳.

갈등이 생길 때 슬그머니 일어나는 유혹. 다음에 윈난을 한 번 더 가? 하지만 세상은 넓고 갈 데는 너무 많아, 갔던 데 또 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상 잘 알고 있다. 하여 우리는 애초부터 후타오샤는 밀쳐 두기로 했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니 약간의 여유가 생겨 또다시 후타오샤는 물 위로 떠오르고 잠깐 눈요기만이라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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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오샤는 중국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트래킹 코스로 인기가 높다. ⓒ 박경


이제 2시간 3시간 버스 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땅덩어리 큰 중국에서 그 정도는 해바라기씨 한줌 까먹는 시간밖에 안 된다. 리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을 때 딸은 내키지 않는 빈자리에 앉아야 했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우리 가족은 각자 떨어져 앉아야 했는데, 우리들의 짝꿍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모습들이다. 마치 헤어스프레이를 한 듯 뻣뻣하게 떡이 진 머리카락에다가 본연의 색깔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때에 절고 절은 옷. 그 때깔이 우리나라 노숙자 저리 가라다.


딸은 코를 싸쥔다. 그러지 말라고 얼른 눈치를 준다. 빈자리에 앉은 나는 옆에 앉은 중국 인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은근히 호기심이 당겨 가만히 숨을 들이쉬어 본다. 킁 킁……. 흡! 과연! 그 향기 역시 우리나라 노숙자 저리 가라다.

나는 목 운동하는 척 슬그머니 통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참던 숨을 뱉어낸다. 그러면 순진한 눈빛의 그들은 한껏 다리를 모으고 자세를 웅크린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쩍벌남처럼 눈치 없고 무례하지 않다. 하지만 뭘 피했더니 뭘 만난다고, 잠시 후 통로 쪽에서는 더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중국인들의 속마음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마치 파도 위에 실린 배처럼 기우뚱거린다. 잠이라도 들다 깨어난다면, 바다 어디쯤 항해를 하고 있나, 잠시 잠깐 헷갈릴 지경이다. 구부러진 길을 가는 버스는 좀처럼 속력을 내기도 힘들다.

드디어 나보다 서너 줄 앞에 앉은 중국인 아줌마가 게워내기 시작한다. 아줌마는, 통로를 사이에 둔 맞은 편 좌석에 매달린 쓰레기통에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하는데 그 조준 실력이란 게 영 형편없다. 대부분 통로 바닥에다 쏟아내고 만다. 처음에는, 차가 흔들려서 조준하기가 힘든가 싶었는데,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도 아니다 싶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쓰레기통에 정조준할 수 있건만 자세를 낮추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되는대로 뱉어내는 폼이 마치, 쓰레기통에 발이라도 달려 그 쓰레기통이 이리저리 움직여 요령껏 받아내기를 기대라도 하듯 아주 여유만만이다. 아니면, 입에서 뛰쳐나온 내용물이 베컴의 공처럼 유려하게 휘어져 쓰레기통으로 골인할 것을 확신이라도 하듯 아무런 주춤거림도 갈등도 없이 시원하게 뱉어내고 있다.

게다가 통로 바닥에 쌓여가는 토사물을 보면 아무리 제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남들 보기에 부끄러울 텐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제법 긴 시간에 걸쳐 구토해 대는 걸 보면 뻔뻔하고 당당하기가 한국 아줌마 저리 가라다.

한참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표정이 찡그려지고 괜히 나까지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더 신기하고 이상한 것은 따로 있다. 주변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토악질해대는 아줌마를 향해 혀를 차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앞에 쓰레기통을 두고도 통로바닥에 질펀하게 게워 놓는 아줌마를 향해 비난의 눈길을 던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 어떤 누구도 단 한 번도 쳐다보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매달린 좌석에 앉은 젊은이는 더러운 파편이 튈까 전전긍긍할 법도 한데 전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다.

참 희한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휴지라도 건네며 등이라도 두드려 주든가, 쓰레기통에 잘 대고 하라고 잔소리라도 할 법한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중국 아줌마 역시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 회로가 접속되면서 순식간에 파파팟 전기가 흐르고 불꽃이 일기 시작한다. 많은 장면들이 하나로 꿰어지면서 섬광처럼 스쳐간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쿤밍역 앞을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팔목 발목에 쫄쫄이가 달린 잠옷 차림으로 바삐 걸어가던 모습, 따리에서 바로 이웃해 있는 게스트 하우스도 모른다던 호텔 여직원, 위롱쉐샨 가는 길에 혼자 산소통을 사도 아무도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던 일, 그리고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멀미를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일. 어쩌면 화장실에 문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

중국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관심도 없으며,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이 무슨 짓을 하건 상관하지 않으며 내가 무슨 옷을 입건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에 비하면 감정 표현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옛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 엉큼하다고 한 걸까? 그래서 중국 사람들 속은 알 수 없다고 한 걸까? 요즘 말로 중국 사람들은 '쌩까기' 대장이다.

어쨌든 속마음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덕에 그 중국 아줌마는 마음 놓고 멀미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 그 차가운 무관심 속에서 실컷 속을 비워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 배를 탄 우리는 몹시 괴로웠지만.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 쿰쿰한 냄새, 저쪽으로 돌리면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바람에 얼굴 돌릴 데가 없어, 우리 가족은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곳에서 서둘러 내렸다.

리장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리장 고성 광장을 가로질러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그랬던 것처럼 광장이 끝나는 길목에서 오렌지도 한 봉지 샀다. 주인은 반가워하며 하나 더 얹어 준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떠날 거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아쉽게 지나치며 벼르기만 했던 곳, 밤에만 펼쳐지는 꼬치가게에서 꼬치도 사 먹었다.

겨우 사흘 동안 드나들었을 뿐인데 내가 사는 동네처럼 편안하고 정이 들었다. 내 집 문을 열고 들어서듯 호텔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지니 샤워고 뭐고 생략하고 잠들고 싶다. 마치 후타오샤 트래킹을 한 것처럼, 멀고먼 길을 걸어온 것처럼 적당히 피곤해진 몸에 기분 좋은 피로감이 나른하게 밀려오는 리장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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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고성 하늘보다도 고성 먼저 붉은 노을이 불붙는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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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고성의 야경 ⓒ 박경

덧붙이는 글 | 2007년 12월 13일에 떠나 중국 윈난을 여행하고 12월 24일에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네이버카페 '중국여행길라잡이'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2007년 12월 13일에 떠나 중국 윈난을 여행하고 12월 24일에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네이버카페 '중국여행길라잡이'에도 올립니다.
#후타오샤 #리장 #중국 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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